출연한 영화만 30편 가까이 된다. 또래 배우들 중 이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본 사람이 또 있을까. 감우성, 박중훈, 안성기, 김윤석, 황정민, 설경구 등 대한민국에서 연기력으로 손꼽히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온 이준익 감독이 “꼭 주연으로 영화를 찍어보고 싶었다”던 배우 박정민. 그가 ‘동주’에 이어 ‘변산’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유난히 길다는 이번 여름의 초입, 삼청동 한 카페에서 박정민을 만났다. 1년에도 꼬박꼬박 2~3 작품씩 소화해내며 ‘열일’하는 배우 중 한 사람이지만 편안한 차림으로 앉아있는 모습이 소탈하게 느껴졌다. 그는 ‘변산’에서 ‘쇼미더머니’ 6년 개근생 무명 래퍼 학수를 연기한다. 고향을 향하는 일을 저승길보다 싫어하고, 어머니의 빈소마저 지키지 못한 아버지(장항선 분)에 대한 원망으로 점철돼 있다.

촬영을 하며 실제 아버지와 관계에 대해 생각을 해봤겠다는 말에 박정민은 “평소보다는 생각을 좀 해보게 됐죠. 연기에 끌어올 수 있는 걸 끌어와야 하니까요. 그렇다고 개선이 된 점은 없어요. 과장을 좀 보태면 극중 학수만큼 저도 아버지랑 대화할 때 툴툴거리 거든요”라고 털어놨다.

고려대학교를 다니던 박정민은 연기를 하겠다며 돌연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으레 아버지 연세의 어른들이라면 이해하기 힘든 선택이었다.

“처음 대입 때는 싸움이 안됐어요. 아버지가 아프셨거든요. 아들이 그래버리니까 화가 많아지시고, 결국 아프시더라고요. 아버지 소원이신 거 같아서 성적은 부족하지만 어쨌든 좋은 학교를 써보자 했는데 처음에 다 떨어졌어요. 그래서 재수는 해도 공부는 안 할 거라고, 연극영화과 준비를 하든 할 거라고 했는데 추가합격해서 꼴찌로 고대에 붙었어요”
 

물론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아서 후회한 적도 있었다. 배우라는 직업이 주는 막연함과 불안정함에 한 번은 고대에 전화해서 재입학이 가능한지 물어본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충무로에서 주목받는 지금에는 부모님들도 그를 인정한다. 박정민은 “이제는 영화도 보세요. 어쨌든 밥벌이는 해서 사니까요. (어떻게 나오는지) 궁금해 하시기도 하고요. 상 받을 때는 꼭 와서 보세요”라고 내심 뿌듯한 마음을 전했다.

‘변산’에는 학수와 부친의 해묵은 갈등이 표면적으로 폭발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가 이어나가는 주제가 그렇듯 엔딩에 가까워서는 서로의 과거와 화해하는 듯한 모습이 그려진다. 박정민은 “아버지랑 화해를 하지 않으면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말하려고 하는 걸 보여줄 수 없었을 거 같아요. 이 영화가 좋은 게 여기 나오는 사람들 다 구질구질하고 면면 봤을때 행복한 사람이 없거든요. 그걸 다큐멘터리 카메라로 들이밀면 엄청난 비극일 거에요.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웃음을 주고 싶었던 거 같아요”라고 설명했다.
 

이런 진지한 고민으로 영화에 접근했지만 쉽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바로 랩을 하는 장면이 그랬다. 아무리 연기라고 할지라도 또 다른 영역인 랩을 하는 신을 촬영할 때는 박정민 역시 수줍음을 느꼈다.

“엄청 민망했어요. 대부분의 곡은 스태프들 앞에서 했어요. 그 분들이 제 무대에 호응해주지 않잖아요. 처음에는 멘붕이 와서 홍대 클럽에서 촬영하는 날은 가사를 계속 잊어버렸어요. 나중에는 여고생 팬으로 출연하는 보조출연자들이 가사를 써서 들고 있어줬어요. 진짜 창피했어요”

사실 래퍼런스를 찾기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이에 박정민은 많은 래퍼들의 영상을 보며 롤모델을 찾아나섰다. 하지만 많은 무대 영상을 접한 끝에 “누구를 보고하던 다 따라하는 게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아무 것도 하지말고 랩만하자, 랩도 못하는데 이것까지 하면 중간에 관객들이 나가겠다”라는 생각으로 학수를 준비 했다고 한다.
 

얼마 전 촬영을 끝낸 영화 ‘사냥의 시간’에 함께 출연하는 최우식의 출연작 ‘마녀’와 경쟁을 하게 된 박정민. 서로 반응이 어땠냐고 묻자 “단톡방에 ‘우식아, 영화 잘 됐으면 좋겠는데 (관객스코어) 좀만 나눠먹자’고 했어요”라고 털어놨다. 그러나 ‘마녀’ 보다 더 걱정인 건 사실 마블 스튜디오의 ‘앤트맨과 와스프’였다. 관객들에게 대작을 두고 ‘변산’을 추천한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박정민의 답변은 명쾌했다.

“한국 사람이니까요. 앤트맨도 웃기겠죠. 저도 앤트맨에 나오는 배우들 좋아해요. 하지만 한국 사람이니까 ‘변산’의 정서에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변산’을 보고 많이 웃으셨으면 해요. 얻어가는 건 각자 다를테지만 많이 웃으셨으면 좋겠어요”

②에 이어집니다.

사진=메가박스플러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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