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에는 ‘너무나 무서워서 그 이름을 입에 담지도 못하는’ 악당이 등장합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접했다면 다들 아는 ‘볼드모트’인데, 그 극악함을 떠올리기도 싫어서 등장인물들은 ‘그’라고만 말할 뿐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히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자신의 원래 이름을 잊는 순간, 정체성 역시 사라지고 심한 경우 과거의 기억까지 잃습니다. ‘이름’, 나아가 어떤 것을 부르는 명칭이라는 것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설정입니다.
굳이 ‘이름’, ‘명칭’에 대해 길게 언급한 이유는, 너무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입에 담기 싫은 어떤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없던 단어 ‘맘X’입니다.
이런 단어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벌레들도 울고 갈 만큼 엄청난 비하의 의미가 담겨 있는 말로, 얼마 전에는 어떤 사건 때문에 ‘태권도 맘X’이란 단어가 버젓이 수많은 이들이 보는 유명 온라인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엄마의 그릇된 생각으로 일어난 사건 자체도 씁쓸했지만, ‘맘X’라는 이 단어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있는 현상 또한 곤란하게 느껴집니다. ‘무개념, 비매너 엄마’ 집단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맘X’라는 말에서는 인간의 근원에 대해 부정하는 듯한 기운이 느껴진다면 설명이 되려나요.
10대 청소년들이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를 친구들 사이에서 ‘우리집 미친 X’이라고 부른다는 실화기반 괴담(?) 역시 돌아다니지만, 적어도 진짜 자기 어머니 앞에서 그러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맘X’라는 말은 마치 일반인들 사이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집 미친 X’이 대중화되어 쓰이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합니다. 이 말을 한 번 쓰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키워 주신 엄마부터 할머니, 옆집 엄마, 아이를 지금 키우는 나 자신까지 모두 싸잡혀서 온 세상 사람 앞에서 ‘우리집 미친 X’이라고 불리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여성과 남성 간의 ‘혐오’가 이슈로 떠오르는 가운데, ‘일베’와 맞먹는 ‘워마드’의 패륜적인 온라인 상에서의 행보가 대중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또 사망 사태까지 초래하는 아동학대 사건에서 가장 많은 비율의 가해자는 친부모입니다. 일부 맘카페는 도를 넘는 ‘갑질’ 행위로 공분을 사기도 했고, 공유 공간에서 피해를 주는 엄마와 아이들을 놓고 ‘노 키즈 존’에 대한 찬반론도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뉴스들에 엄마들 자신이 “그러니까 맘X 소리를 듣지”, “나도 맘X인가봐”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일단 그런 이들의 비율은 '정상적'인 엄마들에 비해 매우 적습니다. 그런데 자꾸 말할수록 말에는 생명력이 생겨서, 실제로 그 존재가 더 분명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과 상관없는 삶을 사는 싱글이나 청소년들 역시 그렇게 쉽게 ‘맘X’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말고, 알고는 있지만 말할 수 없는 ‘볼드모트’와 같은 취급을 해 줄 수는 없을까 생각해 봅니다. ‘해리 포터’ 이야기는 ‘볼드모트’와의 싸움을 그립니다. 난관을 딛고 ‘맘X’라는 말이 사어(死語)가 되어 최후를 맞이하는 날이 오길 바라게 되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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