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하는 법이 없고 항상 도전했다. 코미디와 호러가 섞인 데뷔작 '조용한 가족'부터 공포 스릴러 '장화, 홍련', 누아르 '달콤한 인생',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스파이 '밀정'에 이어 이번엔 SF 영화 '인랑'이다.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장르마스터 영화감독 김지운(54)의 신작 '인랑'은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일본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SF 명작, 1999년 장편 애니메이션 '인랑'을 원작으로 한다. 배경은 남북한 정부가 통일준비 5개년 계획을 선포한 후, 강대국의 경제 제재가 이어지고 민생은 악화된 근미래다.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를 잡기 위해 대통령 직속 경찰조직 '특기대'는 인랑이라는 인간 병기를 육성한다.

영화는 20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데다가 한국에서 드문 SF장르라는 점, 강동원, 한효주, 이정재, 김무열 등의 캐스팅이 화제를 몰며 2018년 기대작으로 꼽혔다. 그러나 흥행 추이는 예상보다 좋지 않다. 일각에서는 '인랑'이 100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힘들 거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김지운 감독을 만나 '인랑'에 대한 얘기를 들어 봤다.

 

Q 개봉 후 반응이 호불호가 갈린다.

A 공들여서 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좋은 얘기도 많이 하는 것 같다. 아쉬움을 얘기하는 부분도 있지만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어쨌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결과물로 심판을 받는 느낌이다. 많은 걸 차려놨으니 많이 즐기고 좋은 걸 찾아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Q 데뷔한 지 20년이다. 예전에 '밀정' 때 인터뷰에서 항상 불안하다고 한 적 있는데 요즘도 그런가.

A 아직도 그런 게 있다. 안전한 흥행 공식으로 보장된 작품을 하는 게 아니잖나. 항상 새롭고 리스크가 큰 걸 한다. 안정권에 있는 감독에 비해 그 부분에 대해서 훨씬 불안하고 조바심과 초조함을 느낀다. 하지만 모험적인 작품을 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타격도 덜하다. 실패를 해도 남는 게 있는 작품을 하는 거다. 좋은 실패란 게 있다. 성공의 역사 이전에 실패의 역사가 있다.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Q 리스크를 안으면서도 모험하는 이유는 진부한 걸 싫어해서인가.

A 그런 것도 있다. 어려운 미션에 스스로 던지고 그걸 실행할 때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 또 스스로 에너지를 추돌시키려는 의지와 욕구도 있고. 그런 에너지가 영화 안에 어떤 기운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때도 그랬고 '인랑' 만들 때도 '놈놈놈'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한국에서 새로운 걸 하는 거잖나. '인랑'은 '밀정' 같은 스파이도 있고 '놈놈놈'처럼 액션도 있는데 기본 무드는 누아르다. 멜로도 있고, 지하수로 장면을 연출할 때는 호러 영화의 문법에 따랐다. 수많은 장르를 집대성한 게 '인랑'이다.

Q 제작비 200억의 대작이라고 하지만 사실 SF 장르를 만들기엔 부족한 예산이다.

A 미국 영화에 비하면 저예산인 셈이다. SF라고 하면 할리우드 영화가 공식화한 느낌이 이미 존재한다. 그런 데서 관객들이 느낀 혼란도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익숙해져 있으니까. 아쉬운 장면? 비주얼 면에서 아쉽다. 도시의 모습이나 디바이스 등 디테일이. 제작 과정에서 아쉬움이 있다면 영화를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하지 않았나 한다. 내 얘기를 더 할 수 있는 부분을 설득력 있게 장치화하고 이럴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다. 반면에 이 짧은 시간에 내가 원했던 대규모 액션신, 오프닝, 지하수로 장면, 섹트 학살 장면, 남산 전망대 액션신, 자동차 액션, 원작이 갖고 있던 아우라 등은 잘 구현했다. 한국에서 시도하지 않았던 그림을 열었다.

Q 원작이랑 다른 점 중 하나를 꼽는다면 여주인공 캐릭터다. 원작보다 더 많은 서사가 들어갔다.

A 이 영화는 시스템, 집단에 부딪혀가면서 개인으로 돌아가는 얘기다. 임중경(강동원 분)이 이윤희(한효주 분)와 있을 땐 각기 다른 집단의 입장에서 만났지만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개인이라는 형태를 자각하는 단초를 주는 거다. 그 매개체가 멜로다.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Q 결말은 원작과 많이 다르다. 김지운 전작들과 비교하면 결말이 희망적인 편이다.

A 여러 희망 코드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보면 시스템과 집단의 벽을 개인이 뚫고 가는 얘기다. 지하수로에서 임중경을 둘러싼 벽, 남산 전망대 유리 벽에 갇힌 두 남녀, 벽 앞에서 좌절하는 한상우(김무열 분) 등. 그런 메타포를 뚫고 생존하게 된다. 주제를 얘기할 수밖에 없어서 이런 결과가 됐다. 보이기엔 해피엔딩으로 보이는 거다.

 

Q 캐스팅이 단연 최고 화제다. 특히 강동원과 정우성의 만남이 관심사다.

A 임중경 역의 강동원은 '인랑'을 계획하면서부터 생각했다. 만화를 실사로 옮겼을 때 제일 거부감이 없는 배우를 찾았다. 그런 '간지'와 '기럭지'는 강동원만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액션을 잘하는 배우가 '인랑'에 둘이 나온다. 강동원과 정우성이다. 둘이 액션은 극과 극이다. 정우성은 불덩이 같은 액션을 한다. 저돌적이고 돌파력이 있다. 강동원은 차갑다. 수려하고 절제됐으며 액션이 안무 같다. 스산한 아름다움, 슬픈 주조가 있다.

 

Q 한효주, 한예리, 최민호는 기존 이미지와 다른 얼굴을 썼다.

A 한효주씨는 멜로나 로맨틱 영화에서 밝고 맑고 올바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배우다. 그 배우한테 어두운 그늘 음영 탁 끼얹으면 어떨까, 되게 재밌지 않을까 싶었다. 여태껏 보지 못한 표정을 하게 돼서 재밌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예리씨는 이런 게 처음이라더라. 새로운 걸 보여줄 수 있는 게 배우한테도 좋다. 최민호씨는 아이돌 스타인데 그런 선입견을 뛰어 넘는, 배우가 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취조실 장면에선 민호한테 엄청난 디렉션을 줬다. 나올 때까지 했다. 최민호는 지독한 성실함 때문에 결국 내가 원하는 장면을 끄집어 내더라.

 

사진=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Q 한효주씨가 말하길 김지운 감독이 멜로 감성을 갖고 있다더라.

A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내 칭찬하는 것 같아서 그렇지만, 호러를 하든 누아르를 하든 스파이극을 하든 항상 우아하다는 평을 받았다. '반칙왕'과 '조용한 가족'만 빼고. 우아하다는 감성이 멜로와 밀접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렇지 않을까.

Q 데뷔한 지 20년이다. 지난 영화감독 인생을 돌아보면 어떤가.

A 수고 많았다. 이제 그 수고의 결과물을 내놔라.(웃음) 애쓴 것들이 무의미하지 않도록 더 좋은 걸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지치지 말라고.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신인이었을 때의 나? 주저하지 말고 더 거침없이 하라고 하고 싶다. 새로운 걸 시도하면서 용감하게 했지만 막연한 불안함을 느꼈다. 주저했던 게 많았다. 더 가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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