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신인가수 윤종신의 ‘너의 결혼식’은 헤어졌으나 여전히 잊지 못하는 연인의 결혼식을 마주한 남자의 절절한 심정을 그려내 큰 인기를 모았다. 20년이 훌쩍 흘러 같은 이름을 단 영화 ‘너의 결혼식’이 시대가 변해도 변치 않는 남자의 순정을 멜로 감성으로 스크린에 펼쳐낸다.

 

 

고3 여름, 강릉의 한 고등학교로 전학 온 환승희(박보영)를 보고 첫눈에 반한 황우연(김영광)은 승희를 졸졸 따라다니고, 커플이 되려던 찰라 승희는 엄마와 함께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1년 뒤 승희의 흔적을 좇아 끈질긴 노력 끝에 같은 대학 체육과에 우연은 합격하지만 이미 그녀에겐 학교 럭비부 주장인 테리우스 남친이 있었다. 군 제대 후 우연히 다시 만난 두 사람, 승희는 패션 디자이너 꿈을 포기한 채 방송프로 리포터가 돼 각박하게 살아가고 체육교사 임용고시를 준비 중인 우연은 어느 새 부잣집 여자친구까지 생긴 터였다. 하지만 우연은 여친과 헤어지고 첫사랑 승희를 향해 직진한다.

영화는 2005년부터 2018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만났다 헤어짐을 반복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다. ‘500일의 썸머’ 이후 각광받고 있는 ‘현실 연애’ 서사를 풍성한 에피소드와 쫄깃한 대사로 차곡차곡 풀어간다.

 

 

‘너의 결혼식’은 멜로장르의 드라마와 진한 감정, 로맨틱 코미디의 가볍고 코믹한 요소를 능란하게 포획한다. 그러기에 13년에 걸쳐 번번이 빗나가는 사랑의 타이밍이 가슴 저릿저릿함과 재미난 웃음을 동시에 안겨준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이석근 감독의 재기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저런 남자가 있을까 싶다가도 설득돼 버릴 만큼 우연의 심리가 꽤 꼼꼼하게 다뤄진 반면 승희 캐릭터는 덜 입체적이다. 그의 감정변화나 선택에 쉽게 몰입되질 않는 이유다. 자칫 불행한 가정사로 인한 트라우마 혹은 이기적인 성향처럼 단선적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어 아쉽다.

장르 특성상 남녀 주연배우의 역량이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큰 역할을 하는데 박보영-김영광은 환상의 복식조로 불릴 만하다. 이미 영화 ‘피끓는 청춘’(2014)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똑 소리 나게 강약조절을 하는 박보영의 연기는 이번에도 모자람이 없다. 특히 분량 많은 풋풋한 여고생부터 성숙한 커리어우먼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을 자연스레 연출한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은 ‘김영광의 재발견’이다. 고교생-대학생-취준생-사회초년생이라는 시간의 연대기를 모델이 화보 찍듯 해치워버린다. 희극에서 비극, 호쾌한 액션부터 섬세한 심리묘사에 이르기까지 자유자재로 구현한다. 모델 출신으로 10년간 나름 성취를 일궈온 그가 이런 배우였나 싶다.

무엇보다 안방극장에선 각광받는 장르이나 흥행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제 스크린에선 박제화 되다시피한 멜로·로맨스 장르에 도전한 시도가 반갑다. 액션, 스릴러, 첩보에서 벗어나 관객과 공명할 현실적인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많으며, 이 장르에 최적화된 연기를 보여줄 좋은 배우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러닝타임 110분. 12세 이상 관람가. 8월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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