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영화, 그 중에서도 BL 장르는 이제 마이너한 장르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만큼 소비층이 넓다. 하지만 아직까지 영화보다는 만화나 소설이 주 무대이기도 하다. ‘궁지에 몰린 쥐는 치즈 꿈을 꾼다’(이하 ‘궁지에 몰린 쥐’)는 일본의 여성 만화가 미즈시로 세토나의 작품 ‘쥐는 치즈의 꿈을 꾼다’와 ‘도마 위의 잉어는 두 번 뛰어오른다’를 원작으로 한 2020년작 영화다.

영화는 자신의 외도 사실을 옛 대학 후배 이마가세(나리타 료)에게 들킨 오토모(오쿠라 타다요시)가 반 협박을 통해 그에게 성접대를 하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지난해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소개된 시놉시스보다는 제법 퇴폐적인 내용이다.

작중에서 원래 유부남인데다 애초부터 바람둥이 기질이 있어 평범한 이성애자였던 오토모는 이마가세와의 관계 이후 자연스레 거부 반응을 겪는다. 실제로 영화는 키스 후에 거세게 양치질을 하는 장면이나, 불륜 대상이었던 여성과 충동적으로 하룻밤을 보내는 정사 장면을 통해 이를 나타낸다.

이후 영화의 대부분은 사랑을 갈구하고 집착하는 이마가세와, 성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는 오토모 간의 감정의 줄다리기로 그려진다. 인생에 갑자기 재등장한 이마가세가 마성의 남자라도 됐던 것인지, 평생을 이성애자로 살아온 오토모는 한없이 적극적인 그에게 말려들다 벗어나길 반복한다. 그야말로 ‘궁지에 몰린 쥐’다.

본작은 퀴어 영화가 아니라고 가정한다고 해도 감정선이 깊다. 두 사람 다 다른 한쪽에게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본능적으로 끌리는 부분이 있기에, 여기서 나오는 갈등과 해소가 절절하다.

오쿠라 타다요시는 수동적인 연애관을 가지고 살아오다 ‘남성’에게 끌리게 된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곤란함을 잘 표현했고, 나리타 료는 이성과 감정, 질투와 이해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준수하게 연기했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설정과 행보가 대한민국의 정서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어 감안하고 봐야 한다. 애초부터 두 주인공 중 한명은 상대방을 협박해 성관계를 맺는 사실상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 다른 한 쪽은 여자를 여러 명 갈아치우며 살아오다 가정을 꾸린 후에도 불륜을 저지르는 무뢰한이다. 두 사람의 배경을 허용할 수 없다면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확 줄어든다.

또한 베드신의 수위도 꽤 있는 편이다. 성기가 직접적으로 노출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이성간, 동성간의 정사 장면이 꽤 강도 높게 등장한다. 그래도 그 전후 보여주는 굵직한 감정 연기를 생각한다면 불필요한 노출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기도 하다.

한편 ‘궁지에 몰린 쥐’의 장점은 연출이다. 실제 연애였다면 지탄받을 만한 상황을 리얼하게 표현해 일본 영화 치고는 전개가 담담하고 깔끔하다. 정적이면서도 대화에 집중해 누군가는 지루하게 여길 수도 있다. 다만 기존 일본 작품들의 오버스러운 연출보다는 영화에 훨씬 어울린다.

단색 위주의 조명을 조용한 분위기에 더한 영상미도 괜찮다. 극의 분위기에 따라 배경의 메인 컬러도 변하며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조금 더 장면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사진=홀리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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