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대법원이 강제징용 소송을 두고 거래를 시도한 결정적 단서가 확보됨에 따라 검찰 수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정조준하는 모양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연합뉴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은 물론 재판거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는 전·현직 대법관들도 예상보다 일찍 검찰에 불려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봉수 부장검사)는 전날 오전 소환한 김기춘(7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16시간여에 걸쳐 조사하면서 2013년 12월 차한성(64)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과 서울 삼청동 비서실장 공관에서 가진 회동 내용과 경위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김 전 실장은 차 전 처장과 회동한 사실 자체는 부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회동에서 김 전 실장이 징용소송의 최종 결론을 미루거나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판결을 뒤집어달라고 요구했다는 내용이 담긴 회의기록을 확보했다. 지난 13일에는 회동에 배석한 윤병세 당시 외교부 장관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구체적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검찰은 회동 전후의 객관적 상황을 볼 때 당시 청와대와 사법부 사이의 재판거래가 사실상 실행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회동은 같은 해 8∼9월 대법원에 다시 접수된 전범기업의 재상고 사건을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할지를 재판부가 검토하던 시기에 이뤄졌다.

대법원은 2012년 같은 사건에서 이미 피해자들 승소 취지로 판결했고 이후 쟁점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징용소송 재상고 사건은 심리불속행으로 기각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이 사건 재판은 특별한 이유 없이 심리불속행 기각 결정이 내려져야 할 시한인 2012년 12월부터 이듬해 1월을 넘겼다. 아울러 당시 법원행정처의 현안이었던 법관 해외파견은 이듬해 2월 재개됐다.

징용소송 재판 연기와 법관 해외파견을 맞바꾸는 식의 부당한 거래가 공관 회동을 계기로 이뤄진 게 아니냐는 의심을 낳는 대목이다.

검찰은 양측의 거래 시도에 박 전 대통령의 뜻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전범 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할 경우 대일관계 악화뿐 아니라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한일청구권협정까지 흔들릴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조사를 검토하는 한편 회동 전후 사법부 내 의사전달 경로를 추적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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