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어떤 일 하세요? 뭐 하는 사람이세요?”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일반적으로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통해 자신이 평소에 구축해놓은 알고리즘 안에서 그 사람의 유형을 빠르게 분류하며 정체성을 규정짓는다. 그리고 이 사람이 나에게 제공하게 될 손익을 빠르게 계산하고 나에게 필요한 사람인지 불필요한 사람인지 결론을 도출한다. 속도가 돈이며 심지어 생명이 되는 초고속시대에 아주 효율적인 인간관계 정리 방법이다. 누군가를 천천히 알아가려 노력하는 것은 시간낭비가 되기 쉬울 테니까.

그러나 이 알고리즘은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라는 단편적인 정보만을 이용하곤 한다. 이 때문에 빠르게 결론을 도출했지만 그 결론에 오류가 많을 수도 있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 효율적이긴 하지만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빙산의 일각만을 보는 것처럼, 한 사람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간과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알기 위해선 수면 아래 숨어있는 수많은 요소들을 천천히 알아가야 그 결론이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이 평생을 걸쳐 계속될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다면 효율성의 알고리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람을 천천히 알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그 관찰대상이 타인뿐만이 아닌 나 자신이라고 할지라도.

 

Part 1 : 광고문자?

6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조용하던 휴대전화기가 느닷없이 짧게 한 번 울렸다. 주말 이틀 내내 아무 것도 안 하며 긴 잠을 자고 있던 내 휴대전화기가 웬일이지? 확인해보니 문자메시지가 왔다. 누구지?

메시지는 ‘(광고)느낌가게는…’ 로 시작한다. 역시 광고문자였다. 그럼 그렇지… 여느 때처럼 가볍게 휴대전화기를 내려놓으려다가 ‘느낌가게’라는 단어가 생각나서 전화기를 다시 본다. 광고 내용을 읽어본다. ‘오묘한 봉투산책’ 이라… 산책, 내 취미활동. 항상 혼자서 즐기는 고독한 취미활동이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들과 하는 산책이라면, 새로운 재미가 있을 것 같은데?

 

Part 2 : 한성대입구역

그리고 6월의 마지막 주 일요일 오후 4시 43분. 나는 지하철 4호선 열차 안에 앉아 전화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보며 시간과 장소가 틀리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그때, 한 장의 사진을 첨부한 문자가 왔다. 산책 주최자인 듯했다. 날씨가 더우니 지하철역에서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사진을 보며 상상한다. 몇 분 후에 이 장소에서 모이게 될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몇 명이나 될까? 사람이 많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사람이 많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내 성격과, 그 때문에 즐겁지 않았던 몇몇 모임들을 기억 속에서 떠올린다.

어느새 열차는 한성대입구역에 도착했다. 계단을 한 걸음씩 오를 때마다 긴장감이 한 단계씩 더해진다. 개찰구를 나와 약속장소인 6번 출구 앞을 찾아간다. 코너를 돌면 사진 속 그 장소가 나온다.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코너를 돌고 사진 속 장소에 들어선다. 두 사람이 있었다. 오묘한 느낌의 여자분과 오묘한 느낌의 남자분. 오묘한 여자분과 눈을 마주쳤다. “산책하러 왔어요” 라며 나는 인사를 한다. 산책의 주최자, 이름도 기묘한 기묘경씨다. 남자와도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순간 느끼는 약간의 긴장과 어색함. 다행히도 두 분이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덕분에 긴장이 조금은 풀린다.

오늘의 산책에 필요한 아이템들이 들어있는 작은 비닐가방을 건네 받는다. 그 내용물은 아직 비공개. 산책을 하며 하나하나씩 열어보게 된다고 한다. 어떤 산책이 될지 궁금하다. 기묘경씨가 자신의 가방에서 체리 한 봉지를 꺼내 권한다. 오늘의 산책이 체리처럼 달콤하고 맛있는 시간이 되길 바라며 체리를 집는다.

곧 성격이 밝아보이는 어떤 여자분이 도착한다. 그리고 기묘경씨와 비슷한 오묘한 스타일의 남자분이 마지막으로 도착하며 오늘의 산책멤버 다섯 명이 모두 모였다. 이 오묘한 느낌을 가진 네 명의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하지만 직접적으로 묻는 질문은 없다. 서로에 대한 기본적이고 일반적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산책이다. 심지어 이름까지도!

대신, 오늘 사용할 이름을 정한다.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맘에 드는 이름이 생각나면 아무 때나 이름표에 적으면 된다. 이름과 마찬가지로 서로에 대한 것도 산책을 하며 천천히 알아가게 될 거라고 여유 있게 생각한다.

 

 

출처= http://magazinewoom.com/?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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