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2일 개봉하는 ‘너의 결혼식’(감독 이석근)은 액션, 첩보, 스릴러와 같은 장르물이 지배하는 요즘 극장가에서 보기 드문 첫사랑의 로맨스 영화다. 언론 시사 이후 ‘제2의 건축학개론(2012)’이란 소리가 들려오는 이유다. 이 영화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남자주인공 우연 역 김영광(31)이란 ‘저평가 우량주’의 변모를 확인할 수 있어서다.

 

 

그는 고교시절 첫사랑 승희(박보영)를 향한 10년간의 전력질주를 편안한 호흡으로 수행한다. 남자의 순정을 무기로 ‘현실연애’를 정확하게 구현한 김영광을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날 오후,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얼굴에서 충만감 그리고 행복한 미소가 사라지질 않는다. 캐릭터와 배우 스스로가 절로 합체됐을 때의 표정이다.

“감독님께서 ‘그냥 우연이가 김영광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셔서 다음날부터 힘을 뺐어요. 나라면 어떻게 할까? 누굴 좋아하면 어떻게 행동하고 표현하지? 물어가면서 편하게 접근했어요. 사랑할 땐 훅 빠지는 편이에요. 마냥 잘 보이고 싶어서 혼자서 뭔가를 자꾸 하게 돼요. 짝사랑도 해봤는데 나중엔 포기했죠. 현실적인 승희 스타일과 막무가내일 정도로 우직한 우연이 스타일로 굳이 나누자면 전 우연 형에 가까워요. 첫사랑이 끝사랑이길 바라는 점에서도.”

배우 데뷔 전 밀라노 패션위크를 정복했던 187cm 우월한 비주얼의 패션모델이었던지라 김영광에 대한 이미지는 시크하고 강한 남자다. 우연이란 캐릭터를 입은 김영광은 학교에서 주먹 깨나 쓰는 남자지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만큼은 ‘멍뭉미’다. 아이처럼 해맑은 모습과 바보같은 웃음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평소 우연처럼 장난도 많이 치고 잘 웃는 편이에요. 제 지인들은 극중 고등학교 시절 우연이를 보고난 뒤 저랑 똑같다고 말해요. 말하는 투조차 판박이래요. 제가 보기에도 그런 거 같고. 여기에 감독님 친구 분이 우현의 모티브가 되셨는데 여러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모았다고 해요. 촬영하면서 감독님이 그런 실제 일어났던 이야기를 많이 해주면서 우연이를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고요. 그래서 리얼해 보이지 않았나 싶어요.“

 

 

풋풋한 고등학생부터 에너지 넘치는 대학생, 암울한 취준생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체육교사로 우뚝 선 사회초년생 시절에 이르기까지 한 남자의 청춘기가 파노라마처럼 스크린에 펼쳐진다.

“설레는 장면, 즐거운 장면이 다 저의 실제 감정이었어요. 벤치에서 승희와 헤어질 때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연애에 대한 남녀의 시선이 갈리듯이 저희가 촬영할 때도 우연과 승희 입장을 스태프들이 ‘100분토론’ 하듯 논쟁해가면서 찍었어요. 너무 우연에 몰입됐는지 이별 장면에서 승희와 헤어지기가 너무 싫었어요. 어린애가 백화점에서 원하는 걸 안 사준다고 바닥에 누워 엄마에게 땡깡 부리는 심정이랄까. 그래서 표현이 잘 된 듯해요. 지금도 그 장면을 보면 가슴이 뭉클해지고 저릿저릿해져요.”

박보영과는 2014년 영화 ‘피끓는 청춘’에서 공연한 바 있다. 당시에도 고교생 캐릭터를 맡았고, 여자 일진 영숙(박보영)을 짝사랑하는 홍성공고 싸움짱 광식을 연기했다.

“로맨스 연기를 할 때는 정말 상대 여배우밖에 안보여요. 극중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잖아요. 진짜로 앞에 있는 친구를 보면 떨리고 좋아야 되니까 상대 배우가 정해지면 그 분이 출연한 작품들을 보면서 계속 ‘너무 좋아 죽겠다’고 주입을 시켜요. 그런데 촬영이 끝나면 스르르 사라져요. 하하. 촬영 때야 매일 만나니까 좋아 죽겠지만 끝나면 못 보니까 절로 그런 감정이 내려가 버리더라고요.”

‘피끓는 청춘’ 이후 연락한 적이 없었는데 촬영장에서 만나는 순간, 다시 친해지는 시간이 아예 필요 없을 정도였다. 이틀 전 만난 친구처럼 일사천리로 감정을 이어갔다.

 

 

“보영씨가 기본적으로 잘 웃고, 상대를 편하게 해줘요. 싸우는 신, 좋아하는 신도 있는데 그냥 보영씨 눈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리액션이 됐어요. 정말 대단한 배우예요. 언론시사 때 영화를 보면서도 다시금 감탄했어요.”

인터뷰 초반에는 캐릭터를 계산하는 법 없이 자연스럽게 동화되고, 감정을 실어내는 배우로 여겼다. 하지만 아니다. 작품, 캐릭터에 따라 접근방식을 달리할 뿐이었다.

“시청자 반응을 봤을 때 내가 준비했던 부분들이 표현이 잘됐구나, 그런 캐릭터로 보였구나 싶으면 보람이 느껴지죠. 지난해 드라마 ‘파수꾼’ 때도 이번처럼 뿌듯했어요. ‘파수꾼’은 캐릭터의 개연성을 찾아가지고 기술적으로 계산하면서 연기했어요. ‘너의 결혼식’과는 정 반대였죠. 후반부로 갈수록 통쾌하게 복수하고 ‘포텐’이 터질 때 반응이 좋았어요. 1회부터 캐릭터를 끌고 오면서 잘 짰구나, 스스로 만족했죠.”

모델에서 연기자로 전환한 뒤 한창 작품에 출연하던 중 군입대해야 했다. 남자 청춘스타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근심이 많았던 시기였다.

“군대 있으니까 욕심이 생기고 초조해지더라고요. 대중으로부터 잊혀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었죠. 빨리 작품을 해야겠다, 제대하자마자 무조건 해야겠다는 조급함이 엄청 심했어요. 그런 감정이 사람을 과하게 만들더라고요. 불안하게 몰아가고.”

 

 

군 제대 후 2014년 드라마 ‘아홉수 소년’에 뛰어들었고, 연기자로서 긴 호흡과 여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전에는 연기할 때 떨리고 불편함에도 티 나지 않게 했다면 요즘은 그냥 느끼는 대로 하고, 긴장하지 않게끔 스스로를 달래는 듯해요. 기다리는 시간에도 여유롭게 뭔가를 준비하고요. 간혹 머리 아프고 생각이 많아지면 새벽에 한강에 자전거를 타러 가요. 한두시간 타고 오면 풀리고 그래요.”

정상의 모델에서 초보 연기자로 다시 시작했을 때 당연히 힘들었다. 연기를 접하고 나니 더욱 어려웠다. 계속 작품 오디션을 보고 다니면서 조연으로 합격했고, 언젠가는 주연을 맡게 되겠지, 긍정적으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버텼다. ‘욕심’은 그를 지탱시켜준 자양분이었다.

“마음을 달래면서 연기하는 게 좋은 연기가 나오는 1번인 것 같아요. 캐릭터에 대한 불편함, 부담감을 촬영할 때만큼은 없애야죠. 그래도 요즘은 내추럴하게 하는 때가 많으니 많이 발전한 거죠.”

김영광은 ‘너의 결혼식’ 이후 9월에 마동석과 짝패를 이룬 범죄 코미디 영화 ‘원더풀 고스트’에서 원칙주의 경찰 출신 고스트 태진으로 출연한다. 또 tvN 새 드라마 ‘나인룸’에서 사건의 키를 쥔 미스터리한 인물로 김희선과 호흡을 맞춘다. 올해를 황금기로 껴안은 김영광의 ‘열일’ 워킹이 주목된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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