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설이 파격이 되고 파격이 다시 전복이 된다. 20세기 게이 문화를 이끈 아티스트 '톰 오브 핀란드'의 미술은 그 자체로 투쟁이었다. 동시에 삶의 투쟁은 그에게 곧 미술이었다.

 

 

영화 '톰 오브 핀란드'는 앤디 워홀에게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 토우코 라크소넨의 일대기를 담은 작품이다. 이야기는 토우코 라크소넨이 2차 대전 당시 군인으로 활동하던 때부터 시작한다. 라크소넨은 전쟁터에서 자신의 동성애적 욕망을 드러낸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라크소넨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그의 삶은 여전히 전쟁터다. 오히려 군인 시절보다 더 큰 억압을 겪는다. 핀란드가 동성애자를 가혹하게 차별하는 국가였기 때문이다.

라크소넨은 전쟁 후유증과 동성애 혐오를 일러스트를 통해 극복하려 한다. 그의 그림은 동성애적 시각으로 남성의 신체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외설적인 작품이다. 당시 핀란드에서 동성애자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감옥에 갈 수 있었다. 때문에 라크소넨은 자신의 작품을 '톰'이라는 가명으로 공개한다.

 

 

2차 대전에서 조국 핀란드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라크소넨이지만 군복을 벗은 그는 나라가 단속해야 할 '불온한 동성애자'일 뿐이다. 이런 상황이기에 라크소넨의 그림은 반향을 얻는다.

라크소넨의 삶은 전쟁 속에서 가장 자유로웠고 전쟁이 끝난 후에 가장 황폐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를 부른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는 인권에 대한 억압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그는 가장 가까운 가족인 여동생 카이야 라크소넨(제시카 그라보프스키 분)에게 조차 자신의 성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한다. 혼란 속에서 그를 숨 쉬게 하는 것은 결국 예술, 그림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자아를 확립한다.

핍박 속에 탄생한 작품이기에 라크소넨의 그림은 아주 도발적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경찰관과 제복이 자주 등장한다. 터질 듯한 근육질의 남자들이 경찰복을 입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성교를 한다. 이는 매 순간 동성애자들을 감시하는 경찰의 모습과 겹치며 포르노로서의 기능과 공권력에 대한 조롱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간다.

 

 

퀴어 영화답게 영화는 동성애자인 라크소넨이 겪는 사회적 차별을 조명한다. 성교 행위 도중에 난입하는 경찰, 끌려가 폭행당하는 파트너, 공권력으로부터 외면당해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일상 등이 그려진다. 그에 비하면 함께 사는 여동생을 매번 속여야 하는 고충은 사소한 일에 불과할 정도다.

훗날 라크소넨의 연인이 되는 벨리(라우리 틸카넨 분) 역시 동성애자임을 숨기기 위해 카이야에게 호감이 있는 것처럼 군다. 벨리는 결국 자신을 인정하고 라크소넨과의 사랑을 이어간다. 남성 동성애자를 내세운 영화에서는 여성이 남성 동성애자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로 쓰이거나,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어리석은 인물로만 그려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는데 '톰 오브 핀란드' 역시 이런 뻔한 전개를 담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는 말미에서 미국으로 건너가 해방감을 맛보는 라크소넨의 표정도 담는다. 핀란드의 우울한 푸른 색채와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햇살은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라크소넨의 싸움, 게이들의 싸움은 멈추지 않는다. 이는 성소수자를 향한 탄압이 여전한 2018년의 한국에 남다른 메시지를 전한다. 러닝 타임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 8월 30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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