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라이징 스타’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24)가 특별한 행보로 클래식 애호가뿐만 아니라 영화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오는 20일 개봉하는 영화 ‘체실 비치에서’(감독 도미닉 쿡)는 갓 결혼한 부부인 현악사중주단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시얼샤 로넌)와 역사학 전공 대학원생 에드워드(빌리 하울)가 환상적인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떠난 뒤 첫날밤에 서로가 알지 못했던 비밀에 직면하며 결별을 택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세계적인 영국작가 이언 매큐언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에서 할리우드 연기파 여배우 시얼샤 로넌(24)이 연주하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명곡을 직접 연주했으며 OST에 수곡된 23곡을 소화한 에스더 유는 지난달 말 댄 존스 음악감독과 동반 내한해 2일까지 특별 상영회 및 다양한 행사에 참석했다. 9월의 첫 날, 짬을 낸 그와 강남 논현동 유니버설뮤직 코리아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해서 언젠가는 영화음악에 참여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기회가 빨리 오게 됐어요. 도미닉 쿡 감독이 ‘여주인공이 22살 바이올리니스트고 주연 여배우도 그 또래니 비슷한 나이대의 여성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면 좋겠다’고 해서 열심히 찾고 있었대요. 댄 존스 음악감독이 전에 제 연주를 들었던 적이 있어서 제 바이올린 사운드가 OST와 잘 어울리겠다 싶어서 연락을 해왔죠.”

지난해 5월21일 뉴욕 링컨센터에서 미국 데뷔 리사이틀을 마친 다음날 e-메일을 받았다.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는 설명과 함께 악보를 첨부파일로 보내줬다. 영화음악 3곡을 런던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다급한 상황이었지만 관심이 있던 사안이었고, 음악이 너무 아름답고 짧은 곡이라 수락했다. 곧장 원작소설을 구입해 벨기에의 집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탐독했다.

 

 

도착하니 또 한 통의 e-메일이 받은 메일함에 반짝이고 있었다. 추가로 몇 곡을 더 녹음했으면 한다는 내용이었다. OST에는 영화음악 창작곡, 기존 협주곡과 독주곡, 체임버 음악이 혼재됐다. 에스더 유가 이번엔 메일을 보냈다.

“영화음악이 있고 체임버 음악도 많아서 그건 누가 녹음하느냐고 물어봤어요. 제작사 쪽에선 시간이 촉박해 스튜디오 뮤지션을 활용할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엔딩 타이틀엔 제 이름이 올라갈 텐데 그러긴 싫어서 악보를 다 보내달라고 했어요. 처음의 3곡이 나중엔 23곡이 된 거죠.(웃음) 악보를 받은 뒤 1주일 동안 식사도 거르고 밤을 새워가면서 악보를 분석해가면서 녹음준비를 했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어요. 해내고 나니 불가능은 없다는 걸 깨달았고요.”

리사이틀이나 오케스트라 협연과 달리 영화음악 OST 녹음은 음악만 이해해서는 안됐다. 스토리를 세밀하게 이해하는 게 관건이었다. 녹음 들어가기 전에 가편집 상태인 영화를 보여 달라고 해 사용될 음악이 어떤 장면, 어떤 감정에서 나오는 지를 파악했다.

또한 댄 존스와 머리를 맞대고 음악 해석과 연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갔고, 스튜디오에서는 도미닉 감독과 디테일하게 영화와 음악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녹음이 끝난 뒤에는 댄 존스와 편집을 같이 했다. 모든 게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영화 '체실 비치에서'의 주연 여배우 시얼샤 로넌(사진 위)과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

“클래식 음반 레코딩은 전 적으로 제 해석에 따르고, 연습한 대로 녹음하면 되는데 영화음악 레코딩은 제 해석보다는 감독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장면과 순간에 어울리는 감정에 초점을 맞춰야 했어요. 영화 장면을 보면서 녹음을 하는데 제가 미리 준비해간 게 화면과 맞질 않는 경우도 있어서 현장에서 다르게 표현한 경우도 생겼고요. 감정을 맞추기 위한 연구가 지배한 과정이었죠.”

클래식 음악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경험이나 새로운 도전을 즐기는 성향이라 다시 기회가 오면 또 해보고 싶단다. 이번처럼 OST 참여일 수도 있고, 자신이 직접 주연을 맡아 연주하는 음악영화도 가능하다. 에스더 유는 2012년 여름방학을 이용해 뉴욕 필름아카데미에서 액팅 코스를 수학한 적도 있다.

총 32개 트랙이 수록된 ‘체실 비치에서’ OST 가운데에선 댄 존스 작곡의 두 번째 트랙 ‘Solemn Love’를 가장 인상적인 넘버로 꼽는다.

“영화의 캐릭터와 감정이 쌓여진 곡이라 좋더라고요. 연주하기에도 느낌이 굉장히 좋았고 특히 이 영화에 잘 어울리는 곡이었어요. 체임버 음악으로는 슈베르트 현악4중주 ‘죽음과 소녀’ 1악장이 인상적이에요. 극중 연주할 때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느껴지는 감정과 표현, 음악이 서로 잘 어우러져서 절로 이해되고 매우 좋았어요.”

‘체실 비치에서’ 완성본을 무려 8차례나 봤다. 처음 봤을 때 느낌이 가장 특별했다. 자신의 연주 소리가 대형 스크린과 고퀄리티 스피커 시스템으로 크게 들려오는데서 오는 감동이 각별했다. 무엇보다 혼자 녹음실에서 녹음을 진행하는 게 아닌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고 합의를 이루며 일했던 지라 ‘팀워크’에 대한 생각이 흐드러졌다.

 

 

“바이올리니스트 역을 맡은 시얼샤 로넌이 아주 열심히 활 연습을 했다고 들었어요. 지난해 5월 영국과 미국에서 개봉한 뒤 토론토 필름페스티벌에 초청 받았을 때 저도 참석했어요. 프로모션을 하면서 만난 배우들이 ‘이번 영화에서 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아주 잘 살려줬다’며 제 음악을 굉장히 좋아하더라고요. 소설 안에서 곡들을 정확히 배치할 정도로 음악에 해박한 작가 이언 매큐언도 OST에 대해 대단히 만족스러워 했어요.”

영화 덕후인 그가 좋아하는 배우는 관록의 여배우 메릴 스트립이다. 영화에 출연할 때마다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등장하는 것을 그의 장점으로 꼽는다.

“영화에서 본인이 아닌 캐릭터로 보이는 배우가 좋은 것 같아요. 메릴은 굉장히 다양한 캐릭터를 제각각 달리 표현하잖아요. 캐릭터 해석을 잘 하는 것 같아요. 연주자 역시 작곡가, 레퍼토리에 맞게 표현해야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 면에서 배우와 연주자가 비슷한 게 많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음에도 꽤 정학한 발음과 우아한 톤으로 대화를 이어가던 에스더 유는 예상(혹은 편견)을 깨고 익스트림 스포츠 마니아라고 고백했다.

“높은 산 정상에서 뛰어내리는 패러글라이딩과 속도감 넘치는 오토바이를 즐겨 타요. 부모님께선 위험하다며 결사반대하시지만, 아드레날린이 불출되는 걸 좋아해서 익스트림한 스포츠를 좋아해요.”

 

 

★ 에스더 유는?

미국에서 태어난 에스더 유는 4세부터 바이올린을 시작, 8세에 협주곡 데뷔 공연을 가졌다. 2006년 비에냐프스키 국제 콩쿠르 주니어 부문 1위에 이어 2010년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 3위, 201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4위를 석권했다. 모두 최연소 입상이었다. 2014년 영국 BBC 선정 ‘뉴제너레이션 아티스트’에 이어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최초의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거장 로린 마젤,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등과 협연해온 그에 대해 평단은 “선명한 사운드와 완벽한 해석력” “열정적이고 순수한 예술성” “어둡고 기품 있는 음색”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사진= 권대홍(라운드 테이블)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