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금성 박채서가 과거 자신의 행적에 대해 낱낱이 밝혔다.

 

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이중간첩으로 전락해 사회에서 사라졌던 한 공작원 흑금성 박채서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쳤다.

육군 소령 출신의 안기부 비밀 공작원인 박채서는 1997년 15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당시 대선에 나선 김대중 후보가 속해있던 새정치국민회의 정동영 대변인을 찾아 "곧 위험한 공작이 펼쳐질거다"고 예고했다. 거대한 북풍이 몰아치고 누군가의 월북 사건이 시작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전 천도교 교령 오익제가 1997년 8월 15일 월북했고, 공작 첩보는 대선 직전까지 여러 차례 전해졌다. 정동영 의원은 "김대중 후보에 빨갱이라는 색을 칠하기 위해 끝까지 공작한거다. (첩보 덕분에) 대응책을 수립하고 대응해서 정권 교체가 가능했다 생각한다"고 말하며 박채서에게 공을 돌렸다.

그로부터 3개월 후 그의 정체가 세상에 알려졌다. 바로 안기부 비밀 문건이 공개됐기 때문이다. 이 문서에는 대선 전 김대중의 대선 저지를 위한 공작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문건은 한 비밀 공작원의 정체도 세상에 알렸다. 그가 바로 영화 '공작' 모티프가 된 암호명 흑금성이다.

 

그리고 지난 2010년, 각종 뉴스와 신문에 갑자기 흑금성이 등장했다. 다름 아닌 간첩혐의로 체포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공작원 은퇴 후 남북 화해 분위기에서 대북 사업을 했다는 그는 군사교범과 작전계획 등의 군사기밀을 북의 지령을 받아 넘겨받은 혐의를 받아 6년 간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풀려났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흑금성 박채서를 만났다. 1998년 신분이 공개되며 안기부를 나온 흑금성은 "나는 김대중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현재 국민들이 김대중을 원했다. 국민들이 올바르게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게 내가 할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없이 북한을 드나들었던 그는 군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북측의 끊임없는 의심을 샀다. 평양에 갈 때마다 그의 가방을 몰래 뒤지는 짐검사가 이어졌다. 미리 표시를 해두거나 옷 사이에 머리카락을 두어 짐 검사 여부를 확인했다. 이 모든 시험을 통과한 후 그는 북한에게 남한의 정보를 수집해주는 큰 정보원이자 큰 돈을 벌게 해주는 창구가 됐다.

박채서는 97년 1월 국내 한 휴대전화 광고를 북한 내에서 촬영할 수 있는 계약까지 성사시켰다. 그러나 남한 대선을 앞두고 베이징 한 호텔에서 북측 인사에게 돈가방을 건네는 당시 신한국당 정모 국회의원을 목격했다. 박채서는 “그는 이회창 후보의 외교안보담당 특보였다”며 "대한민국 지도층에 있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고 폭로했다.

심지어 그 돈은 북한에게 준전시상태에 버금가는 군사적 행동을 해달라는 청탁이었다. 흑금성은 이를 보고했으나 보고 후에도 안기부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박채서는 요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내가 하지 않은 일, 내가 국가 안보에 해를 끼치는 간첩놀음은 하지 않았다. 6년이라는 징역을 받았는데 아닌 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북풍이 몰아친 1997년 대선 이후 2번의 대선이 더 지나간 2010년 어느날,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돼 군사용 작전 교리 등을 전달했다는 내용으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심문 과정에서 국정원이 자신을 꽤 오랫동안 지켜봤다는 것을 알게 됐다. 98년 안기부에서 해고된 직후, 북으로부터 보복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가 제일 걱정이었던 박채서는 북한 리호남(리철)을 만나 "난 당신들한테 손해 입힌 거 없다"고 하며 용서 받았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후 리호남과 만남을 끝냈어야 했지만 박채서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후 그는 정부를 도와 민간 교류를 늘렸다. 2000년 남보원의 이산가족 상봉, 2005년 남측 이효리-북측 조명애의 휴대전화 광고 등을 성사시켰다. 박채서는 대북사업 비선 역할로 제2의 인생이 시작됐다고 생각했다. 통일부의 북한주민접촉 승인도 받았기에 별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박채서는 안기부 공작원이 아니라 민간인 신분이었음에도 군사교범을 복사해주거나 서울, 경기도 지도를 구해주기도 하면서 잘못된 행동을 했다.

이에 박채서는 "명분이 필요했기 때문에 국가 군사기밀에 해당되지 않은 범위에서 내가 일을 저지른 것이다. 군사적으로 전략적 가치, 국가 이익 차원에서 어떤 것이 더 큰 이익이라 판단한건데 난 그걸 판단하면 안되는 위치였다"고 설명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은 박채서에게 돈을 받고 군사기밀을 유출했다고 알려진 예비역 김모 장군 부부를 만났다.

김장군이 중요한 군사기밀을 유출했다며 기무사가 언급한 것은 한미연합사의 공동 군운용 계획 작전계획 5027-04이었다. 수사관들은 2005년 4월 경기도 포천 관사에서 두 사람이 만나 정보를 건넸다고 지목했다. 수사관들은 김장군이 그림까지 그려가며 작전계획을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장군은 대화는 모두 일상적인 수준의 대화였다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은 두 사람이 관사에서 그런 대화를 나눴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국정원은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의 질문에 적법한 수사를 통해 유죄를 받은 사안이라는 입장을 보내왔다.

김장군은 "박채서가 김대중 정권의 탄생 1등 공신이라고 하더라. '박채서 때문에 잃어버린 10년이 됐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고 하더라. 검찰단장이 천안함 사태로 시국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시인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재판에 군사전문가 자격으로 증언을 했던 김종대 의원은 "작계 5027-04가 북에 건네졌다는건 엄청난 사건처럼 보인다. 그러데 내용을 보면 허접하기 이를 데가 없다. 박채서가 북에 줬다는 작전 개념은 그런게 아니라 일반적인 통제선 개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너무 이상한 재판이라고 본 것이 정략적인 동기 없이는 이런게 재판 건이 되느냐 했다. 내 의문은 그거였다. 이게 재판거리가 되는거냐. 이건 경징계 사안도 안된다"고 덧붙였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캡처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