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에 길이 남을 공성전이라면 단연 ‘반지의 제왕’ 시리즈가 떠오른다. 새하얀 미나스티리스 성벽과 이를 향해 전진하는 사우론의 군대를 보고 있으면 위화감과 함께 공포가 엄습한다. 간접 체험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현장에 있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 ‘안시성’은 이 지점을 정확히 포착해 스크린에 펼쳐놓는다.
 

물론 제작비나 규모면에서 ‘안시성’을 ‘반지의 제왕’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한국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전쟁 액션의 최대치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드론은 물론이고 로봇암과 팬텀카메라, 스카이워커 등 고급장비와 기술력이 결집한만큼 생동감있는 관람이 가능하다.

비현실적인 액션에 기인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눈여겨볼 지점이다. 감독은 신화적 인물을 창조하기 위해 초월적인 힘을 끌어오는 무리수를 피해갔다. 혼자서 수십, 수백의 병사를 상대하는 어마어마한 괴력의 소유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현실적인 격투 사이에서 느껴지는 정교한 연기의 합이 ‘안시성’의 액션 포인트다.
 

20만 대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향해 ‘직진’하는 당 태종 이세민(박성웅 분)을 고작 5천명의 군사로 막아서는 양만춘(조인성 분)이라는 인물도 매력적이다. 기존 장군이나 장수의 이미지를 벗어나 젊고, 날렵하다. 더불어 근엄하기 보다는 자애롭고 인간적인 성주로 그려진다. 조인성이라는 스타와 양만춘이라는 극중 인물의 만남이 초반 어색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이내 뇌리에서 잊혀진다.

다소 가볍게 느껴질 수 있는 양만춘의 존재감은 추수지(배성우 분)를 비롯한 ‘고벤져스’가 든든히 받쳐준다. 활보(오대환 분), 풍(박병은 분), 파소(엄태구 분), 백하(설현 분)이 ‘안시성’이라는 연대의 섬세한 감정선을 만들어낸다.
 

스크린 데뷔를 ‘안시성’으로 치르게 된 남주혁은 연개소문(유오성 분)으로부터 양만춘을 처결하라는 지시를 받고 달려온 사물 역을 맡았다. 앞서 ‘만찢남’ 외모 때문에 유약하거나 판타지적인 인물로 그려져오던 남주혁은 이번 영화를 통해 전쟁의 참상을 통해 성장하는 태학도 수장 사물을 유연하게 그려내며 항간의 우려를 씻어냈다.

영화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끌어왔지만 브로맨스, 혹은 커플케미 역시 놓치지 않는다. 조인성-배성우, 조인성-남주혁, 오대환-박병은, 엄태구-설현 그리고 성동일과 그의 모친으로 등장하는 치매노인까지 저마다의 드라마를 그린다. 많은 인간군상을 담으려다 보니 관계가 헐겁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감동의 요소로 받아들이는데 무리는 없다.
 

이 영화 최고의 주인공은 바로 공성전이다. 안시성을 두고 벌어지는 세 번의 전투는 200억 대작의 스케일을 확인시킨다. 체험형 액션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작품답게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시키며 밀고 당기는 전쟁신이 완성됐다. 88간의 전투 기록이지만 불도저 당 태종과 전략에 능한 양만춘의 첨예한 대립이 팽팽히 긴장의 고삐를 당겨준다.

‘안시성’이 고구려와 당의 전쟁이라면 작품 외적으로는 추석 극장가 최강자를 다투는 장외경기도 흥미롭다. ‘안시성’과 함께 ‘협상’, ‘명당’이 동시에 개봉한다. 세 영화 모두 연기력으로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조인성이 과연 ‘명당’, ‘협상’의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까. 오는 19일 개봉. 러닝타임 135분. 12세 관람가.

사진=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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