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를 제물 삼은 재판거래의 실체 폭로에 주말 안방극장이 충격에 빠졌다.

15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들의 참상을 재조명했다. 해외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복곤씨는 1991년 타계한 아버지 고 김종옥씨가 유품으로 남긴 오래된 사진 한 장과 낡은 수첩을 공개했다.

 

 

‘결의분첩’이라는 제목의 수첩에는 19명의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이 적혀있다. 최태성 강사는 이 사진과 수첩을 본 후 "자신들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과 명단이 결의분첩이 아닐까"라고 예상했다. 수첩의 마지막장에는 ‘남화태도’라고 적혀있다.

‘남화태도’는 남사할린 섬이라는 의미였다. 사진 속 인물들 모두 강제징용 피해자로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야기이다. 한국인 15만명을 사할린에 끌고 왔던 일본은 전쟁 패배 후 자국민만 데리고 이곳을 떠났다. 한국인들은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 정부는 1965년 일본과 한일협정을 체결했고 국제사회는 사할린 한인 귀환 문제 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귀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등의 문제로 흐지부지 됐다. 당시 사할린에서 귀환을 신청한 이들은 7000명이 넘었다. 일제강점기 화태로 끌려갔고, 공산화된 소련 땅에 억류된 한국인. 잔혹한 역사는 그들을 그곳에 가둬뒀다.

일본 말고 또 다른 가해자는 전범기업들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18년 전 국내 소송을 시작했지만 그 결과가 지금껏 나오지 않고 있다. 최악의 전범기업은 미쓰비시와 신일본제철이다. 탄광과 조선소에 우리 국민을 강제 동원하고 임금도 제대로 주지 않은 전범기업이다. 1995년 피해자들은 일본에서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결과는 패소였다. 2000년 한국법정에서 시작된 미쓰비시 중공업을 대상으로 한 국내 소송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이들은 억울함을 국가가 풀어주리라 믿었지만 소송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2005년 국내에서 신일본제철에 대한 소송도 시작됐다. 이들 역시 국내 소송 1심과 2심에서 연이어 패소했다. 패소의 이유는 한일협정 당시 개인 청구권이 이미 소멸됐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한일협정은 국가간 체결한 것으로 개인의 청구권까지 소멸됐다고 봐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당시 김능환, 박병태 대법관은 미쓰비시 중공업과 신일본제철 재판을 다시 하라며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파기 환송된 재판은 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2013년 대법원으로 재상고된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종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2013년 제18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했다. 그 시기 법원의 수상한 행보가 시작됐다. 박근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1965년 체결한 한일협정. 피해자들이 승소하면 해당 협정이 일본과의 관계 회복에만 치중된 것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났을 것이다.

최근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청와대의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됐다. 여러모로 청와대와 법원의 재판거래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보인다. 대통령은 아버지의 치부를 덮는 것이 급했고, 당시 사법부는 상고법원 제도를 지상과제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SBS 기자는 "상고법원이라는 것에 대해 당시 사법부가 얼마만큼 집착했는지 이해안될수도 있다. 법원 분위기는 상고법원이 지상과제였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3심으로 재판이 진행된다. 1심과 2심의 결과에 불복한 사람들이 3심 대법원까지 간다. 상고법원이 생기면 일반적인 3심은 상고법원에서 진행된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은 상고법원 설치에 열성적이었다. 전문가는 "대법관이 안 되면 사직해야 하는데 대법관 직은 13석으로 한정돼 있다. 그런 상태에서 상고법원 제도가 생기면 상고법관으로 임명되기 위해 대법원장 눈치를 보는 정도가 가속화된다"고 설명했다.

2013년 12월 1일 청와대와 법원 수뇌부 인물들이 비밀스러운 만남이 있었다. 그리고 재판은 하염없이 미뤄졌다. 박근혜 정부와 법원 수뇌부의 만남은 또 이뤄졌다. 이 자리에는 박병대 신임 법원행정처장도 자리했다. 박병대는 앞서 일본 책임을 인정했던 대법관이었다. 2015년 8월 8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도 있었다. 2018년 6월 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판 독립의 원칙을 금과옥조로 삼는 법관으로 40여년을 지내왔다. 어떻게 남의 재판에 관여하고 간섭을 하고 그런 일을 꿈 꿀 수 있겠냐"고 주장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겪은 지옥 같은 시간에 대한 보상을 단순히 거래로만 본 것일까. 정말 상고법원 설치 때문이었을까. 의문은 남는다. 대법원장의 임기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퇴임이 예정돼 있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상고법원 설치가 중요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는 "관피아라는 말을 많이 한다. 고위 공무원들이 퇴직 이후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는거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장, 대법관이었던 분들은 퇴직 후에도 법원에 영향력을 행사할 위치에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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