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관객들 사이에서도 일명 ‘천재감독’으로 불리는 데이미언 셔젤의 영화 ‘퍼스트맨’이 스크린을 찾아온다. 지금까지 SF물이 보여준 서사를 완벽하게 탈피했다. ‘퍼스트맨’은 인류의 여정이 된 한 인간의 족적을 담은 드라마다.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스크린으로 끌어왔지만 영웅서사 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에 입각해 이야기를 끌어 나간다. 때문에 자칫 건조할 수도 있지만 인물과 인물, 인물과 세계의 갈등 사이에서 좀 더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적인 사건을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는 흔히 말하는 국뽕과는 거리가 멀다. 닐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달에 착륙한 인물이자 미국의 우주항공의 자부심이지만 스크린 안에서 오롯이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감독은 닐 암스트롱에게 대단한 인류애나 막중한 시대적 사명감을 것을 피해간다.
 

대신 한 우주비행사가 국가적인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희생되는 동료들을 지켜봐야 하는 참담한 심정과 시대라는 거대한 흐름 앞에서 마주하는 갈등이 주를 이룬다. SF 장르를 취하고 있지만 드라마의 성격이 강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극 초반 닐은 딸의 죽음을 경험하고 이어 아폴로 11호의 성공적인 발사까지 테스트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절친한 동료들의 목숨이 순식간에 꺼져가는 모습을 목도한다.

별 다른 방법이 없어 우주선에 몸을 싣는다는 동료의 말처럼 닐 역시 자신의 소임을 다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둔 가장이자, 가장 사랑하는 딸을 잃어본 경험으로 죽음 앞에 절대 냉정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던 명사로서의 닐 암스트롱이 아닌 인간 닐의 모습이 담담하게 전해진다.
 

‘위플래쉬’, ‘라라랜드’가 음악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퍼스트맨’은 심리적인 묘사를 위해 도구로서의 음향 효과가 극대화 됐다. 영화의 도입부를 비롯해 인물들이 우주선에서 느끼는 공포가 고스란히 음향을 통해 전달된다. 아이맥스로 영화를 관람한다면 몸이 견뎌낼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비행하는 우주선 안에서 느끼는 굉음과 기계들의 파열음이 빚어내는 거대한 공포를 고스란히 만끽할 수 있다.

배우들 간의 케미도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라라랜드’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흥행 콤비에 등극한 라이언 고슬링이 강직하면서도 우직하게 임무 수행에 매진하는 닐 암스트롱을 그려낸다. 마치 ‘라라랜드’ 속 LA의 세바스찬이 불쑥 튀어나와 언제라도 피아노를 연주해도 무방할 것 같은 우수에 찬 눈빛연기도 킬링 포인트 중 하나다. 닐의 아내 자넷을 연기하는 클레어 포이는 남편을 미지의 행성으로 떠나보내는 불안과 공포의 감정을 절묘하게 표현한다.
 

범우주를 배경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인터스텔라’, ‘그래비티’와 견줄만큼 시각적인 효과 역시 풍부하다. IMAX 촬영을 전격 도입해 관객이 우주 비행사가 된 느낌으로 간접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쉽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활한 우주로 떠나는 매개지만 마치 관처럼 압박해오는 좁은 우주선 실내, 그리고 불안과 설렘이 가득한 달 착륙의 순간까지 1인칭 시점으로 체감하게 된다.

‘라라랜드’ 같은 로맨스나 감동을 기대하고 영화관을 찾는다면 ‘퍼스트맨’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가 줄 수 있는 간접체험의 만족, 그리고 역사의 현장을 느끼고 싶다면 ‘퍼스트맨’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10월 18일 개봉. 데이미언 셔젤 감독. 러닝타임 141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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