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함이 각광받는 시대, 더욱이 크리에이티브한 사고와 사람들이 넘실대는 패션계에서 모델 변준서(28)는 여러모로 유니크한 인물이다. 가을이 골목골목 사이로 옷자락을 날리는 핫플레이스 성수동 스튜디오에서 ‘미운 오리 새끼’이자 ‘백조’의 양가적 남자를 만났다.

 

 

쌍꺼풀 없는 눈매에 살짝 드러나는 덧니와 각진 얼굴, 근육질 몸매가 예사롭지 않다. 최근 윤종신의 ‘미스터 레알’ 뮤직비디오에 출연해 ‘근육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더욱이 캐나다 토론토에서 모델 데뷔했다. 교포냐고? 아니다. 순토종이다.

대학 토목건축공학과를 다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모델 꿈을 이루기 위해 2015년 여름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토론토 근교 지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운 좋게도 유명 에이전시인 엘리트 토론토와 2년 계약을 체결, 모델링에 ‘올인’했다.

“별반 삶의 굴곡 없이 살았기에 한번 만들어보자 하고 떠났어요. 한국에서 데뷔해도 되는데 국내에선 근육질 체형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아카데미 등 시스템이 뿌리내려 있어서 빨리 성장하기 힘든 환경이라고 판단했거든요. 그래서 보다 수월하고 기회가 많은 북미 특히 캐나다에서 자리 잡아보려 한 거죠.”

첫 작업은 토론토의 유명한 게이 매거진 ‘아이 앰’ 표지 및 화보 촬영이었다. 트랙 저지 재킷에 데님팬츠, 코트를 입은 채 카메라 앞에 섰다. 섹슈얼한 동양남자 이미지를 갖춘 덕에 발행 후 게이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도배됐을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이후 매거진, 캠페인 룩북촬영을 비롯해 패션쇼 런웨이까지 점령했다. 1년간 맹활약을 했으나 비자 문제 때문에 안타깝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제 몸이 커서 한국에선 인기가 없을 게 뻔했거든요. 다행히 귀국하자마자 운 좋게 잘 풀렸어요. 엘리트 토론토에서 어레인지를 해줘 좋은 소속사에 둥지를 틀게 됐거든요.”

지난 2년 동안 패션위크 쇼모델로 캣워킹을 했고, 잡지 GQ 아레나 맨즈헬스 에스콰이어 플레이보이 등의 화보를 섭렵했다. 변준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데 익숙하고 거침이 없다. 이를 통해 현실적인 좌표를 정하고, 방향성을 정립한다. 깨나 스마트한 청춘이다.

“시즌마다 2~3개씩은 했는데 전 쇼모델은 아닌 듯해요. 한국은 바이섹슈얼 브랜드들이 너무 많아서 저 같은 체형(186cm·72~74kg)의 모델을 기용하려고 하지 않아요. 50~60kg대의 슬림한 남성모델이 주력군이죠. 캐나다에선 ‘근육을 만들고 몸을 키워라’란 주문을 받았는데 한국에선 ‘뚱뚱하니 10kg을 빼라’란 비판을 들었거든요. 다양성이 지배하는 외국 패션계와 달리 한국은 획일화된 부분이 많아서 원 없이 쇼모델을 하려면 해외무대로 진출해야 해요.(웃음) 반면 얼굴에 각이 많아서 포토제닉한 장점 덕에 화보, 룩북, 광고모델로 인기가 높아요.”

그의 기준으로 모델은 ‘얼핏 보면 잘 생기고, 얼핏 보면 못 생겨야’ 한다. 그래야 옷을 잡아먹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얼굴이 그런 스타일이라 옷과 조화를 이룬다고 자평한다. 듣는 내내 자화자찬의 느끼함이 묻어나질 않는다. 남성적인 마스크라 영 캐주얼은 어울리지 않는다. 선 굵은 외모와 근육질 몸매의 영국모델 데이비드 간디가 영 캐주얼을 소화하기 힘들 듯이. 그럼에도 착장해야 할 땐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연기를 해서 옷의 느낌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전 더티&섹시패션, 헝클어지고 마초적인 느낌이나 정반대의 정장이 잘 어울려요. 스포츠웨어라든가 돌체앤가바나와 구찌 정장이 잘 어울리죠. 슬림과 미니멀리즘의 첨단을 달리는 디올 옴므 촬영 때는 니트인데도 옷이 찢어져 버려 많이 혼났어요. 하하하.”

행복함이 얼굴 가득 묻어난다. 한국 활동이 잘 풀리고 있어서다. 국내에서 뿌리를 잘 내려놓으면 나중에 해외에서 대형 쇼나 캠페인 모델로 얼마든지 활동을 할 수 있으리란 자신감에서다.

“프리랜서로 살기로 마음 먹은 이상 가능한 여러 직업을 갖는 게 유리하죠. 모델의 생명력을 짧기 때문에 방송이나 연기 욕심은 모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거예요. 저 역시도 기회가 왔을 때 그걸 포기하진 않을 거고요. 몸과 표정을 굉장히 잘 쓰는 장점을 살려 연기연습도 본격적으로 해나갈 계획이에요. 연기를 배워본 적도 없이 이번 뮤직비디오에서 남자주인공을 맡아 혼자 연기했는데 칭찬을 많이 받았거든요. 고무돼서 욕심을 갖게 됐어요.”

경찰 공무원인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한 변준서는 비행기 조종사가 꿈이었다. 고1 때부터 시력이 악화돼 포기하고 토목공학과에 진학했다. 20대 초반, ‘도전 수퍼모델 코리아’가 시작했을 때 방송을 보며 “어떤 출연자들보다 내가 나은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 도전자가 어깨가 넓다고 떨어졌다. “난 안되겠구나”라고 절망했다. 그랬던 그가 먼 길을 돌고돌아 톱모델이 됐다.

 

 

강렬한 꿈이 있다. 해외로 진출해 캘빈 클라인, 폴로 랄프 로렌, 돌체앤가바나, H&M의 월드와이드 캠페인 모델로 활동하는 것이다. 자신과 잘 어울리는 브랜드라는 점과 더불어 진부하게(?) 패션쇼에 서는 게 아니라 브랜드 헤리티지와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캠페인 모델로 차별화를 꾀하고 싶어서다.

“캠페인에 참여한 뒤 한국에 돌아오면 모델로서 활동 영역이 엄청 넓어질 듯해요. 많은 한국 모델들이 해외 런웨이에 서고 있으니 그들이 하지 못하는 분야에 도전하고 성취해내고 싶어요. 모델로 두각을 나타내 독보적인 모델이 되고 싶어요. 내 자신이 롤모델이 되고 싶은 신념이 있어요. 존경하는 모델은 백반증이란 핸디캡을 딛고 슈퍼모델이 된 위니 할로우예요. 모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의 표본이기 때문이죠.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려 들고, 성형수술하는 모델들도 있는데 자신을 과감하게 보여준다는 게 정말 중요해요.”

이의 일환으로 최근 직접 사진과 영상촬영을 진행했다. ‘어깨’의 무게를 덜어내고자 쿨하고 훈훈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망가지거나 괴상한 표정을 연출하는 등 색다른 시도를 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스스로를 만드는 작업에 도전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그의 ‘모델론’이 궁금했다.

“몸 쓰는 직업에선 힘 푸는 게 가장 중요해요. 더불어 모델은 뭘 하든지 당당해야 하고요. 그 상황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더라도 티를 안내고 당당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하죠. 자신 없어하면 오디션이든 쇼무대든 그냥 탈락이거든요.”

사진=허승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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