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독일 나치스는 주관적 의식과 내면 표현을 강조하는 원시주의, 표현주의 등 모더니즘 계열 작가들의 활동을 반정부 작품 못지않은 정신적 오염원으로 간주하고 대가들의 작품 1만7000여점을 압수해 ‘퇴폐미술전’을 꾸린 뒤 불태우거나 경매 처분해 버렸다.

권용주 '한나라당' 현판(사진 왼쪽) '바르게살기운동본부' 기념비 모각

8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서울 한복판에서 ‘퇴폐미술전’(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트 스페이스 풀)이 열리고 있다. 나치의 '퇴폐미술전'을 패러디한 전시는 청년작가 8명과 1팀이 낸 회화, 영상, 조각, 아카이브 작품을 퇴폐로 규정하고 비난하는 텍스트를 함께 배치한다. 하지만 이 텍스트가 역설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재조명하도록 한다.

안소현 기획자는 “최근 검열논란 등으로 표현의 자유가 재론되는 상황에서 예술이 먼저 사회의 경직성과 편견을 드러내보자는 의도였다”고 말한다. “경직된 사회가 특정한 예술을 규제하려고 세운 전략만큼이나 작가들이 치밀하게 예술을 지키는 전략을 가지려고 노력했는지를 묻고 싶었다”는 것이다.

권용주 작가는 ‘한나라당’ 현판 모각 작품과 바위 모양의 스티로폼 기념비 조각을 선보인다. 기념비에는 굵은 정자체로 '바르게 살자'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단순하면서도 교훈적인 이 문구의 생경함은 재료의 가벼움과 결합돼 냉소를 자아낸다.

장파 'My little riot girl' 캔버스에 유채
오용석 '흔들리는 or 흔들림' 캔버스에 유채

여성의 적나라한 선홍색 몸이 관객 앞에 치부를 보여주거나 몸짓으로 육박해오는 장파 작가의 그림들은 격렬하면서도 실체가 불분명한 작가 내면의 정서와 욕구를 분출한다. 오영석 작가의 회화 작품들은 남성의 아름다운 신체와 동성애 장면을 마치 흔들린 듯한 화면 구성에 화려한 색감으로 풀어내 마치 금기와 환상 사이를 오가는 느낌을 준다.

그 옆으로 색과 소리의 관계, 공감각 등에 얽힌 일상의 이미지들이 프랑스시 낭송육성과 함께 흘러나오는 전소정 작가의 영상 설치물이 눈과 귀를 붙든다.

특이하게 벽 아랫부분이나 천장 가까운 위쪽에 의도적으로 작품을 내걸어 놓았다. 출품작들마다 작가의 의도와 작품 가치를 깎아내리며 비난하는 프로파간다 문구들이 도처에 함께 붙어있는 점도 이채롭다. 문의: 02)396-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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