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인터뷰
[인터뷰] ‘폴란드로 간 아이들’ 추상미, 전쟁을 껴안은 여배우

지난 3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여배우 추상미(45)가 기획, 각본, 연출, 출연, 편집을 도맡은 영화다.

앞서 단편영화 ‘분장실’(2010), ‘영향 아래의 여자’(2013)를 통해 예사롭지 않은 연출력을 보여준 그가 처음 도전한 장편영화이기도 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첫 공개돼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은 작품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고아들이 폴란드로 보내져 어떻게 성장했는지, 그들을 친자식처럼 품에 안은 폴란드 교사들의 사연을 때로는 가슴 뭉클한 휴먼스토리로, 때로는 긴장감 넘치는 추적 스릴러 터치로 매끄럽게 변주한다. 묵직한 메시지를 담담하면서도 밝고 경쾌하게, 다큐멘터리에 대한 편견을 깨트리고 한 편의 웰메이드 상업영화처럼 만들어낸 그에게 찬사가 쏟아지는 중이다.

“2014년 이 소재를 출판사에서 픽업한 뒤 1년 6개월가량 극영화 시나리오 작업에 매달렸어요. 시나리오 리서치를 위해 폴란드를 방문했다가 300명 가운데 10명 남짓 남은 생존 교사들의 얘기를 듣고 다큐멘터리로 남겨야겠다고 방향을 튼 거죠.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스토리가 많아서 초반엔 가볍고 밝게 가고, 아이들의 슬픈 사연보다 고아들이 폴라드 선생님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전쟁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동심을 회복한 점에 주목하려 했어요.”

영화는 북한 꽃제비 출신 탈북 여대생 이송과 추상미의 폴란드 여정으로 전개된다. 1950년대 북한의 고아들과 2010년대 북한에서 탈출한 청소년, 세대를 달리하는 남과 북의 여성, 제2차 세계대전을 온몸으로 겪은 폴란드 선생님들과 한국전쟁의 피해자인 고아들의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엮이며 먹먹한 감정을 자아낸다.

“산후우울증이란 불안정성에서 출발했다. 공교롭게 송이의 엄마 역할을 해주는 상황이 됐다. 편집 때 보니 막판에 송이가 나와 많이 친해져 있더라.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탈북 후 중국에 머물던 시절의 스토리 등을 잠들기 전에 많이 나눴다. 고난의 행군 때 넘어온 아이들은 체제가 싫어서 나왔다기보다 먹고 살기 힘들어서 나왔다. 작은 통일의 여정을 경험해본 듯하다.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의 차이, 갈등을 고스란히 느꼈지만 엄마의 시각에서 품어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상처와 힘겨웠던 순간을 들으면 연민이 절로 생겨난다. 남과 북도 그런 과정을 거치며 가까워지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많은 관객들이 궁금해 했을 대목이다. 왜 푸른 눈의 폴란드 교사들은 이국만리에서 온 검은 눈의 아이들을 그토록 각별히 애정했을까. 6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눈시울을 붉히며 추억할까.

“일반적 관계가 아니라 특별한 교감과 유대였다. 폴란드와 한국의 역사가 비슷하다. 세계 열강에 둘러싸여 분단을 경험했다. 기차역에 처음 보는 동양 아이들이 도착했을 때 타국의 아이들이 아니라 내 유년 시절의 일부처럼 여겨졌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 ‘아빠’라 부르라 했다고 한다. 상처가 매개가 돼 혈육같은 느낌이 들었던 거다. 상처가 깊을 수록 같은 상처를 겪은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도 깊어지지 않을까. 아이들이 북한으로 송환되고 나서 받은 편지엔 그들의 녹록치 않은 삶이 보여 교사들이 가슴 아파했다고 들었다. 몇몇 교사들은 북송 전 특별히 친밀했던 아이들을 입양하고 싶다고 청원했는데 북한 대사관에서 거절했다는 후일담도 들을 수 있었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처음부터 다큐멘터리로 시작했던 게 아니라 극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끼어든’ 케이스다. 탈북 청소년 소재 영화를 만드는 상태를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영화 오디션 과정이 액자극 형식처럼 등장해 자연스러운 리듬감을 부여한다.

“관객들이 이 다큐를 영화처럼 보기를 원했다. ‘시네다큐’ 혹은 ‘드라마적 다큐’가 적절할 것 같다. 드라이하게 팩트를 따지는 역사다큐로 갈 경우에 너무 많은 프레임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나. 폴란드 선생님들은 당의 명령을 받고 일했다. 하지만 그들은 신앙심 깊은 가톨릭 신자들이었다. 그래서 종교, 세대, 이념을 초월해 다른 민족의 아이들을 품었다. 한국전 발발 이유를 언급해야 하지 않느냐란 말도 있었으나 프레임을 뛰어넘어 연민과 공감에 초점을 맞췄기에 일부러 빼버렸다. 옳고 그름을 넘어 불쌍한 이들에 대한 사랑, 그게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랑이란 생각을 했다.”

그가 준비하는 극영화 ‘그루터기들’은 시나리오 3고까지 나온 상태다. 빠르면 내년 혹은 내후년에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갈 수 있다. 로케이션 촬영을 허락받은 마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이 폴란드에 넘겨준 지역이다. 북한 고아들이 지냈고 이후 폴란드 중증 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가 있는 이곳은 숲과 호수, 고성이 즐비한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곳이다. “비주얼은 정말 빼어날 것”이라며 눈을 반짝인다.

“오디션을 봤던 탈북 청소년 몇몇은 출연시킬 예정이다. 남한 배우들도 캐스팅해야 하는데 풍기는 이미지가 북한 사람 같았으면 좋겠다. 조단역 배우들은 합숙을 해보려고 하는데 사투리와 문화를 서로 배우는 과정 자체가 작은 통일의 여정일 듯 싶다. 물론 이송도 출연한다. 연기를 잘하는 데다 담력이 강하다. 탈북민 배우 1호가 됐으면 한다. 그럴 가능성이 충분한 친구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배우 추상미’를 접한 지 꽤 오래 됐다. 지난 2014년 연극 ‘은밀한 기쁨’ 출연과 2015년 ‘아빠의 청춘 블루진’ ‘新 부자수업’ 진행이 마지막이다.

 

“하면서 별로 재미를 못 느낀 듯하다. 대신 무대에 대한 욕심은 크다. 아버지(연극배우 고 추송웅)를 보고 배우며 자랐기 때문이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여주인공 블랑쉬나 안톤 체홉의 작품에 나오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미련이 있다. 내가 왕성하게 연기했을 당시만 해도 살아있는 여성 캐릭터가 별반 없었다. 남자들의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여자들이 많았다. 내가 스타일리시하거나 미모의 배우가 아니라 할 기회도, 관심도 없었다. 나중에 내가 만드는 영화에선 살아있는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 현재는 새내기 감독으로서 영화 만드는 작업에 집중하고 싶다.”

그가 추구하는 영화들은 ‘하트’가 없으면 만들 수 없다고 자평한다. 본질이 마음이라면 배우로 연기할 때든 감독으로 연기할 때든 똑같다고 여긴다. 다만 감독은 배우보다 더욱 감정과 이성이 공존해야 한다는 점, 캐릭터에 빠져 고립된 배우와 달리 감독은 세상 및 사람들과 계속 공감하고 소통해야 하는 점이 다르다. 그 점이 좋았다. 처음으로 느껴가고 있는 기분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당대를 풍미했던 연극배우였고, 어머니, 오빠, 올케 그리고 남편 이석준(뮤지컬배우) 모두 배우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배우인 흔치 않은 가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국영수 잘해라’는 말 대신 ‘좋은 예술가가 돼라’는 훈육을 받고 자랐다. 엄마가 내 아들한테도 ‘얘도 배우 해야 해!’라고 말씀하실 정도다. 아버지가 위대한 예술가이셨기에 어머니의 기준이 굉장히 높으시다. 자라날 땐 부담이었는데 나이가 들고나선 그 기준이 나를 계속 도전하게 만든다. 한때 아버지가 부담스러운 존재였으나 예술가로서 사회에 기여하려 하셨던 부분이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의 존재가 내 안에서 더욱 깊어짐을 느낀다.”

 

사진=CGV 아트하우스 제공

 

용원중 기자  goolis@slist.kr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용원중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관련기사 icon故 신성일, '아름다운예술인상' 공로예술인 선정..."한국영화 발전 이바지" icon엄앵란·김수미·이순재·문희·조인성, 故신성일 추모하는 ★들 “하늘에서도 배우하시길” icon[인터뷰] '신비한 동물사전2' 수현, 편견 이겨낸 당당한 발걸음...“도전은 언제나 즐거워” icon[인터뷰] 김성훈 감독 "현빈이 있어 '공조' 가능했고 '창궐'이 완성됐다" icon[인터뷰] '완벽한 타인' 염정아, 배우-엄마 두 마리 토끼 잡은 완벽한 행보 icon[인터뷰] '완벽한 타인' 이서진, 멋진 배우로 사는 법..."늘 새로움을 찾는다" icon[인터뷰] ‘미쓰백’ 한지민, 인생캐릭터 연이어 품은 화양연화 icon동방신기, 2018 日 콘서트 동원력 1위..아라시-아무로 나미에 제쳤다 icon트와이스, '치어업' MV 3억뷰 돌파...신보 'YES or YES ' 컴백 앞서 겹경사 icon‘완벽한 타인’ 100만 돌파+주말 박스오피스 1위...‘보헤미안랩소디’ 제압 icon'미우새' 김건모X강부자 '미안해요' 환상 하모니...시청률 21.9% '최고의 1분' icon'일단 뜨겁게 청소하라' 메인 포스터, 윤균상X김윤정 달달 분위기 '설렘유발' icon'백일의 낭군님' 종영이 불편했던 시청자에 마지막 선물...9일 '별책부록' 편성확정 icon야성美 넘치는 하정우표 액션, 'PMC: 더 벙커' 티저 예고편 공개 icon‘슈돌’ 5주년 특집, 삼둥이-방탄소년단등 축하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최고 13.5%기록' icon‘12경기 연속 무승’ FC 서울, 대구와 1-1 무승부...“강등 위기 걱정” icon아동수당, 소득수준 관계없이 만 6세 미만 자녀 둔 모든 가정에 지급 icon솔로변신 키, 브이로그 ‘Key-log’ 6일 오후 4시 첫공개...셀프캠 촬영 icon‘보헤미안 랩소디’ 전세계 50개국 박스오피스 1위...‘라라랜드’ 제친 “머큐리 파워” icon공부하느라 수고했어 ‘마틸다’ ‘더플레이댓고우즈롱’ 수험생 할인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