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책으로 위안을 얻고 삶의 새 기운을 얻지요.

해보니까 그것도 기운이 있을 때 얘기예요. 저는 무릎이 콱 꺾일 때 도저히 책 한 줄, 신문 한 줄 못 읽겠어서 이게 정말 벼랑이구나 했어요.  

 

하여간 뭔가 막혀있던 시기였는데, 가장 만만한 휴식이자 소일거리였던 책 읽기가 더듬더듬해지니 막막하데요. 그때 아무 생각없이 읽어낸 책들이 먹는 이야기였습니다. 식도락, 레시피, 식문화, 식재료 등등 먹는 책 홍수 속에서 수십 권을 골라 게걸스럽게 읽어치웠어요. 

실제로 식욕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와중에, 글로 씌여진 진수성찬들에 침을 줄줄 흘리면서 공복 상태로 페이지를 넘겼던 계절이 있습니다.

 

 

그렇게 공복 속 뇌세포의 식탐을 헤매이다가 이런 책을 만납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

소설가 한창훈이 남쪽 바다에 살면서 얻어지는 바닷 것들을 해먹는 내용인데,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빗대 설명하는 물고기 이야기도 재밌습니다. 워낙 글맛이 좋고, 펄떡이는 파도, 짭쪼롬한 해풍도 실려 옵니다. 쉽게 쓰인 책인데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생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인터넷이나 모바일 레시피, 컬럼에는 없는 생생한 짠 맛입니다.

 

‘대가의 식탁을 탐하다’(박은주)는 작가가 현직 기자시절 컬럼으로 쓴 글을 엮은 것인데 역사 속으로 사라진 대가들을 식탁에 불러내 가상으로 대화를 나눕니다. 픽션과 논픽션이 오가지요. 헤밍웨이와 모히토, 소동파와 동파육, 카사노바와 치즈, 반 고흐의 감자 등 명사들의 사소하고도 위대한 음식 이야기가 맛깔나게 펼쳐집니다. 재밌고 흥미로운 상식도 덤으로 챙길 수 있어요.

 

순서 없이 맥락없이 정처없이 읽어도 되는 책들, 이런 책들을 다시 펼치고 있는 요즘입니다.

허기는 느닷없이 찾아와서 광풍처럼 몰아칩니다. 

그것이 위장이든 뇌세포이든 자존감이든 잠재울 만한 방패를 내 안에서 찾지 않으면 안됩니다. 저로선 이렇게 가벼우면서 스토리가 있는 미식책들이 뇌의 공복을 달래주었던 것 같아요.

한 끼 정도는 맛있게 차려먹는 하루 되시길요. 

  

에디터 안은영 eve@slist.kr (작가,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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