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군단이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진출 실패를 겪으며 한동안 암흑기를 보냈던 네덜란드 축구대표팀이 UEFA 네이션스리그에서 화려한 부활을 예고했다. 2014, 2018 월드컵 우승국들을 차례로 잡으며 네덜란드는 유럽 축구계에 다시 한 번 오렌지 물결을 일으키려고 한다.

네덜란드는 올해 월드컵 이후 6경기에서 3승 2무 1패의 성적을 거뒀다. 상대가 페루, 벨기에, 프랑스, 독일이라는 점에서 보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결과다. 그들이 월드컵 진출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EPA=연합뉴스

#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 → 2018 러시아 월드컵 진출 실패 그 후...

아르옌 로벤, 로빈 판 페르시, 베슬리 스네이더, 라파엘 판 더 바르트 등 2010 남아공 월드컵 준우승 멤버들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 선수들을 뒤로하고 네덜란드는 세대 교체를 준비했다.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네덜란드는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 유럽 최고 리그에 밀리며 리그 내 자원들을 해외로 보냈다. 무엇보다 리그에서 네덜란드 인재들이 터져 나오지 못했다.

PSV 아인트호벤에서 활약한 멤피스 데파이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적 후 팬들에 실망을 안겼다. 고향팀 페예노르트로 돌아온 노장 로빈 판 페르시는 리그를 집어삼키는 공격수의 위용을 보여줬다. 이 두 모습은 네덜란드의 현실을 보여줬다. 유망주는 해외 리그에서 실패를 맛봤고 해외에서 전성기를 보내 다시 돌아온 노장은 자국 리그를 점령했다. 네덜란드 리그가 얼마나 하향평준화 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네덜란드는 언제나 그랬듯 유망주를 키워냈다. 1995년 아약스를 UEFA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올려놓은 선수들은 유망주 출신이었다. 패트릭 클라이베르트와 에드윈 판 더 사르가 대표적이다. 아약스는 물론 페예노르트, PSV 아인트호벤은 네덜란드 유망주가 터져나오는 곳이었다. 꾸준히 유망주가 등장했지만 최근 몇 년 간 크게 성장한 이는 거의 없었다.

# 데 리흐트, 데 용 등 초신성의 등장

이번에는 다르다. 아약스에서 최고 유망주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1999년생 중앙 수비수 마티아스 데 리흐트와 1997년생 중앙 미드필더 프랭키 데 용이 그 주인공이다. 마티아스 데 리흐트는 19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안정된 수비력을 뽐낸다. 어린 나이지만 아약스 주장라인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올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바이에른 뮌헨과 경기에서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를 꽁꽁 묶은 모습은 전세계 팬들의 머리에 깊은 인상으로 남겨졌다.

프랭키 데 용은 미드필드에서 공수 연결고리 역할은 물론 후방 플레이메이커와 공격형 미드필더까지 가능한 다재다능 플레이어다. 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시티가 돈지갑을 들고 영입할 준비를 마쳤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볼 키핑, 패스, 수비, 공수 조율, 창의성 모두 월드 클래스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였다.

여기에 PSV 아인트호벤 오른쪽 수비수 덴젤 덤프리스, 공격수 스티븐 베르크빈, 미드필더 파블로 로사리오와 페예노르트의 미드필더 토니 빌헤나까지 자신의 능력을 국가대표부터 소속팀에서까지 보여주고 있다. 출중한 신예 선수들이 등장한다고 국가대표팀 실력이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네덜란드 대표팀은 로벤, 판 페르시 등 주축 선수들이 ‘고인물’처럼 한 자리씩 차지했다. 그들을 대체할 마땅할 인재가 없는 것도 있지만 유망주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 자연스럽게 세대 교체 시기가 오면서 기회를 받은 유망주들이 경험을 쌓으면서 실력 또한 발전했다.

AFP=연합뉴스

# 불안한 쿠만 감독의 기막힌 반전

2018년 2월 네덜란드는 로날드 쿠만 감독을 선임했다. 쿠만 감독은 발렌시아, 사우샘프턴, 에버턴에서 감독 생활했다. 선수로는 바르셀로나 레전드 수비수였다. 발렌시아에서는 ‘최악의 감독’이라는 평을 들었고 사우샘프턴에서 재기에 성공했다. 에버턴으로 와서 다시 한 번 추락했다. 네덜란드가 쿠만 감독을 선임할 때 대부분의 사람은 걱정했다. 맡은 팀마다 명장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덜란드가 UEFA 네이션스리그 파이널에 오른 지금, 상황은 달라졌다.

쿠만 감독은 기본적으로 4-3-3 또는 4-2-3-1 포메이션을 가동한다. 원톱은 현재 리옹에서 뛰고 있는 멤피스 데파이가 주로 섰다. 거의 ‘폴스 9’에 가깝다고 본다. 정통 공격수 없이 윙어 자원 3명을 스위칭해 빠른 역습을 주무기로 삼았다. 빌드업이 되는 수비수와 기동력 있는 미드필더가 가세해 효과적인 역습을 만들 수 있었다.

프랑스와 독일을 잡은 비법도 여기에 있다. 공격시에는 빠르게 공격수부터 미드필더가 전방으로 뛰었고 수비시에는 모든 선수가 하프라인 안으로 들어와 압박을 시도했다. 공수가 안정화되자 네덜란드의 경기력도 점점 향상됐다. UEFA 네이션스리그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 독일전에서 0-2로 뒤지다가 수비수 판 다이크를 전방에 배치해 2-2로 동점을 만든 전술은 인상적이었다.

# ‘캡틴’ 판 다이크가 보여준 수비의 품격

유망주의 등장, 쿠만 감독의 전술에 이어 ‘캡틴’ 버질 판 다이크가 지키는 수비진은 가공할 만하다. 네덜란드는 UEFA 네이션스리그 조별리그 4경기 동안 단 4실점을 기록했다. 경기당 1실점이었지만 상대가 프랑스, 독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적은 수치다. 판 다이크가 주축인 소속팀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최소 실점(맨체스터 시티와 동률, 12경기 5실점)을 기록하고 있다. 대표팀에서도 데 리흐트 등 어린 선수들을 다잡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수비라인을 견고히 쌓았다.

판 다이크는 빌드업이 능하고 체격이 단단해 공중볼과 몸싸움에도 월드 클래스 실력을 뽐낸다. 무엇보다 전방에 투입되면 상대 수비수들을 괴롭힐 수 있다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판 다이크는 독일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전방 배치돼 극적인 동점골을 기록했다. 강팀의 조건은 단단한 수비력이 우선된다.

판 다이크가 지키는 수비, 데 리흐트와 데 용 등 유망주들의 발전, 자리잡은 쿠만 감독의 전술 등 퍼즐 조각이 맞춰지며 네덜란드는 다시 한 번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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