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철 (24, 대학교 사망년)

1. ㄷㄱ대
사랑하는 나의 모교. 나는 취직 안되기로 유명한 학과에 12학번으로 재학중이다. 군대를 제외하면 내 이십대의 삼분의 일을 여기에 쏟아붓는 중. 사실 열심히 다닌 느낌은 아니다. 스님들 쫓아가 학점을 구걸하며 학기를 마무리했던 지난 학기와 다름없이 이번 학기 역시 험난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2.5
학점만 생각하면 깡소주를 100병 까고 막걸리로 샤워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내 성적은 반올림조차 할 수 없는 깔끔한 2.5다. 내 잉여로운 청춘히 고스란히 녹아든 이 숫자엔 뜨거웠던 학고의 순간 또한 담겨있다. 이제 나에겐 이 처참한 학점을 만회할 수 있는 세 학기가 남았다.

3. 술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궁합이 안맞아 자제중이다. 최근들어 내 오장육부가 술로 인해 썩어가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예전에 술을 필요 이상으로 들이켜도 반나절만 지나면 쌩쌩했지만 이젠 석달 열흘을 병마와 싸워야만 멀쩡해질 수 있다. 억울한 건 나는 아직 푸릇푸릇한 대학교 사망년이라는 거다. 대딩이라는 거다. 스물네짤이라는 거다.

4. 산다라박
나는 산다라박을 좋아한다. 고삐리 때부터 부동의 이상형이다. '롤리팝'에서 그 야만적인 머리를 하고 등장했을 때부터 좋아했다. 냉정하게 보면 그녀의 재능이라곤 얼굴 뿐인 것 같지만, 그 외모를 좋아한다. 사람을 외모만으로 좋아한다는 걸 밝히는 게 주저스럽지만 그래도 나는 산다라박을 좋아한다.

5. 첫사랑
지금은 여자친구도 없으니까 실컷 추억팔이를 하고 싶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반 여자애가 알고보니 나와 같은 방향으로 하교한다는 걸 알았다. 그애가 가방을 뒤적이다 안에 있는 걸 쏟았는데,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내용물을 주워담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반했었다. 지금 걔랑은 친구로 지낸다. 가끔 걸걸한 말을 쏟아내는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주며 "입냄새 난다"라고 다정히 말해주는 사이가 됐다.

6. 프사
카카오톡을 깐 이래 난생 처음으로 프사를 올렸는데 갑자기 오만데서 연락이 온다. 셀카도 아닌데. 무서웠다. 내가 SNS를 못하는 이유가 이거다. 내 일상 한 조각을 타인과 공유하는 순간 즉각적으로 반응이 온다는 것. 내가 나의 이런 생각을 말하자 친구가 왜 사냐고 한다.

7. CNP
내게 예수 같은 존재. 강 같은 존재. 피부 멸망 수준이던 나를 피부미남으로 거듭나게 도와준 차앤박 형님들. 이제 나는 드름을 완전히 탈피해 다른 브랜드를 쓰고 있지만, 드름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겐 언제나 두말 않고 차앤박부터 추천하며 브랜드 충성도를 지켜나가고 있다.

8. 초콜릿 케이크

좋아해서가 아니라, 싫어해서 적는다. 이게 누군가에겐 엔돌핀이라지만 나에겐 그저 구토 유발 음식일 뿐. 혐오한다. 영화 '마틸다'에서 웬 돼지놈이 꾸역꾸역 입안에 쑤셔넣는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가 됐다.

9. 청춘시대

딱히 여자주인공들이 좋아서는 아니고 방학인 요즘 정말 열심히 보고 있다. 한예리를 보면 꼭 일학년때의 내 모습 같아서 엄마 몰래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한예리 못지 않게 류화영의 파란만장한 인생도 열렬히 응원함과 더불어 왕따놀이 가해자인 티아라의 꾸준한 부진을 기원한다.

10. 로또

9번을 적다가 생각난 건데,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집 사정이 하도 말이 아니어서 나도 그렇고 누나도 그렇고 알바 세 탕의 인생을 잠시나마 살았었다. 그런데 내가 군대에 가자마자 울엄마가 로또 2등에 당첨된 거임. 그래서 어떻게 어떻게 일이 잘 풀렸다. 그래서 요즘 같은 방학에도 누나랑 내가 각자의 방구석에서 틀어박혀 나올 생각도 않고... 드라마나 보면서 지낼 수 있게 됐다. 그러니까 결론은 아무런 생각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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