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희극인 구봉서가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평생 370편의 영화에 출연한 ‘한국의 찰리 채플린’ 구봉서는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의 희극지왕이었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문희 남정임 윤정희와 남녀주연 케미를 잇따라 선보였는가 하면 스타감독 김수용이 이름을 제목에 넣은 ‘구봉서의 벼락부자’(1962)를 만들 정도였다.

 

1. ‘애정파도’(1956)

1926년 평양에서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서울로 온 구봉서는 김용환 악극단에 입단해 18년간 악극단 생활을 했다. 그의 영화 데뷔작이다. 아버지가 다른 남매의 사랑과 파국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으로 화제를 뿌렸던 작품. 문화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전옥 안나영 이예성 등이 출연했다. 

 

2. ‘오부자’(1958)

권영순 감독의 희극영화이자 음악영화 ‘오부자’가 대히트하면서 한국영화계에 희극영화 붐이 일어났다. 극중 아버지(이종철)와 어머니(복혜숙)의 네 아들 역 양훈(뚱뚱이), 양석천(홀쭉이), 김희갑(합죽이) 그리고 구봉서는 ‘막둥이’란 별명을 얻었다. 전후 암울했던 서울을 배경으로 오부자의 일상을 흥겨운 음악과 통쾌한 웃음으로 담아내 전쟁의 상처로 고통 받던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한 수작이다.

 

3.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이만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한국전쟁 당시 해병부대의 전우애를 그려낸 수작 반공영화. 현실감 넘치는 전투장면을 연출했으며 해병대원 3000여 명이 출연하는 스케일을 자랑했다. 이만희 감독은 대종상, 청룡상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이대엽 최무룡 장동휘와 공연한 구봉서는 청룡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4. ‘남자식모’(1968)

구봉서가 한 가정에 식모로 입주하며 벌어지는 소동극을 다룬 ‘남자식모’는 그해 명보극장에서만 2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흥행 3위를 기록했다. 성 역할을 바꾼 캐릭터는 당시로선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져 ‘남자기생’ ‘남자 미용사’ ‘월부 남비서’ ‘남자식모 속편’ 제작으로 이어졌다.

 

5. ‘수학여행’(1969)

주로 코미디영화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였던 구봉서가 유현목 감독의 ‘수학여행’에서는 낙도 아이들을 인솔해 서울로 수학여행을 가는 교사 역을 맡아 구수하고도 착한 심성을 진지하게 소화해 백마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부인 역으로 문희가 출연했다.

 

6. ‘뜨거워서 좋아요’(1969)

6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 중 한명이었던 윤정희와 부부로 출연했다. 애처가와 의부증 남편 사이를 오가는 동방산업 백부장을 연기했다. 이형표 감독의 코미디 영화로 오늘날로 치자면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여배우 사미자 인인숙 윤인자의 풋풋했던 리즈 시절을 확인할 수 있다.

 

7. ‘이층집 새댁’(1969)

당대를 풍미했던 트로이카 여배우의 핵심 인물이자 ‘멜로여왕’ 문희와 부부로 공연했다. 신식 새댁이 보수적인 집안에 들어와 고부갈등을 극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든다는 내용을 그렸다.

 

 8. ‘서울의 지붕밑’

젊은 의사와 사귀는 딸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한약방 주인(김승호)을 통해 서민의 애환, 전통과 현대적 가치의 충돌을 담아냈다. 구봉서가 싱그러운 전파상 총각으로, 콤비 플레이어인 희극배우 김희갑이 복덕방 영감으로 출연한 코미디 영화.

 

9. ‘소문난 구두쇠’(1970)

서울 변두리 지역에 모인 구두쇠 상인들이 마을 예비군을 편성하고 여관에 투숙 중인 간첩을 체포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서영춘 양훈 등 코미디 스타들이 대거 출연했다.

 

10. ‘우리 강산 차차차’(1971)

천상의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지상에서 한달 동안을 보낼 수 있게 된 두 남자의 소동극. 희극배우 아이콘들인 김희갑, 허장강, 배삼룡 등과 공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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