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아인이 2018년을 장식한 최고 배우로 뽑혔다. 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 선정 ‘The Best Actors Of 2018’ 12인에 줄리아 로버츠, 에단 호크, 엠마 스톤 등 할리우드 톱스타들과 이름을 나란히 했다. 아시아 배우로는 유일하다. 뉴욕타임스는 해마다 가장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배우를 집중 조명해왔는데 유아인은 ‘버닝’(감독 이창동)에서 청춘의 불안한 내면을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 이같은 영예를 안았다.

사진=UAA 제공

상반기 ‘버닝’에서 자신을 둘러싼 계급적 착취구조의 현실에 눈을 뜨고 분노를 표출하는 무산계급 청년 종수의 뜨거운 외침을 전했던 그는 하반기 ‘국가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에서는 IMF에 베팅한 뒤 부의 바벨탑을 쌓아 올리며 속물로 전락해가는 청년 금융맨 윤정학의 시니컬한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는 지난달 28일 개봉해 200만 고지를 넘어섰다.

“전 세대가 공감할 이야기라는 기대가 있었다. 돈의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 경제활동을 하는 이들이라면 감정이입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영화가 아닐까. IMF라는 국가 위기상황을 다룬 슬픈 이야기지만 신선한 소재가 나를 움직였다. 꼭 한번 해야만 하는 이야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더불어 평소 존경하는 선배인 김혜수가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 역할을 맡고, 프랑스 대배우 뱅상 카셀이 한국영화에 출연하고, 선 굵은 배우 허준호가 소시민으로 등장하는 것과 같은 캐스팅이 제작진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윤정학이 자신에게 최적화된 캐릭터는 아니었으나 전형적인 인물구조에서 탈피할 자신감이 생겨났다.

“김혜수 선배는 아이폰과 같다. 김혜수이되 완전히 새로운 버전? 업데이트는 멈추지 않는다? '김혜수 10S'가 나온 느낌이랄까. 이번에 대중이 배우 김혜수에게 기대하는 바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새로운 결, 깊이, 힘을 전해줬다. 아마 근래 그가 보여준 어떤 영화보다 정점을 찍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극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가운데 윤정학은 모호한 지점이 많다. 국가적 위기상황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예측하며 자신의 신분을 갈아엎을 기회로 삼는다. 그리고 성공한다. 20년이 흐른 뒤 강남의 첨단 빌딩을 누비는 그의 수트발은 화려하지만 얼굴은 마냥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가장 어려운 인물이다. 선명하지 않다. 악인도, 선인도, 정의롭지도 그렇다고 부패해있지만도 않다. 평범한 인간의 내적 갈등, 삶의 방식을 입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담아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캐릭터에 동의하며 진정성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었다. 소시오패스 재벌3세 조태오 같은 선이 확실한 인물이 오히려 어려울 수도 있다. 살다 보면 다 아리까리하지 않을까. 삶은 지속돼야 하니까 내려갈 수는 없고, 한때 정의도 선량함도 있었으나 너무 멀리 가버려 꼰대가 돼버린 인물을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선견지명과 정보, 부를 바탕으로 빌딩에 올라선 소위 ‘강남부자’들을 상징하는 윤정학의 선택이 만드는 현상은 씁쓸한 뒷맛을 안긴다. 돈의 질서가 만든 아이러니, 아수라가 좌절하고 무너진 사람들과 대조를 이루며 윤정학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무엇이 현명한 인생인가,라는 개념을 환기시키는 이 인물을 지탄하고 비난할 것인가, 부러워할 것인가. 유아인은 기자에게 반문한다.

“요즘 청춘들이 재테크에 관심이 많고, 투자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그것이 암시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우리의 욕망과 결핍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시대성을 가질 수밖에 없구나란 생각을 한다. 전체적인 경제 수준은 발전했지만 성취와 결핍이 만들어내는 간극은 커졌다. ‘버닝’ 때도 전했던 메시지이지만 더 좋아지는 것을 멈춰버리거나 거꾸로 가는 이 시대 젊은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배우로서 늘 고민한다. ‘모든 걸 잊어버리고 즐깁시다’라 할 수도 있고, 판타지를 전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이런 작품을 통해서 ‘정신 차리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자’는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

언제부터인가 유아인이란 이름 석자는 청춘의 아이콘으로 여겨진다. 안전함을 택하는 대신 모험을 선택하고, 영혼 없는 반성의 주문을 외우는 대신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납득할 수 없는 사과를 거부한다. 수동적인 배우로서 머무르기보다 적극적인 예술활동의 주체로 영역을 확장하는데 여념이 없다.

“위험성이 없는 것은 모험이라 할 수 없다. 그건 관광이다. 모험의 재미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리스크를 줄이는 방식을 택하기보다 뛰어든다. 그리고 모든 것을 감당한다. 나도 절대적 안정보다는 모험을 통해서 새로운 안정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다. 안정이 절대적 행복감을 주는 게 아니기에 내 삶을 조금 더 재밌게 가져가고자 하는 거다. 일이 주는 축복도 있다. 불편함과 고통, 이 일을 하기에 구속당하는 부분이 있지만 도전의 기회는 더 많다.”

그 역시 상실에 대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대중에게 실망을 안겨주기 싫으며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싶다. 그래서 마구잡이로 도전할 순 없지만 신념과 도전정신을 곧추 세우고, 시행착오를 겪어볼 의지가 있다고 자신한다. 스스로 “몸을 던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인 거 같다”고 토로한다.

“모험과 도전도 책임 안에서 시도하는 거다. 혈혈단신으로 하는 게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더 도전적이었을 거다. 내 경력이 쌓이고, 주변에 사람들이 늘어나다 보니 그들에게 상처 주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중간중간 나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의 본질을 살펴보면 신경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기에 발생하는 일이다. 난 기득권자가 아닌 내부자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관객들의 내부자로 지내고 싶다. 그저 안정을 추구하고, 내 밥그릇 지키기를 추구하거나 예쁜 모습만 보이면서 살기보다 솔직한 자세로 내 삶을 성장시키고 싶다.”

그간 많은 이슈를 통해 일부 네티즌으로부터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곤 했다. 그럴 때마다 끝까지 자기 논리를 개진하며 논쟁을 확대시키곤 했다. 그런 그에 대한 지지와 우려, 삐뚜름한 시선이 공존했다.

“저마다의 의견을 표현하는 사회적 약속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의견을 피력할 필요가 있다. 싸우고 비난하는 사람만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침묵이나 무조건적인 사과는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의 태도는 아닌 거 같다. 소비의 대상으로서만 연예인이 존재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트위터에다 선배 배우들을 향해 ‘사과하지 마시라’고 글을 올린 적이 있다. 후배들에게도 그런 영향을 주는 배우가 되고 싶다.”

10대에 일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랬듯, 20대에도 보편적인 기성의 틀 안에 자신을 집어넣기 보다 나답게, 자신의 세대에 맞게 살아왔다. 그리고 30대의 유아인은 관객인 대중과 친구가 되는 관계로 나아가고 싶기를 욕망한다.

“가족과도 싸우는데 어떻게 예쁜 말만 하면서 친해질 수 있나. 관계를 헛헛하게 만들 뿐이다. 앞에서 안전한 말들만 내뱉을 경우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 권력관계로 가는 경우가 많다. 연예인이 욕먹는 이유는 대중과 가까이 있어서다. 내가 ‘진지충’ 같지만...진지하면 욕먹을 거 같아서 멈칫하고 안 한다면 세상이 공허해지고 헛헛해지는 느낌이 들 거다. 난 달라도 되는 애니까, 그런 일을 하고 있고, 이 일이 나를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아닌 척하고, 안전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광고 한편 찍으려 노력하는 것보다 이 삶이 더 재미있다. 물론 이게 올바르다고 평가할 순 없지만.”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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