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의 타인이 주는 공포는 말로 형용하기 힘들다. 늦은 밤 으슥한 골목을 걷다 문득 들려오는 발소리에 흠칫하게 되는 것도 등 뒤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영화 ‘헬 페스트’는 이 불확실성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관객을 공포로 몰아간다.

나탈리(에이미 포사이스)는 친구들과 함께 세계적인 호러 축제 ‘헬 페스트’를 찾는다. 모두가 축제의 열기에 들떠있다면, 나탈리의 관심은 썸남 가빈(로비 아탈)에게로 집중돼 있다. ‘헬 페스트’ 쇼 자체를 즐기는 친구들과 달리 소극적인 나탈리와 가빈은 분위기에 휩쓸릴 뿐 좀처럼 유쾌해 보이지 않는다.

때문이었을까. 모두가 살인극이라고 생각한 현장에서 나탈리는 불안을 감지한다. 그리고 그녀가 이 살인을 ‘진짜’라고 눈치채는 순간 ‘헬 페스트’는 지옥으로 변모한다. 각종 코스프레가 난무하는 현장에서 살인마의 얼굴을 알지 못한 채 나탈리와 친구들은 출구 없는 추격전을 벌이게 된다.

영화 ‘헬 페스트’은 호러 축제라는 배경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살인마를 피하기 위해 나탈리가 숨어드는 장소들은 기괴한 소품과 분장들로 가득한 곳이다. 여기에 살인마에게 가면을 씌운 설정 하나만으로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지 모를 상황을 던지며 러닝타임 내내 긴장을 안긴다.

살인마의 범죄 장면도 서슴없다. 피가 낭자하지 않지만 죄책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살인수법이 오히려 액티브한 매력을 더한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들이 음향효과에 기대고 있다면 ‘헬 페스트’는 철저하게 배우들의 시선에 집중하게 만든다. 어느 순간 관객 역시 주인공 나탈리의 시점에서 살인마가 누구인지 혼동하게 된다.

볼거리도 다양하다. 리얼한 ‘헬 페스트’를 완성하기 위해 좀비 폐교, 악마의 카니발, 나이트 범퍼, 데드랜드 등 호러 스테이지를 완성시켰다. 특히 데드랜드는 가면을 쓴 살인마와 시체 모형들 사이에서 소름 돋는 긴장감을 유발한다.

꽁꽁 얼어붙은 겨울, 손에 진땀을 쥐게 만드는 짜릿한 공포물이 그리웠다면 ‘헬 페스트’를 방문하자. 쇼와 리얼의 경계가 무너지는 기묘한 체험과 함께 전혀 새로운 호러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레고린 플레킨 감독. 15세 관람가. 러닝타임 88분. 13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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