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 일제강점기 한글 지키기, 다른 방식의 독립운동이다. 정확히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 가장 신선하다. 

말모이 윤계상, 유해진, '여자 왕석현' 아역배우 박예나(왼쪽부터)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 우리말이 금지된 시대에 한글을 지키고자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전의 순우리말 '말모이'가 제목인 이 영화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경성을 무대로 한다. 

영화는 전국 모든 학교에서 우리말 교육뿐 아니라 사용까지 금지됐고 국어 시간에는 일본어를 가르치고 배웠던 시대라는 암울했던 역사를 극적으로 풀어낸다. 일제의 우리말 탄압에는 자연스럽게 가슴 뜨끈한 감정이 샘솟고 유해진의 넉살스럽고 차진 코믹 연기는 웃음과 재미를 주는 요소다.      

1940년대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경성에서 아들, 딸과 함께 사는 판수(유해진). 극장에서 해고된 후 아들 학비 때문에 가방을 훔치다 실패한다. 이후 하필 면접 보러 간 조선어학회 대표가 가방 주인 정환(윤계상)이다. 정환은 까막눈에 전과자인 판수가 결코 달갑지 않다. 그러나 판수를 반기는 조선어학회 회원들에 밀려 정환은 한 달 안에 한글 읽고 쓰기를 떼는 조건으로 그를 받아들인다.

말모이 조선어학회 회원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조선어학회는 일제 감시를 피해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비밀 작전인 ‘말모이’를 통해 우리말 큰 사전을 편찬하려는 단체다. 돈도 아닌 말을 대체 왜 모으나 싶었던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뜨고 정환 또한 팔도강산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에 힘을 보태는 판수를 통해 공동체의식에서 비롯된 단어 ‘우리’의 소중함에 눈뜬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바짝 조여오는 일제 감시를 피해 ‘말모이’를 끝내야 하는데 여러 난관과 장벽이 그들을 막아서는데…

# 1 PICK. 우리말 지키기가 곧 독립운동, 일제강점기 영화의 새 발견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에 실제 존재했던 ‘말모이’ 작전을 최초로 영화화했다는 점에서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의미를 더한다. '말모이'는 천만 영화 '암살'(2015)과 '원스 어폰 어 타임'(2008) 등 독립운동가의 항일투쟁을 주로 다뤄왔던 기존 일제강점기 영화들과는 소재면에서 확실히 차별화된다. 일본말 ‘벤또’가 아닌 우리말 ‘도시락’을 지키려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다른 방식의 독립운동임을 보여준다.

유해진, 윤계상, 김홍파, 우현, 김태훈 등 주인공들은 1929년부터 재개된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작업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사전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전국 사투리를 모아 어떤 말을 표준어로 삼아야 할지 결정하는 '공청회'를 열어야 하는데 이들은 이 과정에서 목숨까지 건다. 처음엔 까막눈은 물론 우리말의 소중함에, 애국심이라곤 전혀 없었던 양아치 같았던 판수가 말모이 작전이 전개될수록 점점 우리말을 지키는 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처음엔 자신의 잘못으로 아들이 전장에 끌려갈까 몸을 사리던 판수가 점차 성장해가는 것. 전형적인 성장영화라 볼 수는 없지만 성장하고 변해가는 그의 모습이 감동과 재미 포인트다.

말모이 유해진 윤계상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2 PICK. 묻혀질 수 있었던 실화의 생생함

‘말모이’ 작전 완수를 마지막으로 남겨 놓았던 시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실화를 스크린에 담았다는 점에서 한 번 더 주목할 만하다.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 우리말과 사람의 마음까지 모은다는 스토리는 묵직한 울림을 던지기에 충분하다. 유해진, 윤계상, 김홍파, 우현, 김태훈, 김선영, 민진웅 등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도 실제를 바탕으로 해 감동이 배가된다.

‘말모이’ 작업을 돕는 것만으로도 감옥에 가는 상황에서 큰 용기로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우리말 지키기 스토리는 눈물과 감동에 웃음까지 선사한다. 우리가 놓쳤을지 모르는 한글 역사의 일부를 살려내 스크린에 구현해낸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말모이 김순희 역의 '여자 왕석현' 박예나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 3 PICK. 유해진의 내공있는 코믹연기 
유해진표 내공 있는 코믹 연기는 심각하기만 할 수 있었던 일제강점기 소재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유해진과 윤계상의 티격태격 케미스트리는 극 초반부터 웃음을 안기고 스크린에 집중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다. 

특히 판수는 전과자 출신의 까막눈이고 정환은 독립운동을 하는 지식인인 조선어학회 대표이기에 '극과 극' 모습이 재미를 준다. 초반 앙숙 같은 대립구도에서 목숨 걸고 ‘말모이’ 작전에 동참하며 동지가 되는 과정까지 '감동'과 '재미' 두 가지의 영화 흥행 필수 요소를 적절히 배합해냈다.

덧붙여 판수(유해진)의 딸 김순희 역을 똑부러지게 연기한 아역배우 박예나(첫 번째 사진 맨 왼쪽, 네 번째 사진)도 '발견'이다. 영화 '과속스캔들'(감독 강형철)의 왕석현과 외모도, 연기도 똑 닮았다. '여자 왕석현'의 탄생이 기대된다. 

러닝타임 135분. 12세 관람가. 내년 1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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