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감독과 배우 윤여정의 세 번째 영화 ‘죽여주는 여자’(10월6일 개봉)가 언론시사를 통해 속살을 드러냈다. 제20회 몬트리올 판타지아국제영화제 각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이 작품을 관통하는 범상치 않은 키워드 5가지를 정리했다.

 

노인- 한국의 노인 빈곤률 및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최고다. 고속 성장의 현대사에서 성장의 동력이었으나 노년을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와 가난 속에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식모, 여공, 미군기지 성매매 여성을 전전한 뒤 노년에 이르러 생존을 위해 몸을 팔아야 하는 주인공 소영과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아가는 주변 노인들을 통해 대한민국의 노인문제를 직시한다.

 

조력자살-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삶의 마지막 의례다. 인간적 존엄을 지키면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안락사 문제를 두고 팽팽하게 찬반양론이 맞서왔다. 극중 소영은 뇌졸중, 치매, 절대 고독 등 죽음보다 더 큰 고통 속에 살고 있는 노인들로부터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해주시는 거다”란 호소와 함께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영화는 노인문제와 더불어 조력자살을 응시한다.

 

아웃사이더- 일명 ‘박카스 할머니’ 소영이 전세 들어 사는 이태원의 허름한 집에는 트랜스젠더 바 마담으로 일하는 집주인 티나(안아주), 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이자 저소득층 청년 도훈(윤계상), 한국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고 필리핀 엄마는 구치소에 수감 중인 코피노 소년 민호(최현준)가 함께 거주한다. 사회로부터 소외된 존재이자 소수자들이다. 서로를 따뜻하게 품는 이들을 영화는 담담하게 들여다본다.

 

종로·이태원- 영화의 주요 배경은 종로와 이태원이다. 종로에 위치한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은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노인들의 삶과 죽음, 욕망이 교차한다. 다양한 외국문화가 모여 있는 이태원은 인종, 성(性), 낡음과 첨단이 공존하는 지역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모여 드라마를 구축한다.

 

이재용 감독(왼쪽)과 윤여정

윤여정X이재용- 각본·연출을 맡은 이재용 감독은 ‘성과 죽음을 파는 여자’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끌어들이며 녹여낸다. 뜨거운 이슈들이지만 거리를 두고, 특유의 유머와 스타일을 덧대면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한다. 그의 메시지를 윤여정은 페르소나답게 전달한다. “윤여정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성취를 보여준 인생작”(버라이어티)이란 평가가 과장이 아님을 입증한다. 노인네들을 기다릴 때의 미묘한 눈길, 의식을 치르듯 공들여 여관방을 꾸미는 손길, 마지막 장면에서 허공에 담배연기를 길게 뿜어내는 입매와 손가락 하나하나가 배우로서 그녀의 깊이를 가늠케 한다. 러닝타임 1시간51분. 청소년 관람불가.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