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청춘 아이콘 ‘비트’의 김성수 감독과 배우 정우성이 15년 만에 ‘아수라’로 다시 뭉쳤다. 10대 소년의 고뇌부터 이 시대 청춘의 표상, 생전 처음 삶의 목적을 깨닫게 된 고려인 무사 그리고 악에 받친 비리 경찰까지 네 작품에서 미남 배우 정우성의 10대~40대 다양한 가능성을 끄집어낸 김성수 감독의 작품을 다시 한 번 돌아봤다.

 

고뇌하는 10대 소년 - 비트

오직 싸움으로 학창시절을 소일하는 민(정우성). 그런 그에게 삶의 이유가 되는 건 친구 태수(유오성)와 노예팅에서 만난 어여쁜 첫사랑 로미(고소영)다. 하지만 친구의 자살로 충격을 받은 로미는 종적을 감추고, 태수는 폭력 조직에 들어가기 위해 테러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며 그는 십대의 마지막을 위태롭게 보낸다. 학교를 때려치고 밝은 미래를 꿈꾸는 민. 그러던 중 떠났던 로미와 태수가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데...

‘비트’(1997)는 세기말 보이지 않는 미래에 고뇌하는 10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옮겼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싸움질 밖에 없는 민에게 세상은 주먹 펼 시간을 주지 않는다. 어른들의 이권과 욕심,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년에게 행복은 어렵다. 20년 전 풋풋한 외모의 정우성이 어려운 현실 가운데 꺾이지 않으려는 소년 민을 연기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외모, 남다른 멋 아우라로 단숨에 10대들의 우상, ‘한국의 제임스 딘’으로 등극했다.

 

20대 청춘의 표상 - 태양은 없다

후배에게 KO로 패한 권투 선수 도철(정우성)은 홧김에 운동을 그만 둔다. 그리고 관장의 소개로 간 흥신소에서 ‘30억 빌딩 주인’을 꿈꾸며 돈에 죽고 사는 홍기(이정재)를 만난다. 서로를 한심한 눈빛으로 처다보는 둘. 하지만 각각 꿈과 장애물을 안고 사는 도철과 홍기는 공감과 이해가 쌓여 결국 친구가 된다. 꿈을 위해 무언가 해보려하지만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하는 두 청춘. 그들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태양은 없다’(1998)에선 ‘미남 of 미남’ 정우성과 이정재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권투에 미련이 남았지만 펀치 드렁크 증상에 신음하는 도철과 무언가 해보고 싶지만 도벽에서 허우적대는 홍기, 둘의 모습은 예기치 못한 장애물에 빠져 인생에 회의를 느끼는 20대 청춘의 표상이다. 공감 가는 캐릭터 설정에 티격태격하는 두 배우의 케미가 얹혀 어려움을 겪는 청춘들에게 잠깐의 유쾌함을 건넸다.

 

생존이 목표가 된 30대의 처절함 - 무사

고려 우왕 1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간첩혐의를 받고 귀양길에 오르게 된 고려의 무사들. 귀양지로 향하던 중 몽고군의 습격을 받아 사막에 고립된다. 그 가운데 부사 이지헌(송재호)의 호위무사 여솔(정우성)이 있다. 뜨거운 태양과 강행군에 죽음을 예감한 이지헌은 자신의 노비였던 여솔을 자유롭게 풀어주고, 평민이 된 그는 생전 처음 ‘생존’이란 목표를 받아든다.

정우성은 ‘무사’(2001)에서 화려한 창솜씨를 지닌 캐릭터 여솔을 입었다. 노비의 신분으로 주인이 시키는 것만 해냈던 그가 생전 처음 ‘자유’를 받았을 때 더 큰 장벽에 부딪힌다. 인생에 책임이 더 무거워지는 30대의 짐이 영화 속에 고스란히 표현됐다. 이 작품을 찍을 당시 정우성의 나이가 서른에 가까운 스물아홉 살이어서 인지, 여솔에 얹힌 무게감에 자연스러움이 녹아있다.

 

지옥에 찌든 40대, 삶의 연대기 - 아수라

이권을 위해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의 뒷일을 처리해주는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 말기 암 환자인 아내의 병원비를 핑계로 돈 되는 건 뭐든 다 하는 악인의 길로 들어선다. 어느 날 그에게 박성배의 비리를 캐기 위해 검사 김차인(곽도원)이 찾아오고, 진실을 캐기 위한 검찰과 진실을 막기 위한 박성배의 압박에 한도경은 지옥 같은 현실에 떨어진다.

정우성은 ‘아수라’에서 40대만의 마스크를 뒤집어썼다. 이전까지 오직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10~30대 캐릭터를 연기했다면, 이번 영화에선 살아남기 위해서 더 악해질 수밖에 없는 ‘세속적 40대’를 거침없이 표현했다. 정우성은 싱글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반항적인 ‘비트’의 10대가 세월이 흘러 스트레스에 찌든 40대가 돼 출구 없는 레이싱을 벌이는 것 같다”며 김성수 감독의 연대기적 작가 의식에 감탄을 표했다.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