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도 ‘사람’이다.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질투했던 살리에리도, ‘샤인’에서 신경쇠약에 걸렸지만 ‘왕벌의 비행’을 완벽하게 연주한 데이비드 헬프갓도 천재였다. ‘파이널리스트’는 천재라고 불리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일주일 생활을 통해 그들 역시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다큐멘터리 ‘파이널리스트’는 2015년 5월 벨기에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바이올린 콩쿠르의 12명 파이널리스트들의 결승 준비 합숙 이야기를 담았다. 일주일이라는 준비기간 동안 파이널리스트들은 외로움, 연주의 고통, 미래에 대한 걱정을 겪는다. 음악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였던 ‘파이널리스트’는 오롯이 결승 진출자들의 인생을 파고든다.

‘파이널리스트’의 가장 큰 연출 장점은 파이널리스트들이 처한 상황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저마다 바이올린 연주를 뽐내는 영상을 집어넣기보다 그들의 이야기에 중점을 두고 관객들이 천재들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공감하게 만든다. 워털루 퀸 엘리자베스 채플린에서의 합숙, 수많은 사람이 오가지만 파이널리스트 주변에는 그들 자신 뿐이다. 영상에 비친 공허한 배경은 연주자들을 더욱 외롭게 느껴지도록 한다.

영화 속에서 진행되는 인터뷰는 파이널리스트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분출구가 된다. 일주일동안 합숙하면서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는 거의 드물기 때문이다. 한명씩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들이 여기까지 오게 된 배경이 드러난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결승전에 대한 부담감이 그대로 나타나면서 파이널리스트들은 천재가 아닌 보통 사람의 얼굴로 변화한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JTBC 드라마 ‘SKY 캐슬’을 보면 대학 입시를 위해 서로 경쟁하며 부모들까지 나서 보이지 않는 혈투를 벌인다. 한국의 교육 현실과 비교해 ‘파이널리스트’는 천재는 어떻게 탄생하며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는지를 보여준다. ‘경쟁’은 이 영화에 보이지 않는다. 우승을 위해서 서로를 이겨야하지만 각자 부족한 점을 채워주고 대화로 외로움을 달래며 경쟁자가 아닌 ‘친구’로 일주일을 살아간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이런 모습이 충격적일 것이다.

카메라가 담아내는 시선도 색다르다. ‘문라이트’처럼 인물 뒤를 쫓는 카메라 워킹을 선보이기도 하고 ‘이다’처럼 텅 빈 공간에 홀로 있는 인물을 외롭게 만들기도 한다. 음악 역시 영상처럼 ‘여백의 미’를 드러낸다. 음악이 인물간의 대화와 감정 전달에 방해를 주지 않을 정도로 적게 사용됐다. 그만큼 이 영화가 ‘천재’들 그 자체에 집중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영화가 말하고 싶은 건 우승을 위한 경쟁과 대결이 아니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게 얼마나 어렵고 외로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백미는 결승전 이후 수상자를 발표하는 장면이다. 한명 한명 수상자가 호명될 때마다 카메라는 파이널리스트들의 얼굴을 잡는다. 그들은 자신이 불리지 않아도 실망감을 숨긴채 서로 축하해주며 기뻐한다.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 다른 사람도 겪었을 자신만의 싸움에서 이겨냈다는 점에 만족한 건 아닐까? 누군가를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말하는 ‘파이널리스트’는 젊은 관객들에게 큰 교훈을 주는 영화라고 확신한다. 러닝타임 1시간 22분, 전체관람가, 1월 24일 개봉.

사진='파이널리스트'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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