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국 드셨나요? 

저는 떡국 대접에 달려온 멸치대가리를 보면서 이 시가 생각났습니다. 마종기의 ‘이 세상의 긴 강'(시인생각)에 수록된 시입니다. 의사이자 시인인 그는 시인 황동규 김영태와 공동시집을 내고, 가수 루시드 폴과 작품집을 내는 등 하나의 이름에 머무르지 않는 자유인입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고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詩 마종기

(아내는 맛있게 끓는 국물에서 며루치를 하나씩 집어내 버렸다. 국물을 다 낸 며루치는 버려야지요. 볼썽도 없고 맛도 없으니까요.)

며루치는 국물만 내고 끝장인가.

뜨겁게 끓던 그 어려운 시대에도

며루치는 곳곳에서 온몸을 던졌다.

(며루치는 비명을 쳤겠지. 뜨겁다고, 숨차다고, 아프다고, 어둡다고, 떼거리로 잡혀 생으로 말려서 온몸이 여위고 비틀어진 며루치 떼의 비명을 들으면.)

시원하고 맛있는 국물을 마시면서

이제는 쓸려나간 며루치를 기억하자.

(남해의 연한 물살, 싱싱하게 헤엄치던 은빛 비늘의 젊은 며루치 떼를 생각하자. 드디어 그 긴 겨울도 지나고 있다.)

 

웬 며루치타령이냐 하겠지만 쓸려간 멸치로 지나간 시대를 투영하는 방식이 투박하고 재밌지 않나요?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양인자씨의 작사로 가창 조용필에 옮겨온 ‘바람이 전하는 말’의 원작시입니다.

 

바람의 말

詩 마종기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에디터 안은영 eve@slist.kr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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