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이픽처스 한재덕(46) 대표가 궁금했다. ‘범죄와의 전쟁’ ‘신세계’ ‘군도’로 충무로의 가장 영향력있는 제작자로 부상했고 ‘무뢰한’ ‘대호’에 숨 돌릴 틈 없이 ‘검사외전’으로 개봉 8일 만에 670만을 찍은 그는 지금,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중이다. 한남동 낡은 건물 5층 한 켠.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무질서한 그의 방에 마주앉았다.

1. ‘검사외전’ 독과점 얘기부터 듣고 싶겠지? 

한 마디로 말하면 ‘(소나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허술한 만듦새를 내가 모르겠나. 스토리가 약했기 때문에 캐릭터 영화로 막판 편집했고, 장르도 ‘범죄오락’으로 한정지었다. 무혈입성도 맞다. 함께 붙는 영화들이 없었고 쇼박스 배급이므로 상영관수 1700개에 관해 우리는 CGV에 어떤 권한도 없다. 상황은 그렇다. 내게 어떤 의도나 장치가 없었고, 영화의 ‘운빨’을 믿은 것도 솔직히 아니다. 

2. ‘캐스팅빨’ 뿐이었겠나? 

황정민이 붙어줘서 고마웠고, 강동원이 매력적으로 보일 걸 알았다. 여기에 이성민 박성웅은 성실과 열정 빼면 남는 게 없는 천사 같은 사람들이다. 어느 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조·단역 배우들 하나같이 고생 많았다. 캐스팅 덕을 본 것이 맞다. 이 말은 신인감독으로서 현장을 콘트롤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얘기도 된다. 여러 감독을 겪다보니 그들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편이다. 영화는 만들어지고 나면 지가 알아서 (흥행이건 부진이건) 제 길을 간다.  


3. ‘무뢰한’ ‘대호’가 아픈 자식이냐고?

천만에. ‘무뢰한’은 애초에 흥행을 기대하지 않았다. 함께 작업하고 싶었던 오승욱 감독과의 호흡만으로도 좋았다. 가장 흥행이 안 된 이 작품으로 부일영화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 음악상까지 3관왕을 했다. ‘대호’는 물리적으로 투자자에게 손해를 안겼고 심리적으론 배우며 스태프가 너무 힘들게 찍은 영화임에도 많이 선보여지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다. 짧은 기간에 호랑이 CG를 만든 것은 안팎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4. 나는 친구가 없는데? 

1년 8개월 정도 일 없이 틀어박혀 지낼 때 ‘부당거래’팀이 날 찾아줬다. 너무 고마웠다. 그때 함께 했던 김상범 편집기사, 윤성길 동시녹음기사, 조영욱 음악감독은 지금도 나의 오른팔이다. 사적으로도 새로운 누군가를 여럿 만나는 일은 내게 체질적으로 모험이다. 일단 안압이 올라간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 일해오던 스태프와 오래 가고 싶다. 거개가 일로 엮인 사람들이고 내 인생에 일이 전부다보니 많은 사람들 속에 있지만 친구가 없기도 하다. 



5. 이들이 내 옆에 남아줄까? 

주말에 강동원을 만날 거고, 황정민과는 대구 무대인사에 함께 할 예정이고, 정우성 등 ‘아수라’ 멤버들과 다 같이 황정민이 제작한 뮤지컬 ‘오캐피’를 보기로 했다. 꿈에 그리던 스크린스타들과 동료로 지낼 수 있게 된 게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설레는데, 이 정도면 나 성공한 거 아닌가 싶다. 얼마를 벌어야겠다가 아니라 정말 재밌고 좋은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영화를 잘 못 만들면 그들이 내 옆에 남아줄까? 

6. 사나이픽처스의 제작원칙이 뭐냐면?

‘여기는 사교의 장이 아니다’다. 배우, 스태프, 제작파트는 놀러 온 게 아니라 계약서에 사인을 한 사이다. 영화현장의 개개인은 모두 누군가가 맡긴 큰 돈을 단기간에 제대로 수행해야 하는 단기 직장인들이다. 좋은 배우는 몸관리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좋은 스태프는 원활한 촬영을 우선해야 한다. 제작자로서 예산에서 벗어나면 내 돈 물어내야 한다는 각오가 내겐 있다.  

7. 오, 매드맥스? 

사나이픽처스는 이름부터 겉으론 남성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영화라는 게 여성적인 코드가 상당히 많이 작용한다. 자본의 미세한 부분까지 조율하고 측정해야 하고, 관계의 모든 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그래서 좋은 여성영화인이 많은 것 같기도 하다. AB형이라선지 이율배반의 양가적인 측면이 내게 있다. 큰일엔 담대한데 작은 일엔 예민하다. 여배우 원톱 영화, 나도 찍고 싶다. 아직 꼭 찍고 싶은 배우, 꼭 영화화시키고 싶은 대본을 못 만났다. 유일하게 전도연(‘무뢰한’) 뿐이었다. 

8. 나의 남자들을 알려줄까? 

엄청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는데 황정민이 혼자 택시타고 날 찾아왔다. 전화 한 통으로도 충분할 텐데 굳이 찾아와서 누가 보거나 말거나 술집 야외테이블에서 한참 위로해주고는 갔다. 그는 내게 감동을 주는 배우다. 이성민 선배와는 명절용 코미디 영화 ‘보안관(감독 윤종빈)’을 함께 한다. 코미디는 스킬이 있는 배우가 해야 맛이 난다. 이 선배는 1초의 타이밍을 가려낼 줄 아는 배우다. 크랭크업한 '아수라'(감독 김성수)를 빨리 보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정우성과 주지훈 때문이다. 그냥 세워놔도 멋있는데 연기까지 잘했다. 

에디터 안은영 eve@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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