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의 '라이징 스타' 정가람(26)이 기묘한 청년으로 아니 좀비로 스크린을 잠식한다.

밸런타인데이인 14일 개봉한 ‘기묘한 가족’(감독 이민재) 시골마을 주유소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코믹한 좀비 소동극이다. 정가람이 맡은 쫑비는 실험실에서 탄생한 최초의 좀비다. 여타 좀비와 달리 훈훈한 외모에 말귀도 알아듣는다. 사람을 탐하기보다 양배추와 케첩에 사족을 못쓰는 채식주의자다. 그에게 물리면 죽기는커녕 회춘 바이러스 덕에 젊어진다. 주유소 집안 막내 해걸(이수경)과 핑크빛 무드를 형성한다.

이쯤 되면 쫑비가 그간 미드와 좀비영화에서 봐왔던 좀비들과는 매우 다름을 눈치챌 것이다. 좀비 로맨스물 ‘웜바디스’의 니콜라스 홀트가 연상되기도 한다. 잘 생긴 청년배우가 더벅머리에 무표정한 얼굴로 어기적어기적 걸어 다니고, 두 팔을 뻗은 채 질주하고, 게걸스럽게 양배추를 갉아먹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대혼란 상황에서도 천연덕스럽게 순수함을 잃지 않는 대목에선 묘한 감흥이 지펴진다. 잃어버린 인간미를 좀비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대사 없이 표정과 행동만으로 가장 인간적인 좀비 캐릭터를 연기한 정가람을 만났다.

“원래 무서운 건 즐겨보진 않는데 ‘워킹데드’ ‘웜바디스’ ‘나는 전설이다’ ‘월드워 Z’ ‘아이 엠 어 히어로’ 등 좀비영화를 보긴 다 봤어요. 마지막에 ‘줄을 서시오’ ‘해걸’ 정도의 말문을 트게 될 때까지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던가 웃거나 화내거나 표현을 할 수 없어서 힘들었죠. 그럼에도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났고 역할이 흔치 않으니까 해보고 싶은 욕심이 컸던 거 같아요. 선배님들(정재영 김남길 엄지원 박인환)도 너무 좋고 안 할 이유가 없었죠.”

애드리브의 달인들인 정재영 김남길로 인해 폭소탄이 펑펑 터졌던 촬영 현장에서 혀를 깨문 채 있기도 했다. 즐거운 현장이 오히려 어려웠던 셈이다.

코미디를 융합한 좀비물이 별반 많지 않아 고민의 두께는 두터워졌다. 무려 3개월간 캐릭터의 움직임에 대해 집중 연구했다. 여러 작품을 섭렵하면서 걷는 방법, 몸의 균형을 이루는 법을 터득하기 위해 이렇게도 걸어보고 저렇게도 걸어보면서 쫑비를 체화해 갔다. 보통의 좀비물은 군집 형태로 나오지만 쫑비는 혼자 등장하므로 부담이 컸다. 자칫 잘못 하면 ‘동네 바보’ 같을 수 있고. 너무 과하면 이상해 보일 테니 움직임과 표정을 간소화하는 데 주력했다.

“쫑비는 원래 사람이었다가 실험실에서 한순간에 좀비로 바뀌어버려요. 처음에 ‘텅 비었다’란 느낌으로 연기하다가 해걸네 가족을 만난 뒤 사건들을 겪으며 조금씩 채워지는 인물로 받아들였어요. 채워가는 과정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데 공을 들였어요. 그동안의 작품에서는 중간중간 나왔던지라 긴 호흡으로 연기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운 것임을 절감했고요. 고민 끝에 순간순간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게 정답이라고 결론 내렸죠.”

주로 호흡을 맞춘 이수경과는 첫 공연이다. 하지만 각자 정지우 감독의 ‘4등’과 ‘침묵’에 출연한 인연으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 여겨 호흡을 맞춰보고 싶었는데 이번 기회에 소망을 이루게 됐다.

“로맨스를 한 번도 안 해봐서...말도 못 하는데 표현은 해야 하고 어려웠죠. 하지만 수경씨가 가만있어도 멋지고 예쁜 에너지를 발산해요. 특히 눈이 되게 신기해요. 보고만 있어도 좋았어요. 쫑비의 경우 눈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던 것 같아요.”

이수경은 그에 대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상식이 풍부한 오빠”라고 언급한 바 있다. 정가람은 다큐멘터리 특히 우주 관련 다큐 보는 것을 좋아한다고 나름의 이유를 댔다. 이런 내용을 시청하다보면 “난 아무것도 아닌 존재구나”를 새삼 깨닫고 이런저런 고민을 훌훌 털어낸 채 다시 열심히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처음엔 서로 낯을 너무 가려서 주변 분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더욱이 제가 또래랑 연기한 적이 별로 없어서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촬영하면서, 로케이션 장소인 충남 보은에서 3개월간 머무르면서 매일 배우들끼리 함께 식사하고, 차 마시고 가끔 제 방에서 영화 보고, 치킨 먹으며 부대끼다 보니 자연스레 허물없이 친해지게 됐죠.”

‘기묘한 가족’에서 얻은 가장 큰 성취는 배움이다. 선배들을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현장에서 배우의 행동, 책임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 좋은 에너지로 다가가는 션배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세웠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한 트럭 분에 이르는 양배추를 뜯고 싶었던 ‘양배추의 추억’이다. 주먹으로 내리쳐도 쉽사리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양배추를 ‘처리’하느라 이빨과 턱이 무척이나 아팠는데 나중엔 잇몸이 튼튼해졌다고 말간 웃음을 짓는다.

톱스타 원빈의 초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외모다. 2012년 MBC 시트콤 ‘스탠바이’로 데뷔해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등에 출연했고, 2016년 영화 ‘4등’에 이어 ‘시인의 사랑’에서의 파격 연기로 신인상을 휩쓸었다. 이후 영화 ‘독전’과 드라마 ‘미스트리스’로 성장을 거듭해오고 있다.

“초보 때의 저랑 지금의 저를 비교하면 열심히, 긍정적으로 하는 건 변함없는데 보이는 게 많아졌어요.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졌고요. 많은 선배님들의 연기, 행동을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면서 발전이 이뤄진 거겠죠. 100미터 달리기가 아닌 42.195 킬로미터인 배우가 되고 싶고. 사랑받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제일 어려운 일이겠지만.”

막 첫 장을 넘긴 2019년, 럭키하게 일복이 뒤따르는 중이다. 범죄액션영화 ‘악질경찰’에서 은행 ATM기 전문털이범을 맡아 ‘독전’의 형사와는 정반대 인물을 연기한다.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는 ‘기묘한 가족’과 달리 풀어버리는 연기를 원없이 해내며 촬영을 마쳤다. 넷플릭스 드라마 ‘좋아하면 울리는’ 역시 막 촬영을 끝냈다.

에너지가 불끈불끈 치솟는 스물일곱 청년은 이제 한숨 고르고 좋아하는 여행 그리고 운동 덕후답게 테니스 입문 계획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사진=김수(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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