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의가 계속 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명대사가 있다. ‘호의’란 남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자신을 낮춰 베푸는 일을 말한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이하 ‘더 페이버릿’)는 이 호의 때문에 운명이 달라진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18세기 영국으로 돌아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파멸의 길로 들어서는지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더 페이버릿’은 18세기를 배경으로 영국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의 총애를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라(레이첼 와이즈), 애비게일(엠마 스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올해 오스카 10개 부문 최다 후보에 오른 만큼 감각적인 비주얼과 깊이 있는 메시지, 배우들의 폭발적인 연기력이 어우러져 ‘마스터피스’를 탄생시켰다.

이 영화의 키워드는 ‘욕망’이다. 앤 여왕의 오랜 친구로 조언과 비판을 아끼지 않는 사라가 있고 귀족에서 하녀가 된 후 다시 신분상승을 노리는 사라의 사촌 애비게일이 등장한다. “우리는 목표가 달라”라고 사라가 말하지만 두 사람의 목표 대상은 단 하나, 앤 여왕이었다.

앤 여왕은 사라와 애비게일의 ‘욕망’을 즐기는 인물로 표현된다. 세 여자의 감정싸움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극에 달한다. 특히 연극, 뮤지컬처럼 5개의 ‘막’으로 나눠 세 여자가 감정과 상황이 변화된 모습을 깊이있게 보여준다.

인물과 배경을 보여주는 촬영기법으로 ‘어안렌즈’가 사용됐다. 사각이 180도를 넘는 초광각렌즈로 인물과 배경의 특정부분을 과장시켜 보여준다. 이런 방법은 관객이 직접 영화 속으로 빨려들어간 듯한 효과를 주고 몰입감을 높여준다.

마치 앤 여왕이 키우는 토끼들이 된 것처럼 말이다. 토끼는 주변 360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졌다. 18세기 영국 황실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스크린에 담았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배리 린든’을 생각나게 할 만큼 자연광만 사용해 더욱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더 랍스터’ ‘킬링 디어’ ‘송곳니’ 등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작품마다 인간의 욕망에 대해 다뤘다. 이번 영화는 감독이 직접 각본(데보라 라이스)을 쓰지 않은 첫 작품이다. 또한 이전 작품들보다 ‘더 페이버릿’은 ‘잔인함’도 덜하다. 그래도 ‘욕망’이란 키워드는 놓치지 않았다.

이 영화에서는 ‘신분 상승’ ‘욕구 충족’ ‘사랑’이라는 인간 본성이 드러난다. 그 끝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들처럼 ‘파멸’로 이어진다. 감독만의 색깔을 유지해 끔찍한 장면이 적어도 보는 이를 긴장하게 만드는 재주를 부렸다.

‘더 페이버릿’의 백미는 세 여자의 ‘기싸움’이다. 올해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올리비아 콜맨은 앤 여왕으로 분해 히스테릭한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웃음을 유발하다가도 이내 보는 이를 숨 멎게 만드는 광기어린 앤 여왕으로 완벽 변신에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다. 레이첼 와이즈와 엠마 스톤 역시 오스카 수상자답게 연기력을 폭발한다.

이 영화에서 앤 여왕이 키우는 ‘토끼’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하는 동물로 나온다. 발정기가 되면 토끼들은 공격적으로 변하고 다른 동물들과 교배 시도까지 한다. 하지만 욕구를 채우기 시작하면 짧은 시간에 끝내버린다. 욕망을 해소하고 싶어 발광했지만 욕구 충족의 기쁨은 짧을 뿐이다.

영화 속 세 여자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의 야망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서로를 집어삼켰지만 끝으로 갈수록 승리자는 없고 ‘파멸’만이 남게 된다. 욕망이란 이렇게 덧없는 것이란 걸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세 여배우의 강렬한 연기, 시선을 사로잡는 촬영기법, 인물들의 상황과 대비되는 아름다운 비주얼로 말하며 감각적인 시대극을 만들어냈다. 러닝타임 1시간 59분, 15세 관람가. 2월 21일 개봉.

사진=‘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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