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우희와 흡사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를 만났다. 최근 몇년에 걸쳐 '뉴페'를 열망하는 충무로가 주목해온 여배우 이수경(23)이다.

독립영화, 상업영화, 드라마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비정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침없이 욕설을 내뱉고 마약에 손을 대는 쏭(차이나타운), 성장한 체육교사와 사랑에 빠지는 열여덟 육상부 소녀(용순), 아버지와 애증관계인 딸(특별시민, 침묵), 톡톡 튀는 상담심리 대학원생(호구의 사랑), 길에서 마주칠 법한 평범해 보이는 여학생(방황하는 칼날, 굿바이싱글), 강단 있는 공항보안팀 기동타격대원(여우각시별) 등 평범과 개성, 순박함과 마성을 종횡으로 누빈다. 암팡진 연기력까지 지녔다. 호평이 따라다녔다.

“제가 연기를 잘했다기보다는 캐릭터들이 워낙 세니까...돋보이는 캐릭터를 해와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듯해요. 그러다 보니 요즘엔 너무 센 캐릭터보다 평범하고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을 해보고 싶어요. 그래야 제 연기로만 오롯이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캐릭터에 기대지 않은 자신만의 결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바람과 달리 최근 개봉작인 좀비 소동극 ‘기묘한 가족’(감독 이민재)에서도 이수경이 맡은 캐릭터는 범상치 않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준걸(정재영)네 집안의 막내딸 해걸 역을 맡았다. 괴짜 면모도 많은 데다 남자 못지않은 힘과 정신력의 소유자다. 실험실에서 좀비가 돼버린 쫑비(정가람)를 처음 발견한 뒤 측은지심에 집으로 데려와 친구처럼 지내며 시나브로 로맨스 감정을 싹틔우는 소녀 역이다.

“이전 작품들과 다르게 해야겠단 생각은 안 했어요. 시나리오에서도 캐릭터성이 짙어서 내가 굳이 뭘 하려들지 않아도 해걸 캐릭터가 나올 거 같았어요. 성장보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변화하는 모습에 끌렸죠. 해걸이 좀비인 쫑비를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변화가 재미났어요.”

코미디 영화는 처음이라 감독에게 캐릭터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웃기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부자연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기하려고 노력한 결과 스크린 여기저기에 배어있다.

또래랑 별반 연기해본 경험이 없던 이수경이 오빠뻘이긴 하지만 정가람과 호흡을 맞춰 행복했다. 이것저것 아는 게 많은 그와 얘기를 나누면 재밌었고 그러다 보니 빨리 친해졌다. 촬영현장에서 막내 역할을 대신 다 해줘서 편하게 잘 묻어갈 수 있었다. 요즘도 이런저런 고민이 생기면 전화를 하거나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그동안 최민식 김혜수 정재영 엄지원 이제훈 등 쟁쟁한 연기파 선배들과 공연을 해왔다. 신인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양분일 터.

“그들의 공통점은 여유더라고요. 내가 마음먹는다고 여유로워지는 건 아니니까 빨리 중견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래야 지금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거 같아서. 요즘은 여배우들이 나이 먹는 거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는 거 같아요. 배역의 폭도 넓어지고. ‘젊었을 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선배님들이 대부분이에요. 청춘의 치열함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 여유와 긴 호흡으로 살며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중1 때부터 연기학원에 다녔다. 단지 재밌어서였다. 부천 경기예고 3학년 때 운명처럼 다가와 1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합류한 ‘차이나타운’(2014년 개봉)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연기를 그만두려 하던 때였어요. 학교에서 연기를 잘하고 있단 생각이 들지 않았고 성공 여부도 불확실했고 운이 따르는 직업이라 여겨서 그 불안정성이 두려웠던 거죠. 지인 소개로 오디션을 보게 됐는데 어차피 그만 둘 거니까 편하게 임하자란 모습이 감독님의 마음에 들어서 캐스팅이 됐던 거죠.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걸어오고 있으니 배우는 운명이자 운이 따르는 직업인 듯해요.”

꽃길만은 아니었다. ‘차이나타운’ 때 빨간머리 소녀 쏭을 연기할 때 어색하고 부끄러워 ‘멘붕’ 상황이 잦았다. 캐릭터의 종교, 혈액형 등등 세부적으로 준비해가는데 수시로 현장에서 바뀌거나 달라졌기 때문이다. 계속 이런다면 이겨내지 못할 거 같단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를 배웠어요. 적절히 준비를 안 해가야 자연스럽게 섞인다는 것, 다음 작품부터는 내색하지 않은 채 씩씩한 듯 행동해야겠다는 다짐 무엇보다 ‘차이나타운’을 하면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진지해졌어요. 내면의 혼란을 숨기고 행동하다 보니 어려웠던 지점들이 절로 해결되기도 했고요.”

뭔가 달라지려고 하진 않는다.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특별시민’ ‘침묵’에서 연이어 아버지 역을 맡았던 최민식이 “너 달라진 거 있어?”라고 물었을 때 “없다”고 답하자 “그래. 그렇게 해야 돼”라고 말해준 게 오랫동안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실제 스물셋 짧은 인생이었으나 달라져서 성공한 적도 없다.

드라마 ‘SKY캐슬’의 노승혜(윤세아), ‘품위있는 그녀’의 우아진(김희선)과 같은 기품 있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좀 더 나이 들면 잘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불어 넣는다. 일단은 1년에 2편씩 쉬지 않고 작품을 하고 싶다.

스케줄이 없을 땐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인데 요즘은 의식적으로 산책을 많이 한다. 햇빛을 받으면 잠을 잘 잘 수 있기 때문이다. 쟈택이 있는 강서구 일대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요리 유튜브 방송과 인스타그램으로 맛집을 검색한 뒤 맛집 탐방에도 나선다. 음식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화 공식 일정이 끝나면 여행을 떠날 꿈에 부풀어 있는 나날이다.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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