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팬들의 가슴을 적시는 배우 고원희(22). 드라마, 예능, 영화를 넘나들며 성큼성큼 연기 행보를 이어온 그녀가 첫 멜로 ‘흔들리는 물결’(감독 김진도)에 도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바스라질 것 같이 위태로운 시한부 캐릭터 원희로 올 가을 멜로 감성을 정확히 저격한다. ‘멜로 퀸’의 잠재력을 반짝반짝 발산해낸 고원희를 충무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첫 주연작, 멜로, 촬영 후 1년 여 만의 개봉... ‘흔들리는 물결’은 배우 고원희가 이어갈 연기 행보에 큰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tvN 예능 ‘SNL 코리아’나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 드라마 '별이 되어 빛나리' 등을 통해 이미 숱하게 대중 앞에 섰지만, 타이틀 롤을 맡아 평가를 받는 다는 건 또 다른 의미였다.

“예능, 드라마, 영화 다양하게 하는 것 자체가 자기계발인 것 같아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하다보면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연기에 있어서 경험이란 건 큰 자산이니까요. 그래도 첫 주연작인 ‘흔들리는 물결’이 개봉한다는 건 좀 다른 의미로 설레고 기뻐요. 찍은지 오래되기도 했고, 막연히 ‘개봉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은 해왔는데 막상 닥치니까 얼떨떨하네요.(웃음)”

 

‘SNL 코리아’는 연기자 고원희의 행보에 큰 변곡점이 됐다. 콩트 속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유쾌한 이미지를 구축한 그였지만, ‘흔들리는 물결’ 촬영 당시엔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강행군에, 멜로와 콩트라는 진폭 넓은 감정 널뛰기까지 더해져 감정 이입이 다소 쉽지 않았다고 소회했다.

“몸이 힘든 것도 있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아무래도 감정적 측면이었어요. 콩트든 멜로든 집중해서 한 가지에 폭 빠질 여건은 아니었죠. 조금 집중하면 더 좋은 연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콩트를 하면서도 원희 캐릭터를 생각했고, 멜로 연기를 하면서도 콩트를 생각 했어요.(웃음) 그래도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죠. 배우로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상업적인 이유로 멜로가 잘 나오지 않는 요즘 영화 현실에서 밀도 높은 멜로영화 주연을 맡았다는 건 배우로서 꽤 행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극적인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는 요즘 트렌드와 반대되는 영화여서인지 그녀는 현재 ‘걱정 반 설렘 반’이라고 말한다.

“영화 분위기가 제목과 비슷해요. ‘흔들리는 물결’처럼 굉장히 잔잔한 영화고 유머코드도 없어요. 그런데 그게 이 작품만의 매력인 것 같아요. 요즘 극장에 가보면 자극적인 영화들이 많잖아요. 감성에 젖고 싶어도 젖을 수 없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지금 시점에서 이 영화가 서정적으로 관객 분들을 위로해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스물두 살이란 어린 나이에 헌신적인 사랑, 남 일 같은 죽음을 표현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고원희는 부족한 경험은 직접 발로 뛰고, 깊게 고민하며 극복해 냈다고 쑥스러운 듯 말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작게 아팠던 적이 있어요. 수술을 하고, 결과를 일주일 정도 기다리는데 그 시간이 굉장히 지옥 같았어요. 이 기억을 되돌려가면서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됐죠. 어쨌든 내면에는 모든 감정이 다 내재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그 기억을 되새기면서 연기했죠. 실제로 병원에 가서 간호사 분들의 이야기도 자주 들어봤고요. 굉장히 도움이 됐습니다.”

 

평소에 혼자 있는 걸 선호한다고 밝힌 그녀처럼 영화 속 원희도 고독에 침잠해 있다. 심지어는 본명과 캐릭터의 이름이 같아서 왠지 모를 동질감도 느껴졌다고 한다.

“이름이 같은 건 감독님이 일부러 그렇게 해주셨어요. 제가 백지 상태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이름만이라도 똑같이 해서 극에 녹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셨던 것 같아요. 특히 이름을 불러주는 신도 많아서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었죠. 거기에 저도 고등학교 졸업 이후 혼자 살다보니 캐릭터에 공감할 부분이 많았어요. 아프지 않다는 것만 빼고는 꼭 닮았죠.(웃음)”

 

‘흔들리는 물결’은 처음과 시작이란 의미가 더해져 애틋함이 크다. 첫 연출을 맡은 김진도 감독, 첫 멜로에 도전한 심희섭과 고원희. 출발선에 선 세 영화인이 뭉쳐 만들었기에 통하는 부분도 많고, 더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감독님은 이해하기 쉬운 분이 아니에요. 굉장히 추상적으로 말씀을 하셔서 간혹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많지만, 신기하게도 어떤 느낌인지는 잘 캐치가 되더라고요. 모두가 처음이라 같은 감각을 공유하고 있던 것 같아요. (심)희섭 오빠도 나이차는 좀 나지만 솔직담백한 사람이어서 소통이 쉬웠던 것 같아요.”

 

데뷔 첫 주연이자 첫 멜로를 경험한 그는 데뷔 6년 차에 접어들어서야 출발선에 선 것 같다고 말한다.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았기에 조금은 지치고, 막막하지만 품고 있는 청사진은 명확하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을 때 스스로 너무 확신을 가졌어요. 반드시 성공한 대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근데 몇 년 하다보니까 만만치 않은 길임을 느꼈어요. 그래도 시작할 때 열정은 지금도 계속 품고 있어요. 앞으로 힘든 일이 와도 ‘절대 포기하지 말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작은 역할이어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중에 팬 분들이 ‘열심히 했다’고 인정해 주실만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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