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핫’한 연출가 김태형. 지난 10년간 압축 고도성장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창작뮤지컬 ‘팬레터’(11월5일까지 이해랑예술극장)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그를 10월의 마지막 주, 대학로 카페 디오르골에서 만났다. 

 

 

■ 공연 마니아들에게 띄우는 ‘팬레터’

‘팬레터’는 김유정을 모티프로 한 소설가 김해진(김종구·이규형)을 향한 18세 작가지망생 정세훈(문성일·김성철)의 동경과 사랑을 담았다.

“세훈은 해진의 열렬한 팬이다. 작품을 사랑하는 걸 뛰어넘어 동경의 인물과 작품으로 교감한다. 작가의 작품세계, 슬픔마저 이해할 정도가 됐다는 거에 집중했다. 실제 공연하다보면 팬들 많이 만나게 되는데 그들의 재능과 팬덤에 감동 받을 때가 많았다. 정말로 나 그리고 작품을 깊이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구나. 우리가 만든 공연이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구나란 피드백을 얻을 때가 창작자로서 굉장한 기쁨이다. 이 공연은 관객들에게 쓰는 편지였다. 매회 무대가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 일제강점기 소재 작품 대열 동참

‘밀정’ ‘암살’ ‘잃어버린 얼굴 1895’ 등 영화, 연극, 뮤지컬 상당수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중이다. ‘팬레터’ 역시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문인들의 모임 ‘9인회’에 조명을 맞춘다.

“너무나 다이내믹한 시기다. 강점당한 민족적 아픔도 있지만 새로운 문물들이 쏟아져 들어와 여러 사상이 혼재된 시기이기도 하다. 혹자는 민족주의, 독립운동으로 강박하기 쉬우나 당시 사람들의 삶은 ‘과거(조선), 현재(일제), 미래(서구문물)’가 혼재된 시대였다. 창작자들에겐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지 않을까. 창작자들은 역사적 시기에 늘 관심을 가지는데, 지금 시대를 향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졌기에 더욱 일제강점기를 빈번하게 소환하는 것 같다.”

 

 

■ 과학고-카이스트-한예종, 드라마틱한 이력

상식과 금기를 흔드는 이력이다. 과학고와 카이스트를 졸업한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입학, 연극연출을 전공했다. 고교·대학시절 연극반 활동을 한 게 동인이 됐다. 김태형 연출은 수학문제를 증명하듯 논리적 완결성을 장면, 작품마다 구현한다. 극의 내용을 해석하고 풀어갈 때 각 장면 속 감정의 논리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다.

“학창시절의 선행학습, 만났던 사람들, 치열한 경쟁이 큰 자양분이 됐다. 난이도 있는 수학, 물리를 공부해야 해서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주어진 문제를 증명하고, 과제에 집중력 있게 매달렸던 훈련이 몸에 배 지금까지도 연출작업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연출 역시 산적한 문제를 집중력을 발휘해 하나씩 해결해나가야 하는 직업이다.”

 

■ 화제의 연극·뮤지컬로 채운 필모그래피

2007년 연극 ‘오월엔 결혼할거야’로 데뷔했다. 이후 ‘모범생들’ ‘히스토리 보이즈’ ‘두결한장’ ‘연애시대’ ‘가족오락관’ ‘옥탑방 고양이’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카포네 트릴로지’, 뮤지컬 ‘팬레터’ ‘브루클린’ ‘아가사’ ‘더 넥스트 페이지’ ‘로기수’ 등 화제작·히트작을 줄줄이 선보였다.

 

 

오는 12월에는 제이미 윌크스의 라이선스 초연 연극 ‘벙커 트릴로지’, 내년에는 살인자 재벌2세를 주인공으로 한 창작연극 ‘베히모스’, 즉흥 뮤지컬, 국내 초연되는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연출도 앞두고 있다.

“이성적인 면이 많은 연극이 체질적으로 잘 맞는다. 연극 대사와 무대 매커니즘에 익숙하고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아직은 뮤지컬 문법이 익숙치 않으나 좋은 파트너들을 만나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나와 더 좋은 결과물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특히 대형 뮤지컬은 경험해보질 않아 내년 작품이 부담되는 한편 설레기도 한다. 공간과 자본 등 대극장 시스템을 공부할 기회가 될 것 같아 욕심이 난다.”

 

■ 최대 관심사 ‘시대와 충돌하는 인간’

로맨틱 코미디로 데뷔했으나 부터 성장드라마, 누아르, 스릴러, 청춘물, 로맨스 등 폭 넓은 스타일에 뛰어들어 웰메이드 작품을 쑥쑥 뽑아낸다. 대중적인 작품들에 손을 대면서도 금방 휘발되지 않는 이유는 불편한 시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늘 존재했기 때문이다.

 

 

“시대와 충돌하는 인간 이야기에 가장 관심이 많다. 그래서 망가질지언정 꿈을 잃지 않는 이야기가 좋다. 시대에 대한 분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거에 끌린다. 이야기 외적으로는 기존과 다른 형식의 공연이 나를 자극한다. 내가 지금까지 선택하거나, 하고 싶었던 작품들을 보면 이 시대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 말해야 할 것들, 비판의식을 세련된 방식으로 전달하는 거였다. 그렇다고 시대정신을 직접적으로 주장할 만큼의 용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 ‘무대연출’ 뛰어넘고 싶은 욕망

2008년부터 창작(극작)에 대한 욕구를 쌓아왔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어떻게든 글을 써야 하는데 ‘해야지 해야지’ 그러고만 있는 게 문제란다. 2~3가지의 시놉시스를 가지고 만지작거리는 중이다. 그 중의 하나는 시위대 이야기를 뮤지컬로 풀어낸 거다. 한편으론 영화 연출에 대한 욕심도 있다.

“영상세대라 문자보다 영상이 익숙하다. 요즘 연극도 영상문법이나 편집기법을 차용해 만들어질 경우가 많다. 특히 영화, 드라마는 파급력 강한 매체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충분히 시간을 갖고, 공부를 많이 해보고난 뒤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을 때 도전해보고 싶다.”

 

사진 김상곤(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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