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팩트 있는 배역은 많아도 오래 기억되는 배우는 많지 않다. 지난해 JTBC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를 통해 지질한 전 남친 이규민 역으로 시청자에게 눈도장을 찍은 배우 오륭이 OCN ‘트랩’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잘나가는 기업인 이면에 숨겨진 소시오패스 본능을 유려하게 그려낸 오륭에게 당연히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노릇. 오륭이 열연을 펼친 홍대표는 소시오패스이자 거대악에 휘둘리는 희생양으로 8부작 드라마 안에서 냉온탕을 활발하게 오갔다.
OCN 첫 시네마틱 드라마 ‘트랩’은 캐스팅부터가 화려했다. 이서진, 성동일, 임화영은 물론이고 스냅백(이시훈)으로 대두되는 거대악 무리로 변희봉, 백지원 등이 힘을 보탰다. 그리고 이 기라성같은 선배 배우들 사이에서 오륭이 있었다.
“중간에 무리로부터 버림을 받잖아요, 그래서 더 사연이 있는 인물이 된 거 같아요. 변희봉 선배님은 물론이고 같이하는 선배님들이 워낙 경험들이 많으셔서 무리없이 촬영이 진행된 거 같아요. 현장도 너무 루즈하지 않았어요. 사전제작이라 긴박하지는 않았지만, 타이트하게 매 신을 찍었거든요. 잘 이끌어주셔서 잘 따라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오륭에게 홍대표 역을 먼저 제안한 건 박신우 감독이었다. 전작을 보고 캐스팅 했다기에는 ’예쁜누나’ 이규민과 홍대표의 괴리감이 커 좀처럼 이해가 힘들었다.
“‘예쁜누나’를 보셨던 건 맞아요. 그런데 그때 모습과 또다른 이면을 제 프로필 사진에서 보셨대요. 소시오패스에 대한 감독님의 경험, 그리고 저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홍대표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어보이지만 그런 사람도 결국 하수인이잖아요. 자의든 타의든 자기가 볼 수 있는 세계가 그것밖에 안되는 거 같아서 그게 되게 재미있었어요”
오륭은 캘리포니아대학교를 중퇴했다. 군입대 때문에 한국에 들어왔고, 제대 후에 대학로에서 보게 된 연극에 반해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스물 여덟살이라는 나이에 한예종에 입학해 연기를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길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오륭은 연기를 ‘운명’처럼 만난 뒤 앞만 보고 달려왔다.
“부모님요? 많이 반대 하셨죠. 지금 생각해보면 꼭 그 연극이 아니였어도 구실이 필요했던 거 같아요. 그때 무용을 봤더라면 무용을 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돌파구가 필요했던 거같아요. 미국에서 살다 한국와서 3개월만에 군대를 다녀오고, 그러면서 과도기가 왔어요. ‘뭐 하나만 걸리면 올인해보겠다’ 였죠”
좋은 배역보다는 좋은 작품, 즉 메시지가 중요한 것 같다는 오륭. ‘트랩’에서 그가 홍대표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홍대표는 사실 배경이나 설명이 부족해요. 인물에 대한 설명도 대부분 플래시백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간혹 (정보가) 점프되는 장면이 있거든요. 이 안에서 저 스스로도 홍대표라는 인물을 납득하고 싶었거든요. 그 지점이 바로 큰 세상을 모르고 갇혀서는 사는 거였어요. 멀리 떨어져서 보면 안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철저하게 끝까지 소시오패스를 유지하는 것도 매력있겠지만, 저는 반대로 그런 결함이 있는 것들이 끌렸던 거 같아요”
배역까지 있는 TV 첫 데뷔가 지난해 ‘예쁜누나’가 처음이었지만 오륭은 비교적 빨리 소속사에 둥지를 틀었다. 빨리 자리를 잡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의 책임감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자신을 위한 ‘팀’이 생긴 것이기 때문. 오륭은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이 커진 거 같아요. 이 자료들은 평생 남는 거잖아요. 끝까지 파야하는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라고 전했다.
배우가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다보면 본인이 굳이 댓글을 확인하지 않는 이상 가는 곳마다 칭찬이 따라다닌다. 때문에 꼭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도 주변에 있어야 한다. 오륭은 그런 최측근으로 어머니를 꼽았다.
“좋을 때도 있는데 나쁠 때도 많다고 해주세요. 처음엔 연기를 반대하셨지만, 이제는 좋아하시고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세요. 기사나 방송에 회자되는 건 다 보시는 거 같더라고요. 예전에 제가 긴 기간동안 공연을 했는데 어머니가 한번도 못 오셨어요. 못볼 거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TV는 틀면 나오니까 아버님도 보시고요”
최근에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그때 그들’을 재밌게 봤다는 오륭에게 꼭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있냐고 물었다. 오륭은 “제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감독님들은 있어요. 근데 좋아하는 감독님들의 공통점이 다 자기를 찾아가는 여정의 영화를 만드는 것 같더라고요”라고 설명했다.
사진=싱글리스트DB(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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