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계 대표 젠틀 미남’ 유지태(40)가 신작 ‘스플릿’(11월9일 개봉)에서 지질한 모습으로 변신해 컴백한다. 그는 영화에서 한물 간 전직 볼링 선수 철종 역을 맡아 밑바닥 ‘지질이’ 인생의 끝판왕을 보여준다. 의외의 선택이지만 “망가짐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고 밝힌 그의 눈빛에서 영화에 대한 외곬이 느껴졌다.

 

Q. 얼마 전 드라마 ‘굿 와이프’에선 ‘쓰랑꾼’(쓰레기+사랑꾼)의 면모를 보여줬는데, 이번엔 ‘상 지질이’다. 변신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A. 예전 ‘주유소 습격사건’ 이후로 오락영화는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조용하고 잔잔한 작가영화가 영화의 진수라고 스스로 규정해 놓은 게 있었는데, 망가짐은 스스로 어떤 게 좋은 영화인지 찾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주셔도 될 것 같아요. 생각보다 망가짐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어요. 일단 시나리오가 완성도 있었고, 내 나름 철종을 만드는 과정도 재밌었죠. 호일 펌도 제가 하겠다고 한 거예요.(웃음)

 

Q. 최고의 위치에 올라있는 배우로서 유지태말고도 연출가, 각본가로도 활동 중이다. 작품에 임할 때 조금 남들과 다른 시각이 있을 것 같다.

A. 제가 뭐 연출가이기 때문은 아니고, 배우들 각자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가 영화를 스물세 편 찍었는데, 내 기준에 너무 포커스를 맞추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조금 더 객관화 시킬 필요가 있지요. 내 기준을 갖고 있되 감독님이 뭘 원하는지 조금 집중하는 게 좋죠. 이번엔 특히 조금 더 최국희 감독의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했어요. 이미 촬영 현장 분위기도 너무 잘 알고, 또 결과물도 어렴풋이 느껴지잖아요. 너무 제 줏대를 세우면 분쟁이 일어날 수도, 오해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Q. ‘스플릿’에서 프로 볼링 선수로 분했다. 폼을 위해 무려 4개월이나 훈련했다고 들었다. 프로 욕심을 내고 있는 건가?(웃음)

A. 무려 프로 볼러가 인정해준 폼이에요. 요즘 프로 볼러에 도전하는 후배들도 있어서 우연히 이슈가 더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프로 기준이 190점이라더군요. 제가 180정도 치니까 조금만 더 하면 프로 도전해도 될까요?(웃음) 근데 뭐 그런 욕심보다는 관객들에게 진짜로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저는 늘 그랬어요. 피아노를 전혀 못 치는데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외워서 드라마도 했고요, 전작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때도 테너 12곡을 마스터 했었죠. 늘 성실하게 임하는 자세에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Q. 최근 KBS2 ‘1박2일’에도 출연하고, 그 동안 다가가기 어려운 이미지에서 조금 탈피하고 있는 것 같다.

A. ‘1박2일’은 특집으로 나간 거지만, 사실 영화 홍보차 나간 거나 다름없죠. 아무래도 전작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가 돈이 많이 투자됐는데 관객이 5만 명 들었어요. 그때 홍보를 잘 하는 것도 주연 배우로서 제 역할이라는 마음을 갖게 됐죠. 특히 ‘스플릿’은 블라인드 시사회에서도 꽤 호평을 받았고 언론평도 좋아서, 제가 열심히 알리면 충분히 흥행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저뿐 아니라 다 같이 고생한 배우, 스태프들에게도 책임을 다하는 거니까요. 근데 참 저 혼자 희생되는 느낌이...(웃음) 다행히 ‘1박2일’ 팀이 진정성을 왜곡하지 않고 잘 편집해주셔서 감사해요.

 

Q. 그 진정성이 촬영 현장에서는 어떻게 발휘 됐을지 궁금하다.

A. 어느덧 제가 현장에서 선배의 입장이 돼 있더라고요. 참 부담이 많이 돼요. 넉살이나 재치가 부족해서 나대는 선배는 아니에요.(웃음) 후배들이 잘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지만, 뒤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편이에요. 괜히 조언한다고 분위기 잡으면 꼰대잖아요. 아직 조언할 위치도 아닌 것 같고, 오히려 말보다 연기를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요.

 

Q. 함께 버디로 호흡을 맞춘 배우 이다윗이 “유지태 선배는 다가가기 힘든 아우라와 듬직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유지태에게 이다윗은 어떤 후배인가?

A. (이)다윗은 나이도 어리고 신인처럼 보이지만 지금 10년 넘게 연기를 하고 있는 베테랑이에요. 연기도 잘하고, 배우로서 꼭 필요한 덕목인 현장 ‘소통’에도 능해요. 영화라는 게 연출가, 배우, 스태프 다 프로끼리 모이는 거잖아요. 다윗도 프로의식을 갖고 함께 어우러질 줄 아는 베테랑이죠. 벌써 그 능력치를 갖고 있으면 나중에 어떻게 성장할까 더 기대가 돼요.

 

Q. 진정성을 가진 프로들이 뭉쳐서 만든 ‘스플릿’에 영화 팬들의 기대감이 짙다. 예비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이 작품만의 매력 포인트가 있을까?

A. 일단 볼링핀이 넘어가는 호쾌한 소리,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리는 밀도 있는 구성이 특징예요.(웃음) 이 영화는 순제작비만 30억이 든 중급 규모의 영화에요. 그래서 볼링이란 소재를 택할 수 있었고, 기존 영화와는 조금 다른 실험적인 색감과 결들이 담겨있죠. 사실 이런 도전적인 영화들이 많이 나와 줘야 할 것 같아요. 익숙한 것만 계속 나오면 질리고, 외면 받게 되니까요. ‘스플릿’은 이 지점을 찌르는 작품이에요.

 

Q. 마지막으로 계속 이어질 ‘영화인’ 유지태의 활동 계획을 듣고 싶다.

A. 연출도, 연기도 계속 계획하고 작업 중에 있어요. 남겨진 일들을 하루빨리 스페어처리 해야죠. 계속 현장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출이든 배우로서든 영화 작업이라는 걸 계속 하고 싶다는 순수한 욕심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도 계속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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