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사라져가는 알츠하이머를 시간 이탈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풀어낸 ‘눈이 부시게’가 깊은 감동과 위로를 전했다. 오래도록 곱씹을 아름다운 엔딩이자 인생작을 남겼다. 최종회 시청률 역시 12%를 돌파하며 월화극 1위로 유종의 미를 거뒀다.

19일 방송된 JTBC 월화드라마 ‘눈이 부시게’(연출 김석윤, 극본 이남규·김수진) 12회에서 기억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며 혜자(김혜자)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그렸다. “어느 하루도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라는 삶의 질곡을 겪어낸 70대 혜자의 고백은 그의 인생을 함께한 시청자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파장을 남겼다.

작품성과 화제성, 시청률까지 모두 잡으며 찬사를 받은 ‘눈이 부시게’는 월화극 최강자의 위엄을 과시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최종회는 전국 기준 9.7%, 수도권 기준 12.1%(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를 기록, 자체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우며 지상파를 포함한 동시간대 1위를 지켰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3월 2주차 TV화제성 지수에서도 50%가 넘는 압도적 점유율로 월화드라마 중 1위에 올랐다.

이날 대상(안내상)은 시계 할아버지(전무송)만 보면 민감하게 반응하는 혜자(김혜자)를 걱정하며 시계와 관련한 기억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대상의 기억 속 혜자는 냉정한 엄마였다. 사고로 평생 의족을 하게 된 대상에게 다정한 손 한 번 내밀어주지 않았다. 홀로 생계를 꾸리느라 강한 엄마가 되어야 했던 혜자. 대상은 철저히 혼자라 생각했다. 혜자와 준하의 인생도 꽃길이 아니었다. 준하는 뜻대로 기자가 됐고, 혜자와 부모의 역할을 배워나갔다.

하지만 평온한 일상은 날벼락처럼 깨졌다. 정보부에 잡혀갔다 풀려나지 못한 준하는 사망통지서 한 장으로 죽음을 알려왔다. 고문에 의한 사망이 분명했다. 준하의 생명처럼 시계도 빼앗았던 경찰이 바로 시계 할아버지였던 것. 혜자를 기억해낸 할아버지는 뒤늦은 사과와 함께 시계를 돌려줬다. 하지만 혜자에게 필요한 것은 더이상 시계가 아니라 준하와의 기억이었다. 준하의 기억은 혜자를 버티게 했던 행복이고 버팀목이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두려움이었다.

혜자가 사라졌다는 연락에 대상은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손이 얼어붙도록 눈을 쓸던 혜자는 대상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다리가 불편한 아들이 넘어질까 습관적으로 눈을 쓸고 있었다. 그제야 눈 오는 날이면 매일 눈을 쓸던 엄마의 사랑을 알게 된 대상은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아줬다. 참 오래 걸린 모자의 화해였다.

그리고 어느 눈부신 날, 혜자는 대상과 함께 가장 평범했던 날을 추억했다. 눈앞에 환하게 웃는 준하가 있었다. 준하와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으로 돌아간 혜자는 자신을 기다리는 준하에게 달려가 안겼다. 잃어가는 기억과 사라지는 시간의 끝, 이제야 같은 시간 안에 조우한 혜자와 준하의 포옹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눈이 부시게’는 마지막까지 차원이 다른 감성으로 가슴을 울렸다.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과 당연하게 누렸던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운 ‘눈이 부시게’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따듯한 위로를 전했다.

알츠하이머 혜자를 통해 바라본 ‘시간’과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마음속에 깊게 남았다.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을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라는 마지막 내레이션까지 모든 순간을 반짝이게 만들었다.

감성 마법이 가능했던 건 평범한 일상을 눈부시게 빚어낸 배우들의 힘이었다. “내 일생을 보는 것 같다”던 김혜자는 인생이 녹아있는 연기로 전 세대의 웃음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야말로 김혜자만이 가능한 세월의 깊이였다. 한지민은 감정선을 세밀하게 쌓아가는 연기로 다시 진가를 입증했다. 남주혁은 깊이가 다른 연기로 청춘의 쓸쓸함과 아픔을 형형하게 새겨 넣었다. 웃음을 하드캐리한 손호준, 절친 케미를 선사한 김가은과 송상은, 현실적인 연기로 눈물 버튼 역할을 한 안내상과 이정은, 정영숙 전무성 우현 등 관록의 연기파들이 시청자들을 마지막까지 웃기고 울렸다.

사진=JTBC '눈이 부시게' 방송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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