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비르투오소 클라라 주미 강과 손열음이 클래식계 워맨스 주역으로 나섰다. 세계를 무대로 맹활약 중인 두 연주자는 데카 레이블을 통해 신보 ‘슈만·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와 로망스’(유니버설뮤직)를 발표하고 10~17일 전국 4대 도시 투어를 진행한다. 기온이 급강하한 9일 오전 한남동 스트라디움 홀에서 두 여제를 만났다.

 

 

■ 슈만, 클라라 그리고 브람스

올해 3월 독일 하노버에서 녹음한 신보에는 19세기 독일 낭만주의 정수가 담겼다. 클라라 슈만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3개의 로망스’, 슈만 ‘3개의 로망스’와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브람스 스케르초 C단조와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이 트랙을 미끄러지듯 질주한다.

1집 ‘모던 솔로’ 이후 5년 만에 새 앨범을 내놓은 클라라 주미 강은 “언니와의 듀오 음반이 드디어 현실화됐다”고 달뜬 표정을 지었다.

“오래 전부터 레코딩 이야기를 나눠왔었거든요. 레퍼토리로 슈만, 베토벤, 브람스를 거론했고요. 사실은 슈만과 브람스 전곡을 다하고 싶은데 ‘섞는 게 어떨까?’ 하면서 자연스럽게 선곡이 이뤄졌어요. 여기에 두 작곡가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클라라를 배치했고요. 가족애, 연모의 정, 우정 등 많은 종류의 사랑이 이 세 작곡가 안에 그리고 곡 안에 담겨 있어요.”

올해 초 20세기 현대 음악가들의 곡들로 꾸려진 ‘모던 타임즈’를 발매한 손열음은 “지난해 11월엔 ‘모던 타임즈’, 올해 3월에는 이걸 녹음하느라 간격이 별로 없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실 레코딩 작업을 낯설어하고 힘들어 하는데 ‘모던 타임즈’를 준비하면서 희열을 느꼈어요. 생각이 바뀌던 상황에 주미와 녹음하면서 너무 신기할 정도로 재미있었어요. 연주 때는 배우와 감독 역할을 모두 해야 하지만 레코딩은 후반작업이 있어서 연기에만 집중하면 되거든요. 작곡가들이 당시 이 마디, 이 음에서 생각했던 감정을 집중해서 끄집어낼 수 있었죠. 또 연주는 빅 픽처가 없으면 무너지므로 한음 한음에 집중하기가 힘든데 레코딩에선 그게 가능하고요.”

주미 강은 바이올린 소나타 중 가장 좋아하는 게 슈만과 브람스 작품들이다. 특히 독일에서 태어난 그의 ‘클라라’라는 이름은 슈만의 아내이자 연주자인 클라라 슈만으로부터 따온 것일 정도다. 절친했던 슈만과 브람스를 연결해 음반을 내기로 결정했을 때 딱 클라라가 떠올랐다. 어렸을 때부터 궁금해서 클라라 슈만 책을 많이 읽었던 그였다.

“슈만이 정신적으로 평온했던 시절에 클라라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3개의 로망스’를 선물했고, 몇 년 후 슈만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에 클라라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3개의 로망스를 주었어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선사한 곡임에도 분위기가 너무 밝아서 인상적이었죠. 클라라는 그렇게 희망을 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브람스가 감정보다는 자연, 신 등 세상의 많은 걸 음악에 넣었다면 슈만은 감정과 자기 세계에 집중했던 작곡가죠.”

“슈만과 브람스에 대한 생각은 주미와 비슷해요. 두 사람은 아주 친했고 서로가 없었으면 불행했을 듯해요. 하지만 두 작곡가는 근원적으로 다른 음악 취향을 가졌어요. 그래서 양극단을 보여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슈만이 마이크로라면 브람스는 마크로예요. 슈만의 경우 하나하나가 세밀하게 움직이는 느낌이라면 브람스는 꾹꾹 누르는 느낌이죠. 이런 상반된 부분을 잘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 한예종 선후배 사이...인생의 소울메이트

주미 강과 손열음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선후배 사이인 클라라 주미 강과 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둘도 없는 단짝으로 통하는 사이다. 현재 주미 강이 고향인 독일 뮌헨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손열음 역시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 교수를 사사 중이다.

“제가 1학년 때 언니가 3학년이었어요. 친구(실내악 앙상블 노부스콰르텟의 김재영)의 소개로 알게 됐는데 언니가 귀엽다며(별로 들어보지 못했던 말인데) 잘해줬어요. 제 실기시험을 도와준 이후 학교에서 연주하면서 같이 놀았어요. 그러다가 2011년 대관령음악제에서 협연했고, 2012년 뉴욕 카네기홀 데뷔 무대 당시 언니가 피아노 반주를 맡아줬죠.”

“워낙 신동으로 유명해 음악잡지를 통해 알고 있었는데 음악원에 입학하니 신기했죠. 그땐 볼살이 통통해서 정말 귀여웠어요. 주미와는 같이 연주할 때 너무 편하고 쉽게 몰입하게 돼요. 앙상블이 여러 부류가 있는데 저희는 그야말로 흘러나오듯이 연주하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수밖에 없는 듯해요.”

두 사람은 공통분모가 많다. 음악적 취향뿐만 아니라 방대한 독서량, 탄탄한 인문학적 지식, 논리정연한 말솜씨와 필력 등이 그렇다. 전화통화를 하게 되면 몇 시간 수다는 기본이란다.

 

 

■ 바이올리니스트 vs 피아니스트

각각 해외파 바이올리니스와 국내파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었지만 탁월한 실력으로 세계 유수의 콩쿠르를 휩쓴 두 사람이 상대의 악기에 대한 얘기를 꺼내놓아 흥미로웠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완전히 달라요. 피아노란 악기는 구조를 만드는데 바이올린은 한음, 한음에 집중하는 악기죠. 울림에 있어서도 바이올린이 피아노보다 훨씬 작고요. 연주자로서 언니와 다른 면이 분명히 있는데 오히려 비슷했다면 이렇게까지 서로 찾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언니는 무대에 걸어나올 때부터 대단한 걸 들려줄 거 같은, 압도하는 힘이 있어요. 연주자들 입장에서 ‘와우!’하는. 빅 픽처(큰 그림)를 놓치지 않는 면이 존경스럽죠.”

“클라라는 강점이 너무 많은 연주자예요. 노래하는 것처럼 연주해요. 부모님이 성악가여서 그런 영향을 받았을 거예요. 사실 모든 연주자들의 꿈은 노래하는 것처럼 연주하는 것이거든요. 그걸 잘 구현하는 인스트루멘털리스트죠. 마이크로와 마크로의 차이는 엄청 크면서도 작은 건데 주미는 그 둘을 유려하게 넘나들어요.”

손열음은 다음 듀오음반으로 베토벤과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소망을 드러냈다. 인터뷰를 갈무리하며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이 시점이 브람스, 슈만과 가장 잘 어울려요. 콘서트에서 깊은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요”(강), “요즘 시국이 어수선해서 많은 분들이 위로를 찾으실 거라고 봐요. 이 음악들만큼 위로란 키워드와 어울리는 게 없을 듯해요. 슬픈 영화를 감상하려는 마음으로 오셨으면 해요”(손)라고 말했다.

 

사진 권대홍(라운드테이블)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