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클래식 역사를 새로 쓴 ‘젊은 거장’ 조성진(22)이 세계적인 음반레이블 도이치 그라마폰에서의 첫 스튜디오 정규 음반을 오는 25일 내놓는다. 올해 1월 DG 전속 계약 이후 선보이는 이번 앨범에는 지난해 쇼팽 국제 피아노콩쿠르 우승의 영예를 안겨준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을 비롯해 발라드 전곡(1~4번)이 수록됐다. 음반 출시를 앞두고 16일 오전, 대학로 JCC아트홀 무대에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와 블랙 수트로 성장한 청년이 차분한 중저음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쇼팽으로 꾸민 레코딩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은 지난 6월 영국 런던 애비로드 스튜디오, 발라드 전곡은 9월 독일 함부르크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할레에서 녹음을 진행했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와 수석 객원 지휘자 지아난드레아 노세다가 함께했다.

“애비로드 스튜디오는 비틀스나 지휘자 카라얀이 녹음을 많이 했던 곳이에요. 위대한 음악가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걸 보니 신기했어요. 런던심포니와 호흡이 잘 맞아서 수월하게 녹음이 진행됐고요. 할레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 중 하나인 ‘슈베르트 즉흥곡’을 라두 루푸가 녹음했던 곳이라 의미 깊은 장소였죠. 너무 기분 좋고 설레면서 녹음을 마쳤어요. 협주곡 녹음은 주변에 사람이 많아 호흡하는 느낌이라면 솔로 레코딩은 큰 스튜디오 안에서 홀로 피아노 치다보니 외로워서 조금 더 어려웠어요.”

쇼팽 콩쿠르 이후 지난달 미국 연주까지 50회 넘게 쇼팽 레퍼토리 위주의 연주회를 강행했다.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경계하며 녹음에 임했다. 처음 연주하는 듯한 프레시한 느낌 살리는데 주력했다.

“쇼팽 발라드는 어렸을 때부터 연주해왔지만 어렵게 느꼈어요. 크리스티안 짐머만의 음반을 듣고 발라드에 빠져있었는데 한편으론 큰 산 같이 느껴졌어요. 어린 시절부터 녹음해보고 싶었던 곡을 이번에 하게 돼서 영광스럽고 기쁘죠. 그런 면에서 뜻깊은 음반이에요. 발라드가 쇼팽 이전 시대에는 흔하지 않은 형식이었어요. 조성이나 형식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곡 안에 있다고 여겨요. 발라드가 가지고 있는 드라마와 스토리를 전달하는데 치중했어요.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국내에서만 발매되는 디럭스 버전에는 녹턴 20번이 보너스 트랙으로 담겼다. 연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즐겨 연주해온 곡이라 선택하게 됐다.

■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교류

한국 클래식의 미래를 책임진 청년 연주자는 세계적인 음악인들과 교류하며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역대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폴란드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짐머만이다. 지난해 10월18일. 쇼팽 콩쿠르 파이널 무대 진출자 10명 가운데 첫 번째로 연주를 끝낸 뒤 호텔로 돌아왔는데 짐머만으로부터 e-메일이 와있었다.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너의 연주가 좋았다”는 축하 내용이었다.

“너무 놀랍고 감동적이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 좋은 기억이에요. 콩쿠르 우승한 뒤에도 축하 e-메일을 보내줬고요. 한달 뒤 도쿄 리사이틀 했는데 그때도 축하 방문해줘서 함께 저녁식사를 했어요. 올 1월에 일본에서 만났을 땐 매니지먼트사 결정을 앞두고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너의 직감을 믿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그래서 직관에 따라 결정했죠.(웃음) 지금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는데 늘 응원해주세요.”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 역시 큰 힘이 돼줬다. 쇼팽콩쿠르 당시 긴장이 고조됐던 1차 연주 전날 전화로 응원을 해줘 긴장이 풀어졌다. 콩쿠르가 끝나고나선 축하 전화를 해줬다. 지휘자 노세다는 올해 2월 파리에서 처음 만났다. 파리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들려준 베르디 ‘레퀴엠’은 조성진이 들어본 것 중 가장 훌륭한 연주였다.

“이분과 언젠가 협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불과 몇 달 뒤에 함께 레코딩을 할 기회가 와서 뛸 뜻이 기뻤죠. 이탈리아 분이라 오페라에 능숙하세요. 쇼팽 협주곡은 어떤 면에선 모차르트의 오페라 느낌이 있어요. 벨칸토 노래를 하듯 오페라를 연상시키죠. 노세다로 인해 이번에 마음껏 노래하듯이 연주할 수 있었어요.”

 

 

■ 포스트 쇼팽콩쿠르, 달라진 것들

쇼팽을 해석하는 심오한 통찰력과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우승의 영예를 안고,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제 짧은 생애에서 가장 빨리 지나간 한해예요. 달라진 점은 전보다 e-메일이 많이 온다는 점이고요. 유명세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알아보는 사람이 가끔 있기는 하지만 많지는 않아요. 인생이나 일상이 변했다는 느낌을 줄 정도는 아니고요. 생각해보면 크게 바뀐 점은 없는 듯해요. 다만 제가 원하는 연주를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점? 좋게 바뀐 거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쇼팽 콩쿠르 직후 음반사 결정하느라 애를 먹었다. 지난해 11월 초 런던에서 연주를 한 이후 유니버설뮤직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대화가 잘 이뤄져 계약서를 받았을 때 혀를 내둘렀단다.

“분량이 30페이지에 달하더라고요. 협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변호사한테 도움을 요청했죠. 제 인생에 변호사를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음. 하하. 성격이 원래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고 긍정적이에요. 그래서 쇼팽콩쿠르 이후 이런저런 변화에 그리 힘들진 않았어요.”

 

 

■ 20대 청춘 그리고 파리 라이프

연습과 연주, 세계 투어로 이어지는 나날이다. 팔팔한 20대 청춘을 통과하는 그에게 아쉬움은 없을까.

“그 나이면 대학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리고 평범하게 지내는데 부럽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제가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음악가이거나 관계자들이에요. 제가 봤을 땐 다른 20대 청춘이 특별한 삶을 사는 거고, 음악가인 저의 삶이 평범하지 않나 싶어요. 그냥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고, 앞으로 계속 좋아할 거라 아쉽진 않아요.”

파리 국립고등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나면서 파리에 체류한 지 5년째다. 한 인터뷰에서 파리에서의 생활이 연주 영감에 많은 영향을 준다고 밝힌 바 있다. 조성진은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하도록 해줬기에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의 파리 라이프는 어떨까.

“굉장히 심플해요. 연주가 없을 때는 하루에 서너시간씩 집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요. 아파트에선 저녁에 연습을 못하니까 약속이 없으면 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인터넷을 하거나 노트북으로 영화를 보곤 하죠. 산책을 나가기도 하고요. 콩쿠르 이후엔 거의 매일 저녁 약속이 있어서 친구들이나 관계자들을 만나러 나갔어요. 음악은 주로 클래식을 듣는데 팝으로는 영국그룹 퀸을 좋아해요. ‘보헤미안 랩소디’가 즐겨 듣는 곡이죠.”

 

 

■ 쉼표 없는 향후 스케줄

내년에 유럽, 미국, 아시아 등지에서 80개의 연주 스케줄이 빼곡하게 잡혀 있다. 한국에서는 1월3~4일 롯데콘서트홀 리사이틀, 5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모차르트 소나타와 드뷔시 ‘명상’ 쇼팽 발라드 전곡으로 리사이틀을 진행한다. 특히 2월22일 뉴욕 카네기홀 데뷔 연주회가 각별하다.

“어린 시절부터 카네기홀의 잔켄홀에서 연주하는 게 꿈이었는데 지난해 이맘 때 메인홀 초청을 받아서 깜짝 놀랐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목표를 이루면 새로운 욕심이 생겨요. 연주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베를린필이나 비엔나필과 협연해보고 싶어요.”

내년엔 레퍼토리의 변화도 이뤄진다. 올해 쇼팽과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연주하기도 했는데 내년부터는 쇼팽 곡 연주 횟수를 줄이며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을 늘일 예정이다. 솔로 연주회에선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를 1부에 넣고, 2부에 쇼팽을 배치한 기조를 유지하면서 모차르트와 드뷔시, 베토벤 소나타, 쇼팽 소나타를 연주할 계획이다. 내년에 녹음할 신보는 드뷔시로 꾸린다.

“쇼팽 곡을 반복해서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 ‘지루하지 않느냐’고 물어보는데 재밌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거나 내 연주가 느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좋거든요. 쇼팽 콘체르토를 50번쯤 연주했는데 이제야 조금씩 편하게 느껴지고 이해되기 시작해요. 어떤 곡이든 적어도 50번은 연주해야 곡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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