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지는 밝고 건강한 에너지로 가득 찼지만, 언뜻 깊은 속내도 엿보이는 배우다. 18일 121부작의 MBC 일일드라마 ‘다시 시작해’ 종영을 앞두고, 극중 나영자 역으로 열연한 박민지와 성수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데뷔 13년만에 드라마 첫 주연으로 도약한 배우의 성취감은 온 스튜디오를 화사하게 물들이기 모자람이 없었다.

 

Q. 첫 주연이다. 촬영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이전 작품인 '치즈 인더 트랩'은 대학생들의 청춘을 담은 캠퍼스물이었다. 트렌디함이 강점이던 전작과는 다르게 '다시 시작해'는 다양한 연령층을 염두한데다 굉장히 한국적인 느낌의 가족 드라마다. 처음에는 '영자' 캐릭터가 마음에 들고 주인공을 해보고 싶어서 도전하게 됐는데, 가족들하고 떨어져 산지 너무 오래돼 소소한 가족 이야기에 묻어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마치 2016년을 사는 박민지가 명자와는 너무 다른 삶을 사는 사람 같았다.

Q. 일주일에 5회나 방영되는 일일드라마를 121부작이나 촬영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아무리 한 회당 30분씩이라고 해도, 121부작이면 굉장히 길다. 다행히 체력이 좋은 편이라 큰 탈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6~7개월 내내 드라마에 꾸준히 빠져있으려면 많은 정신력이 요구되더라. 영자 앞에 위기라던가, 충격적인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촬영에 앞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했다. 고비의 순간들을 끝내고 나면 갑자기 공허함 비슷한 기분이 밀려오기도 했다. 집중력이 흐려지고 퍼질 때마다 "이래선 안돼"라고 스스로 말하며 정신을 다 잡으려 노력했다.

 

Q. 드라마의 인기에 힘 입어, 중장년의 시청자들이 많이 알아보게 됐나?

예전에는 대부분 젊은 분들이 알아보셨다면, 요즘은 확실히 어머님 아버님 팬들도 많이 생겨났다. 초반에는 극에 대한 주목도가 현재보다 낮아서 잘 실감을 못했는데, 중반부터 인지도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촬영지나 식당, 심지어 길을 돌아다닐 때에도 많이 알아봐주시고 응원도 전해주시더라. 영자가 힘든 상황에 처해있을 때는 걱정어린 말도 해주시는 거다. 그만큼 시청자분들이 영자에게 공감하고 사랑해주시는 것 같아서 힘을 많이 얻었다.

Q. 상대배우 김정훈은 연예계 최고의 브레인으로도 유명하다. 평소 지식인의 기질이 느껴졌나?

그보다는 정말 푸근한 동네형 같았다(웃음). 되게 유머러스하고 센스 있는 편이시다. 함께 지내면서 딱딱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평소에는 잘 의식을 못하다가 종종 느껴질 때도 분명 있기는 했다. 오빠가 가끔 잘 알고있는 지식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인류 역사에 대해 진화가 어쩌고 저쩌고… 그럴 때 속으로 "오, 좀 똑똑하다" 싶었다.

 

Q. 아이돌 출신의 고우리와 작업하면서 배우들과는 다른점이 있었나?

우리 언니도 연기를 시작한지 좀 됐다고 하고, 이전에 장편이나 주말 일일 등 많이 해왔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런지 호흡이 전혀 어렵지 않았고 내가 오히려 배우는 점도 있었다. 나는 상대적으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 반면 일일드라마를 이전에 해본 적 있는 언니가 훨씬 능숙했고, 내게 조언도 많이 해줬다. 확실히 우리 언니나 정훈 오빠는 가수 경력도 있고 예능 경험도 많으니까 좀 더 수월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Q. 올해에만 영화 두 편과 드라마 두 편으로 알찬 커리어를 쌓았지만, 그 이전에는 공백기가 좀 있었다.

그때는 그냥 엄청 열심히 살았다. 그냥 기회가 있겠지, 생각하며 숨 잘 쉬며 살려고 노력했다. 사는 게 그저 일 같더라. 밥도 내 스스로 내가 해서 먹어야 하고 월세를 준비해야 하고 만만치 않았다. 대신 시간이 많으니까, 친구들을 비롯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가며 지냈다. 옛날엔 친구들이 많이 없었던 데다 무미건조하고 심심한 일상 속에서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았던 것 같은데, 공백기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 느꼈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된 것 같다. 분명히 강해졌기 때문에 나름 소중한 시간이었다.

Q. 잡지 모델로 데뷔한 이후 13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열일곱의 어린 나이에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렸을 때부터 TV보는 걸 되게 좋아했고, 자연스레 연기에도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때 드라마를 볼 때 TV 속에서 연기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게 됐다. 패션지 보는 것도 좋아했는데, '쎄씨' 전속모델 선발대회에 나갔다가 상을 타게 됐고, 그렇게 전속모델 활동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제니, 주노' 오디션을 보게 돼 어린 나이에 주목을 많이 받게 된 것 같다.

Q. 차근차근 커리어를 밟고 있지만, 아직 대중의 눈에 박민지는 '제니, 주노'의 이미지가 잔존해있는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안하는데, 그런 얘기를 하도 듣기는 했다. 하지만 스스로 조금씩 변화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치인트'에서의 보라는 '제니, 주노'에서의 모습과 비슷하다면 이번에 연기한 '영자'는 마찬가지로 밝고 씩씩하지만 제니나 보라와는 확연히 다른 캐릭터다. 훨씬 마음도 단단하고 성숙한 캐릭터를 연기해보며 천천히 변화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사실 아직까지는 장르나 캐릭터의 폭을 넓혀야 겠다는 강박같은 건 없다. 지금까지와 다른 역할을 하게 된다면, 그냥 내가 재밌어 보여서 하는 걸 테다.

 

Q. 주연으로서 첫 드라마가 종영한 소감은?

성인이 된 이후로는 처음으로 극을 끌고가는 주인공 역을 맡았다. 그만큼 내겐 각오도 남다르고 힘든 점도, 보란된 순간도 많았던 작품이다. 길다면 긴 여정을 끝내고 나니까 후련하면서도, 매일 보던 감독님과 스텝들을 이제 매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드라마가 방영 중이라서 완전히 떠나보낸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극이 모쪼록 잘 마무리됐으면 싶은 마음이고, 시청자분들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봐주셨으면 좋겠다.

 

 

사진 이완기 (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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