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를 통해 뮤지컬계 섹시가이로 탈바꿈한 이충주(35)가 ‘킹아더’(오는 6월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 몸을 실었다. 진을 쏙 빼놓는 작품으로 유명한 록 뮤지컬 ‘더 데빌’이 끝나자마자 ‘킹아더’로 갈아타며 열일 행보 중인 그를 꽃샘추위가 방문한 봄날, 만났다.

중세 유럽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오랜 기간 다양한 콘텐츠로 변주돼온 아서왕의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최신 프랑스 뮤지컬이다. 아름다운 선율과 송스루, 아크로바틱한 파워풀 군무를 특징으로 하는 프렌치 뮤지컬의 결에 판타지와 비장한 분위기를 덧대 지난달 14일 개막 이후 색다른 감흥을 자아내고 있다. 이충주는 아서왕(한지상 장승조 고훈정)과 대척점에 선 악역 멜레아강을 맡아 강홍석 김찬호와 3색 캐릭터의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왕위에 대한 욕망과 복수에 사로잡힌 인물이다.

“자신이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의 주인이라고 믿는 인물이에요. 왕이 돼야 한다고 믿어왔는데 아더로 인해 꿈이 무너져버리고, 사랑하는 여자도 빼앗기죠.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동시에 배우라면 누구나 끌리는 매력적인 악역이나 멋지게 그려내고 싶어요.”

주연을 전전해온 그가 조연을 선택한 이유가 살짝 궁금했다. 음악의 매력이 컸다. 웅장하고 비장한 분위기를 뚫고 나오는 켈틱팝이 녹아든 아름다운 멜로디, 다채로운 장르는 향연 자체였다. 특히 멜레아강의 넘버들은 귀에 그냥 꽂혔단다.

뮤지컬 '킹아더' 무대장면/사진=클립서비스 제공

“‘노트르담 드 파리’를 두 차례 공연하면서 프랑스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커졌어요. 프랑스 뮤지컬은 음악의 힘, 화려한 안무와 무대장치. 확실히 구분되는 싱어와 댄서 구분이 확실하고 코웍이 너무 좋아요. 누구 한 명이 두드러진 주인공이 아니라 배우와 댄서들 각자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점도 멋지고요. 여기에 그동안 어두운 역을 많이 맡아오며 마냥 어둡거나 이유 없는 ‘악’이었는데 멜레아강은 악인임에도 결핍이 많아서 연민이 가고 매력적이에요. 빼앗김에 대한 상처가 잘 드러났으면 해요.”

입꼬리가 쏙 올라간 작은 입매와 귀공자풍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무대에서 ‘다크한’ 캐릭터를 연기하곤 했다. 잘 드러나지 않던 그의 매력이 폭발한 곳은 아이러니하게 2017년 방영된 JTBC 음악예능 ‘팬텀싱어’였다. 개인전부터 테너와 바리톤을 오가는 압도적인 음색과 성량을 자랑했던 그는 팀 ‘에델 라인클랑’을 꾸리면서 절제된 카리스마와 섹슈얼리티의 ‘美친’ 퍼포먼스로 심사위원단과 시청자를 매혹했다.

“‘팬텀싱어’ 출연을 놓고 고민을 진짜 많이 했는데 ‘잃을 게 없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했어요. 그 과정이 무섭고, 최종까지 갔던 거에 대해서 진짜 감사해요. 중간에 떨어졌으면 불편했을 거 같거든요.(웃음). 매번 경연을 준비하면서 내가 뮤지컬에 이 창법을 어떻게 접목시킬지 많은 고민거리를 안겨준 기회였어요. ‘팬텀싱어’ 이후 더 폭넓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거는 사실이고, 에델 라인클랑이란 이름을 건 프로젝트 활동은 계속할 계획이에요. 그 팀 덕분에 할 게 많아졌어요. 대극장 콘서트도 하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걸 다 해봤죠.”

노래를 좋아해서 교회 성가대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성악을 접했다. 대학 입학을 고민하던 당시 연극영화과나 실용음악과를 제대로 알았다면 그쪽으로 진학했을 텐데 무지(?)했던 이유로 경희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바리톤을 전공하던 그는 점차 답답함을 느꼈다. 외국어로 노래를 해야하는 점을 비롯해 유학에 대한 강박, 무엇보다 평생 즐거울 수 있을까란 고민이 밀려들었다. 그러던 차에 한 뮤지컬 음악감독이 교회에서 노래하는 자신을 본 뒤 권유를 해 뮤지컬 오디션을 보게 됐다. 2009년 ‘스프링 어웨이크닝’으로 데뷔해 10년째 뮤지컬 배우를 하고 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면 초중반까지는 제 또래 배우들이 가지 않는 길을 많이 갔던 것 같아요.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탭댄스도 췄고, 중반 이후부터 연극도 많이 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접하며 숙제하는 기분이랄까. 어느 순간부터 구축된 다크한 이미지를 깨보기 위해 ‘아이 러브 유’란 코미디 뮤지컬도 해봤고요. 아직까진 이것저것 도전해봐도 되지 않겠나 싶어요.”

작품이나 역할에 대한 열망은 접으려 한다. 애면글면한다고 성사되는 게 아니라 운명처럼 다가오는 것임을 절감하기 때문이다. 요즘엔 영화, 드라마에 대한 궁금함이 시나브로 커지는 중이다.

“어릴 때부터 동경해왔던 조정석 선배라든지 ‘킹아더’에서 함께하고 있는 장승조 선배, 요즘 드라마에서 맹활약 중인 박호산 오나라 선배들을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잘 된 분들이 아니거든요.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평소 준비가 잘 돼 있어야겠죠. 연극을 처음 했을 때, 처음엔 호기심에 출발했는데 막상 해보니 뮤지컬과 너무 다른 연기의 세계가 있더라고요. 음악에 기대지 않은 채 연기로만 부닥치는 게 너무 좋아서 1년에 한두 편씩은 꼭 출연하려고 결심을 하게 됐었죠.”

뮤지컬 ‘업계’에서 아쉬움을 느낄 필요 없이 충분한 성취를 해냈을 것으로 보이는데 “한참 멀었다”고 말한다.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를 못해 매일매일 줄 위를 걷듯이 지낸다”고 토로한다. 겸손인지 엄살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킹아더’를 잘하자는 마음만 가득하다. 아더왕 전설이나 원탁의 기사 이야기는 누구나 재밌어할 만한 소재인 데다 들으면 들을수록 넘버들이 좋고, 탁월한 안무와 캐스팅으로 인해 원작보다 더 멋있고 세련된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이 작품으로 인해 좋은 일들이 생겨났으면 해요. 이후 필모그래피를 어떻게 가꿔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겠죠. 쉬면 잊혀질까봐 두려워서 쉼표 없이 작품 출연을 하고 있어요. 아직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죠. 다만 겹치기나 똑같은 이미지로 소비되고 싶진 않아요. ‘배우는 필모그래피를 우아하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얘기를 마음에 담아두고 지내거든요. 매번 다른 캐릭터로, 배우 이충주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뿐이에요.”

사진=김수(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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