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왕복서간: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은 일본 현대문학을 이끄는 스타 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튼튼한 원작을 바탕으로 ‘왕복서간’은 흡입력있는 무대를 보여줬다.

부제 ‘십오 년 뒤의 보충수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본 작품은 15년된 오래된 연인 준이치와 마리코의 이야기를 다룬다. 오랜 시절 평온한 관계를 유지하던 이들에게 균열이 생긴 것은 바로 준이치의 남태평양 오지로의 자원봉사 활동 때문이었다.

오래된 연인의 갑작스러운 자원봉사 활동 선언, 2년간 얼굴은커녕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은 곳에 가야한다는 말에 마리코는 당황스러울 뿐이다.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그를 보냈던 마리코에는 15년 전 그 '사건'이 자꾸 걸린다.

두 사람은 한 달 간격으로 오는 편지를 통해 15년전 '사건'에 대해 알아간다. 모든 것을 알고도 감춘 준이치. 그가 진실을 감춘 비밀 속 비밀은 충격적인 반전을 선사한다.

로맨스와 서스펜스를 오가는 이 공연은 원작의 '서간문'이라는 독특한 호흡을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구상했다. 준이치의 공간과 마리코의 공간은 남태평양 어느 작은 섬, 일본으로 나눠져 있지만 편지를 통해 이들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소통하고 교감한다.

무엇보다 이 연극이 흥미로운 것은 두 연인 사이 달콤했던 편지가 점차 드러나는 사건의 진실과 함께 빠른 속도감으로 서스펜스로 장르가 전환된다는 점이다. 사건이 드러나며 전개되는 어린 준이치와 마리코의 과거 회상은 극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마리코의 끊긴 기억과 준이치의 기억은 같은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전개해 더욱 재미를 더한다.

마리코 역을 맡은 진소연 배우는 차분한 감성부터 폭발하는 듯한 연기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혼란스러운 마리코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준다. 준이치 역의 주민진은 비밀을 가진 남자로 마리코에게 한없이 자상한 남자가 되고 싶었던 모습을 로맨틱하게, 혹은 조금 섬뜩하게 표현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어린 시절 준이치와 마리코 그리고 그들의 중학교 동창 가즈키와 야스타카 역의 신예들도 눈에 띈다. 어린 마리코 역 한보배는 아역 배우 출신다운 탄탄한 연기력으로 정의롭고 용감한 마리코를 완벽히 소화했다. 또한 그가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와 비밀이 밝혀지며 고조되는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어린 준이치 역의 안재현은 극단적인 결정을 해야 했던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잘 표현했다.

결국 사랑은 파멸인 것이었을까. 반전의 반전을 남긴 극 마무리는 그렇지만 사랑에는 죄가 없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사랑했기에, 상처주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결국 더 큰 상처를 남겨버렸던 두 연인. 이들이 다시 극복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한편 연극 ‘왕복서간’은 21일까지 ‘KT&G 상상마당 대치아트홀’에서 열린다. 

사진=벨라뮤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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