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7시40분.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특설무대에 가수 양희은이 깜짝 등장했다. 양희은은 LED 촛불을 꼭 쥔 채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를 연이어 불렀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는 노랫말의 ‘상록수’에서 양희은은 “함께 부르자”고 요청했고, 현장에 운집한 150만명의 시민들은 ‘떼창’으로 화답했다. 거대한 촛불의 일렁임과 합창 속에서 양희은과 관객은 뜨겁게 하나가 됐다.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훔쳤다.

이날 무대 1km 뒤편에 자리한 청와대 안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침묵 속에 있었다. 가수 양희은과 대통령 박근혜, 얄궂은 인연의 두 여성이다.

 

 

하나. 52년생 동갑내기 ‘군인의 딸’

양희은과 박 대통령은 1952년생 동갑내기다. 양희은은 8월13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박 대통령은 그보다 앞서 2월2일 대구에서 출생했다. 박 대통령은 10대 때인 1963년 군인(육군대장으로 예편)이었던 아버지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 ‘큰 영애’란 호칭 속에 살아갔다. 양희은의 아버지는 육사 및 보병학교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양희은이 어렸을 무렵에 육군 대령으로 예편한 이후 병으로 요절했다. 이후 양희은은 어머니와 여동생(배우 양희경)과 함께 힘들게 지냈다.

 

둘. 서강대 동문 사이

박 대통령은 가톨릭계 미션스쿨인 성심여고 졸업 후 70년 명문 사학 서강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했다. 74년 졸업한 뒤 프랑스 그르노블대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양희은은 명문 경기여중고를 졸업하고 71년 서강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재수를 해 박 대통령의 1년 후배가 된 셈이다. 양희은은 과거 인터뷰에서 “박근혜와 한 테이블에서 도시락을 먹은 적이 있다” “학생시위가 일어나면 그녀가 학교에서 어떤 길로 빠져나와 집에 갔을지 궁금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셋. 70년대 퍼스트레이디 vs 저항가수

양희은은 대학교 1학년 때인 71년 김민기 작사·곡 ‘아침이슬’로 데뷔했다. 당시 국민들은 군부독재의 시대상황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이 곡을 애창했고, '아침이슬'은 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곡이 됐다. ‘통기타 세대’ ‘청년세대’ 아이콘이었던 양희은은 대중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으나 ‘아침이슬’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작은 연못’ 등 30여 곡 이상이 금지곡 지정을 받는 불운을 겪으며 대표적인 저항가수로 자리매김했다.

74년 서강대 졸업 후 프랑스 그르노블대 유학 중이던 74년 8월15일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세상을 떠난 이후 급거 귀국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대행했다. 아버지 박정희의 공식 행사와 해외 순방 등을 수행하는가 하면 새마을운동 추진, 새마음봉사단 총재로 활약했다. 그의 영부인 대행은 79년 10.26 사태 직전까지 지속됐다.

 

 

넷.  위기의 대통령 vs 국민가수

2012년 제18회 대한민국 대통령에 당선되며 정치인의 대망을 이룬 박 대통령은 취임 4년 만에 비선실세 국정농단으로 인해 전 국민으로부터 격렬한 퇴진 요구를 받고 있다. 그가 청와대에서 침묵을 지키던 26일, 데뷔 45년차 국민가수 양희은은 무대에서 ”우리가 해결하고 청산해야 할 것이 많다”며 “가사 하나하나가 우리의 마음을 울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음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짧은 소감을 올렸다. “어젯밤 광화문에서 아침이슬, 행복의 나라로, 상록수, 그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 불렀다! 대구에서 올라가 시간 맞추느라 정말 애가 탔으나 보람이 있었다!”.

사진=JTBC뉴스, 유튜브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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