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임새 많은 여배우 하지원이 연말을 맞아 관객에게 장르종합세트를 선물한다. 14일 개봉하는 ‘목숨 건 연애’(감독 송민규)에서 연쇄살인사건에 휘말리는 추리소설작가 한제인으로 분해 로맨스, 코미디, 스릴러, 액션, 수사극의 묘미를 일거에 쏟아낸다. 2016년 끝자락을 알차게 마무리하는 그녀와 만났다.

 

 

■ “역대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 제인”

제인은 소설 ‘살인의 심리학’으로 화려하게 등단했지만 5년째 후속작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위기의 추리소설작가다. 풍부한 상상력이 의심병을 키워 경찰서에 신고하기 일쑤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고 있어 위기의 순간, 독성 가스를 대방출한다. 어찌 보면 민폐녀 캐릭터일 수도 있으나 귀엽고 긍정의 에너지가 충만하다.

“배우인지라 같은 옷만 입을 순 없잖아요. 다양한 장르, 캐릭터, 사람들 이야기를 원했는데 한제인은 인물 안에 거의 모든 장르의 캐릭터들이 담긴 느낌이었어요. 역대 제가 연기했던 캐릭터 중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이고요. 또 한동안 무거운 작품들만 했기에 가벼운 작품을 해보고 싶었어요. 오랜만에 하는 로맨틱 코미디 장르인데 스릴러와 결합된 부분이 재미났어요. 단순한 로코가 아니라 새롭고 재미나게 다가왔죠.”

제인은 소꿉친구이자 헌신적인 순경 설록환(천정명)과 위층으로 이사 온 완벽한 외모·능력의 FBI 프로파일러 제이슨(진백림)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다.

“목숨 건 연애를 해본 적도 없고, 나를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남자가 없어서 솔직히 온전히 이해하진 못하겠더라고요. 저는 친구면 친구, 연인이면 연인으로 나누거든요. 제이슨은 여자에게 젠틀하고 매력적이라 현실이라면 당연히 제이슨과 만나지 않았을까요. 두 배우의 공통점은 진짜 열심히 연기하는 거였죠. 백림씨는 감독님과 토론을 많이 하고 불평불만 하나 없어서 감동적이었어요. 평소엔 쑥스러워하다가도 연기할 땐 쾌활해지던 정명씨는 록환을 시나리오보다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냈고요. 다 좋은 파트너였어요.”

 

 

■ “2년 전부터 영어회화 열공”

영화에서 제인은 미국에서 온 제이슨과 영어로 대화를 나눈다. 제인의 대사 중 절반 가까이가 영어다. 발음이나 억양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놀라움을 안겨준다. 2년 전부터 꾸준히 개인교사로부터 영어회화를 배워온 노력의 결과물이다.

“진백림씨가 캐스팅되면서 영어대사로 바뀌었어요. 평소에도 외국인이 있으면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대화를 할 정도의 호기심은 있었어요. 영어는 공부하다가 일정 탓에 못하다를 반복하다가 2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고요. 선생님과 함께 영화도 보고, 차도 마시면서 실력을 쌓아갔고요. 이번이 첫 번째 영어 연기라 계속 선생님으로부터 코치를 받았고, 진백림씨와도 현장에서 영어와 한국어로 소통을 했어요.”

외국어에 감정을 실어 연기하는 것은 어려운 작업임에 분명하다. 하지원만의 노하우는 특별하다. 먼저 대사 전달이 중요하므로 정확한 발음에 신경을 쓴다. 너무 굴리진 않는다. 다음으론 한국어로 연기를 하면서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한 뒤 영어대사로 연기를 한다. 시간은 2배가 걸리지만 정서와 느낌을 살릴 수 있어서 효과적이란다. “이번에 시도해봤으니 글로벌 프로젝트에 꼭 참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 “‘시크릿 가든’ 해외서 다시보기 열풍 분대요”

‘목숨 건 연애’ 제작보고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차움병원을 이용하며 ‘길라임’이란 가명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었다. 이날 ‘원조 길라임’ 하지원은 “TV 뉴스를 보다가 길라임이라는 이름이 언급되는 것을 듣고 놀랐다”며 “한제인은 쓰지 마세요”라고 손을 저어 화제가 됐다.

또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저는 배우 하지원을 떠나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국민의 한사람이다. 국가에 좋은 일이 있으면 저도 좋고, 슬픈 일이 있으면 저도 슬프다. 지금 여러분들이 슬픔이 큰 것처럼 저도 같이 큰 슬픔을 느끼고 있다”고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당시 발언은 저의 소신이었고 후회하지 않아요. 그런데 해외에서 ‘시크릿 가든’ 다시보기 열풍이 불고 있대요. 홍콩에서도 재방송되고 있다고 하고요. 제가 이럴 줄 알았겠나요.(웃음) ‘목숨 건 연애’도 오랜만에 웃을 수 있는 영화라서 개인적으로 좋아요. 고민 없이 빵빵 터뜨리는 점이 이 시국에 적합한 듯해요.”

 

■ “장르연기·상대배우와 호흡 비결은...”

여러 장르가 융복합된 ‘목숨 건 연애’에서의 연기 비법에 대해 귀띔했다. 코믹 파트에서조차 진지하게 임한 부분이 흥미로웠다.

“감독님과는 타이밍, 호흡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했어요. 코믹한 상황에서도 연기할 때는 오히려 진지하게 해야 스릴러 부분에서도 관객이 같이 긴장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방구를 뀌는 장면도 진지하게 했고, 늦은 밤 결혼식장에서의 추격 장면에서 마네킹으로 위장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로 처리했어요. 그래야 스릴러에서 터지는 코미디의 재미가 배가되니까.”

 

 

하지원은 상대 남자배우와 호흡이 좋기로 정평이 난 여배우 중 한 명이다. 연상연하, 미남과 쾌남을 불문하고 황금빛 앙상블을 일군다.

“소통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잘 맞았을 때 신이 살아나니까요. 최대한 나의 감정을 던지고, 그 사람의 감정을 최대한 받으려고 해요. 상대가 멋있게 보여야 하는 신에선 하트 뿅뿅 눈빛으로 바라봐주고, 불쌍해 보이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표정을 가져가다보면 호흡이 보이더라고요. 연기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호흡을 주고받는 거니까.”

그동안 강렬한 캐릭터를 많이 했기에 조금 더 사람 냄새 나는 인물에 촉수가 뻗친다. 누군가의 아프고 슬픈 이야기, 흐트러지고 삶이 깨진 인물을 해보고 싶다.

“역할의 크고 작은 비중 떠나서 그런 시나리오를 만났으면 해요. 큰 변신은 아니지만 작품마다 조금씩이라도 변화가 있는 배우, 거듭할수록 성숙한 배우가 되고 싶은 게 소망이죠.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많으니까 기회가 되면 좋은 영화를 제작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답니다.”

 

사진 최교범(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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