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하지만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세대에게 실패의 아픔은 성공의 기쁨보다 더 크게 느껴질지 모른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JCP)’에 선정된 전지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 ‘국도극장’은 서울에서 실패를 맛본 한 남자가 고향에 내려와 겪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타지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전지희 감독은 2008년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영화와 멀어졌다. 그가 다시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건 자신이 꿈을 한번이라도 실현시키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10년간 이런저런 다른 일을 하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그가 ‘국도극장’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자신의 이야기로 투영해봤다.

“정말 많이 떨려요. 첫 장편영화 연출인데 제 작품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니...지금도 얼떨떨해요. ‘국도극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영화제 측으로부터 총 예산의 절반 이상이 되는 제작비를 지원받았어요. 영화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큰 힘이 됐죠. 지금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해요. 제가 영화과를 나오긴 했지만 졸업 후에 10년 동안 영화 관련 일을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미련이 생기더라고요. 우연히 명필름랩에 지원했는데 덜컥 합격했어요. 그렇게 ‘국도극장’을 만들게 됐죠.”

“단편을 기획하다가 장편으로 만들어진 케이스예요. ‘국도극장’이라는 제목은 가제였는데 주변 분들이 좋아해주셔서 계속 쓰게 됐어요. 예전에 웹서핑을 하다가 군산에 국도극장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거에 대해서 글을 쓰다가 군산이 위치상 서울에서 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더 멀었으면 하는 바람이었거든요. 그래서 배경을 벌교로 바꿨어요. 전라도가 아니라 경상도로 할 수도 있지만 왠지 모르게 전라도가 더 끌리더라고요.”

‘국도극장’은 전지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이지만 화려한 배우진을 자랑한다. 이동휘, 이상희, 이한위, 신신애, 서현우 등 연기파 배우들을 어떻게 잘 모았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들의 연기를 통해 ‘국도극장’은 기태(이동휘)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섬세한 감정으로 담아냈다.

“저는 서울 토박이여서 영화에 등장하는 지방 사람들의 상경을 공감하지 못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주인공 기태(이동휘)처럼 누구나 초라하고 내리막길을 걷는 시기가 있다는 건 자신있게 감정이입할 수 있어요.(웃음) 제가 서울 출신이지만 전라도 사투리를 직접 썼어요. 저를 도와준 선생님이 영화에서 서현우 배우 아내 캐릭터로 등장하시죠. 이동휘 배우르 가르친 배우님도 기태 친구 중 한명으로 나오세요. 무엇보다 이한위 선생님이 대본 감수까지 해주실 만큼 시간을 많이 내주셨어요. 정말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이한위 배우님은 항상 저의 1순위였어요. ‘국도극장’ 오씨 캐릭터에 딱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적은 개런티에도 불구하고 흔쾌히 출연 제안을 수락해주셨어요. 동휘씨, (이)상희씨는 시나리오를 어디서 보시고 저한테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초보 감독에겐 과분한 영광이었죠. 주위에서는 저만 잘하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연출이 처음이라 힘들어할 때가 있었는데 배우분들이 잘 다독여주셨어요. 특히 기태 엄마로 나오는 신신애 선생님은 캐릭터를 100% 이해하시고 연기를 펼치셨어요. 후반작업하면서 선생님의 연기를 보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영화에서 담배피는 장면은 중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오래 나온다. 고향에 내려와 국도극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기태와 극장을 운영하는 오씨(이한위)는 국도극장 앞에서 담배를 피면서 서로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한다. 위로받지 못한 이들에겐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오씨가 기태와 비슷한 인물이라면 영은(이상희)은 기태와 반대되는 캐릭터다. 기태는 이 둘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서서히 깨달아간다.

“연출이 처음이라 담배가 태워질수록 점점 줄어들고 담배필 때 동작이 계속 바뀐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기태와 오씨가 담배피는 장면이 길게 나온 거예요. 다시는 담배피는 장면을 넣지 않으려고요.(웃음) 동휘씨는 비흡연자예요. 일부러 금연초까지 피면서 열정을 보여주셨죠. 이한위 선생님은 건강 때문에 담배 끊으셨는데 저 때문에 다시 피셨어요. 최근에 다시 끊으셨더라고요. 주위 분들은 제가 비흡연자인데 어떻게 담배 장면을 넣었냐고 하세요. 제 지인들은 다 담배를 피거든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말이죠. 담배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기태라는 캐릭터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죠. 서울에서 취업 실패해 고향 벌교까지 내려오게 됐잖아요. 그런 기태 앞에 영은이 나타나죠. 영은은 기태와 반대되는 캐릭터예요. 기태는 찌그러져 있고 자신감은 없지만 자존심만 세죠. 반면 영은은 순수한 사람이에요. 누가 뭐라고 하든 제 갈 길을 가죠. 기태가 영은에게 다가서는 건 이성적인 호감도 있겠지만 인간적인 동경이 있기 때문이에요. 기태는 자기가 하지 못한 걸 해내고 있는 영은을 보며 힐링을 받죠.”

영화 속 국도극장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소다. 기태에게는 편안한 안식처가 될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도 하다. 전지희 감독은 ‘국도극장’을 통해 현재 가족, 일, 사랑, 우정 등에 치여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이 모든 걸 이겨내야한다는 걸 말한다.

“국도극장이란 공간은 기태가 실패를 겪은 서울과 대비되는 곳이죠. 조용하고 여유로우며 기태를 언제나 반겨주는 장소예요. 영화를 보면 국도극장에 걸린 그림 포스터들이 계속 바뀌는데 그 영화들은 기태의 현 상황을 말해줘요. 관객분들이 그 부분을 이해하고 보시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국도극장 내부는 광주에 있는 한 극장에서 촬영했고 외부는 벌교에 있는 옛 금융조합 건물에서 촬영했어요. 류승룡 배우님이 동휘씨 응원차 촬영장을 방문하셨는데 큰 힘이 됐어요. 이 자리를 빌려 정말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어요.”

“기태의 ‘서울은 외로운 곳이에요’라는 대사처럼 타지 생활은 외롭죠.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 있고 혼자 살아야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기태가 서울에서 성공하길 원하지만 다시 서울로 올라가기 싫은 거죠.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걸 주변에서 아무리 뭐라고 해도 자기 자신이 잘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무엇을 해내야겠다는 의지는 자신의 행동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죠. 그래서 기태가 스스로 잘 해내는 영은을 부러워하는 거죠. 어떤 결핍이 있거나 마음이 공허한 분들이 이 영화를 보신다면 ‘나 같은 놈이 저기 또 있네’ 하고 생각하실 수 있을 거예요. 이 영화가 대단한 메시지를 가진 건 아니지만 자기 자신을 한번 돌아보면서 ‘나는 잘 살고 있나’하는 생각을 관객분들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사진=싱글리스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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