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두 아티스트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하나가 됐다. ‘교환일기’는 ‘위로공단’ ‘비념’ ‘려행’ 등을 연출하며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 초청받은 임흥순 감독과 일본 영상 아티스트 모모세 아야가 공동 연출한 작품이다.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교환일기를 통해 두 사람은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관객에게 가감없이 털어놓았다. 그 안에는 인생, 사회, 사람들에 대한 깊은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 Q. ‘교환일기’가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임흥순 감독은 ‘비념’ 이후 7년 만에, 모모세 아야 감독은 전주 방문이 처음이다.

임흥순 - “저의 첫 영화제가 전주국제영화제였어요. 2002년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미디어 다이어리’ 섹션에서 초청받은 게 처음이었죠. 그리고 13회 영화제 때 ‘비념’으로 다시 전주를 찾게 됐어요. 그 이후 7년이 흘렀네요. 전주국제영화제는 저한테 남다른 의미가 있는 축제예요. ‘교환일기’가 이 영화제와 잘 맞는다고 생각했죠. 차가 막혀서 오는 데 힘들었지만 말이에요.(웃음)”

모모세 아야 - “저는 일본에서 현대 미술을 하는 아티스트예요. 퍼포먼스를 기록하는 수단으로 영상을 찍으며 활동하고 있죠. 주로 목소리와 영상의 관계에 주목하고 있어요. 임흥순 감독님과 2015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이해 한일 아티스트들이 공동 전시를 하는 프로그램에서 만났어요. 같이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교환일기’라는 작품을 만들게 됐죠.”

# Q. 교환일기라는 소재가 흥미로웠다. 두 사람이 어떤 계기로 ‘교환일기’를 만들게 됐는가?

임흥순 - “모모세 아야 감독이 먼저 교환일기 방식으로 영상을 한번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어요. 처음에는 한 클립씩 영상을 주고 받으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을 만들어봤죠. 그러다가 총 10개 클립을 완성하게 됐어요. 이걸 영화로 만들 계획은 아니었는데 10개 클립을 만들고 나서 스크린으로 이 영상들이 보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모모세 아야 - “교환일기가 SNS나 메신저 등이 있으니 현대인들에겐 생소할 수 있어요. SNS 같은 경우는 사람들이 무언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표출돼죠. 반면 일기는 개인적인 글이며 자신만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아낸 거예요.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속마음을 모두 털어낸 일기를 임흥순 감독님과 교환방식으로, 그리고 관객들에게 보여드리면 괜찮을 것 같았어요.”

# Q. ‘교환일기’는 영상과 내레이션-자막이 불일치된다. 또한 서사도 없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집중할 수밖에 없더라. 어떤 일기 내용을 영화에 담으려고 했는가.

임흥순 - “내레이션-자막과 영상의 이야기가 같은 영화들은 많잖아요. 제가 ‘비념’을 만들었을 때도 사람 얼굴은 등장하지 않고 목소리와 풍경만 등장해요. 목소리와 이미지가 불일치될 때 낯선 느낌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죠. 뭔가 어긋나는 설정 속에서 관객들이 더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모모세 아야 - “일기를 쓸 때 어떤 내용으로 쓸지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일기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것이잖아요. 상대의 마음이 개입되면 안 된다고 판단했죠. 임흥순 감독님과 영상을 주고받을 때 어떻게 편집해줬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제가 바라던 것과 다르게 임 감독님이 새롭게 편집하면 그거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고 믿었죠.”

임흥순 - “모모세 아야 감독의 내레이션 내용에는 문학 속 인용된 문장이 많더라고요. 그걸 받아보니 저는 어떤 방식으로 일기를 쓸까 고민 참 많이 했습니다. 그전 작품들에는 사회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아냈는데 이번에는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자고 마음먹었죠. 사적인 이야기에서 점점 공적인 이야기로. 모모세 아야 감독이 정말 잘해서 부담됐어요. ‘이러면 나는 어떡하지’라고 생각했죠.(웃음)”

# Q. 영상 속에는 세월호 집회, 퀴어축제, 동일본대지진 등 사회적인 이슈가 담겼다. 임흥순 감독 같은 경우에는 ‘위로공단’ ‘비념’ ‘려행’ 등과 마찬가지로 여성(임 감독 고모)에 대한 영상이 들어있는데 무엇을 찍고자하는 의도가 있었을까?

임흥순 - “‘교환일기’를 작업하고 있을 때 할머니에 대한 영화를 제작 중이었어요. 독립운동, 제주 4.3사건, 한국전쟁 등을 겪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이죠.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제 고모가 생각나더라고요. 고모를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 개인적인 자책이 일기에 솔직하게 다 담겼어요. 사회적인 이슈들도 관심있는 것들을 찍은 것이죠. 집이 광화문 근처라서 자주 보는 광경들이었거든요. 어떤 걸 일부러 영화에 넣자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모든 영상이 저한테 일상 속 이야기였죠.”

모모세 아야 - “어떤 영상을 찍을지 조금 의식하긴 했어요. 내레이션과 영상이 맞물리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동일본대지진 등 여러 영상을 선택해 넣은 건 100년 후에도 사람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이런 일이 있었구나’ ‘이런 일이 나중에 생길 수 있겠구나’ 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죠.”

# Q. 지금까지 ‘남’을 바라보는 작품을 만들었는데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관객에게 전달하는 건 어땠나?

임흥순 - “제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 않았죠. 하지만 모모세 아야 감독과 ‘교환일기’를 만들자고 약속했고 저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죠. 솔직히 관객분들도 ‘교환일기’ 같은 영화를 찍을 수 있어요. ‘나도 저 정도 영화는 찍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이 영화는 다른 작품에 쓰고남은 자투리들을 모은 작품이거든요. 마치 옷을 만들고 남은 천조각으로 새로운 옷을 탄생시킨거죠.”

모모세 아야 - “저도 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만든 작품 중 제 이야기를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이 작품을 만들면서 저를 한번 돌아보게 됐어요. 그리고 임흥순 감독님이 말씀하신대로 ‘교환일기’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작품이에요. 제가 기자님 앞에서 아이폰을 들고 촬영하면 그 자체가 영상 소재가 될 수 있죠. 영상이라는 것 자체가 기술 발달로 인해 완벽히 대중화가 됐잖아요.”

# Q. 영화 마지막에 ‘두 사람의 교환일기는 이어지고 있다’라는 자막이 나온다. ‘교환일기’ 2탄을 볼 수 있는 것인가?

임흥순 – “현재 다음 편에 대해 생각하고 기획 중이에요. 다만 한 사람이라도 교환일기를 끝내버리면 진행이 어려워지죠. 서로의 믿음과 신뢰가 이어지면 언젠가 다음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요?

모모세 아야 - ”저도 ‘교환일기’는 계속 돼야한다고 생각해요.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할수록 재미를 느끼거든요. 영화 내용이 감독들의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아티스트들이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합작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언젠가 한일 양국의 아카이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사진=싱글리스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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