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같은 마음’이란 말이 있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죽을 때까지 달려간다. ‘불숨’은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두 도공 부녀의 이야기를 불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제주 해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물숨’으로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돼 CGV아트하우스상과 한국경쟁 특별언급상을 받은 고희영 감독이 3년 만에 ‘숨’ 시리즈 2탄 ‘불숨’으로 돌아왔다.

‘불숨’은 선도공의 작품이 일본 국보가 된 그릇을 재현하기 위해 한평생 불과 싸워온 천한봉 도공과 그에게서 불을 물려받기 위해 어둠 속에서 남몰래 힘을 길러온 딸 천경희씨의 이야기를 2013년부터 6년 동안 기록한 다큐멘터리다. 두 사람의 각기 다른 꿈을 ‘불’과 연관지으며 그들의 날 선 욕망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3년 전 제 첫 작품 ‘물숨’으로 국내경쟁 부문 초청을 받았을 때도 ‘내가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을까’ ‘나한테 영화감독이 맞는 직업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뒤에 ‘시소’와 ‘불숨’을 만들게 됐죠. ‘불숨’이 전주시네마프로젝트(JCP) 후보 131편 중 하나였거든요. 전주영화제가 제 작품을 왜 지원해주셔서 감사했죠. 전주영화제는 감독과 함께 성장해가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만큼 제가 앞으로 더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책임감이 생겼죠.”

“사실 ‘숨’ 시리즈를 해야겠다고 한 건 아니었어요. 저한테 ‘숨’이란 산다는 걸 의미하거든요. 몸이 많이 아팠던 적이 있었는데 수술대 위에서 산소호흡기를 꼈어요. 그때 ‘산다는 걸 별거 아니구나’하고 느꼈죠. 그래서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으며 버티는 해녀들의 이야기를 ‘물숨’에 담았고 천한봉 도공 선생님이 불의 호흡까지 다 깨닿는 모습을 ‘불숨’으로 그려냈어요. 우리는 항상 불을 쓰지만 자세히 관찰하는 편은 아니잖아요. 천 선생님은 불이 피어오를 때부터 1300도가 될 때까지 모든 걸 파악하시죠. 영화 속 불의 모습을 찍으면서 천 선생님의 숨소리도 함께 느낄 수 있었어요.”

고희영 감독은 중국 베이징과 한국을 오가며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그의 아픈 몸 상태는 본능적으로 ‘욕망’과 ‘숨’에 관련된 이야기에 끌렸고 ‘물숨’과 ‘불숨’을 차례로 만들어냈다. 그가 ‘불숨’을 만들게 된 계기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으며 불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욕망이 어느 정도로 활활 타오르는지 보여줬다.

“20년 전 사회초년생 때 일간지 기자를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천 선생님과 그의 딸 천경희 도공을 만나게 됐죠. 시간이 지나 ‘물숨’을 만들면서 갑자기 두분이 생각나더라고요. 인사드리러 갔더니 20년 전과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그릇을 만들고 계셨어요. 그릇이 화려하고 멋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알고보니 선도공들이 만든 그릇이 일본 국보가 됐고 이를 재현하기 위해 천 선생님이 인생을 바쳐 불앞에 서고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2013년 6월부터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려고 했어요.”

“‘물숨’은 7년동안 촬영돼 완성됐어요. 이 작품 이후로 오래 촬영하는 다큐멘터리를 만들 생각이 없었죠. 처음에는 불을 쉽고 빠르게 찍을 줄 알았는데 그럴 수 없더라고요. 만만하게 본 거죠. 도공이 그릇을 완성하려면 불의 조화가 중요해요. 그래서 불을 어떻게 잘 찍을까 고민하게 됐죠. 불이 1000도가 넘으면 정말 하얗게 보여요. 8K 카메라가 아니면 불의 모습을 잘 담을 수 없었죠. 그만큼 제작비도 많이 들고요. 제작비가 늘어난만큼 그릇 제작과정도 오래 걸려서 제작기간도 길어졌죠. 제가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어 1년 정도 촬영을 쉬었어요. JCP 지원을 받고 다시 ‘불숨’을 진행했죠.”

‘불숨’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맞물린다. 국보를 재현하고픈 천한봉 도공의 이야기, 그리고 천한봉 도공의 기술을 전수받고 싶은 딸 천경희 도공의 이야기를 통해 욕망의 부딪힘을 스크린에 펼쳤다. 여기에 영화를 잘 만들고픈 고희영 감독의 욕망까지 뒤섞이며 ‘불숨’은 영화에서 보여지는 가마 속 불처럼 활활 타올라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물숨’과 ‘불숨’은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한지,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걸 보여줘요. 숨 쉬는 것 자체가 욕망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천 선생님도 그릇은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면 실패작으로 탄생한다고 하셨거든요. ‘불숨’을 보면 그릇에 대한 천 선생님의 욕망도 있지만 딸 천경희 도공이 자기 그릇을 만들고 싶어하는 욕망도 있어요. 두 욕망이 충돌하죠. 저는 불을 잘 찍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요. 영화에서는 보이지 않겠지만 이 3개의 욕망이 불꽃 튀었어요.”

“처음에 ‘불숨’을 만들 때는 국보를 재현하려는 천 선생님의 그릇 제작과정을 담으려고 했어요. 2년이 지난 뒤부터 천경희 도공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예전에는 아버지 천 선생님이 화를 내면 우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순간 마음이 단단해지고 강해진 게 보였어요. 심지어 자기 찍지 말라더니 2년 반 지나니까 작업실에서 자신과 남동생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죠. 아버지가 장자에게 자신의 기술을 물려주고 싶은데 남동생이 사망해 천경희 도공이 남동생의 인생을 대신 산다고요. 그 이야기로 ‘불숨’의 전체적인 서사가 달라졌죠.”

고희영 감독이 ‘물숨’에 이어 ‘불숨’을 찍으며 느낀 건 욕망 때문에 인간이 좌절하면서도 인생을 살아가는 힘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그에겐 영화 찍는 일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가 하고자하는 욕망이 영화에 담겨있기 때문에 이 일에 손 놓을 수 없었다. 그는 관객들이 ‘불숨’을 보면서 천 도공 부녀와 자신의 욕망을 공감하길 바랐다.

“도공 부녀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천 선생님이 미웠어요. 천경희 도공이 적지 않은 나이인데 스스로 그릇을 만들지 못하니 ‘어린아이’로 남아있었거든요. 세월이 흐르면서 천 선생님은 연로해지시고 천경희 도공에게 모든 결정권이 넘어가게 됐죠. 아버지는 타들어가는 장작, 딸은 활활 타오로는 장작이었어요. 누가 저한테 제 그릇은 뭐냐고 묻는다면 ‘영화’라고 답할 거예요. 저는 ‘불숨’을 명작으로 만들고 싶었지만 그게 쉽지 않은 일이란 걸 느꼈죠. 저는 평소에 영화 연출하는 일을 고급 취미라고 말해요. 오히려 만들수록 적자가 나요. 책을 쓰거나 방송다큐를 찍으면서 생계를 유지하죠. 그래도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은 욕망이 가득해요.”

“이번에 전주에서 ‘불숨’ GV를 가지면서 젊은 관객분들의 큰 호응에 깜짝 놀랐어요. 심지어 자기 집에 있는 그릇을 한번 자세히 봐야겠다는 사람도 있었죠. 청자, 백자가 장미꽃이라면 그릇(사발)은 길가에 핀 할미꽃 같은 것이죠. 하지만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거잖아요. 어떤 그릇이든 뜨거운 불길을 견뎌내며 완성됐어요. 사람도 마찬가지로 힘들고 혹독한 시간을 겪으며 여러 형태로 구워지고 깨지기도 하죠. 불길을 잘 견딘다면 우리의 인생도 언젠가 완성될 수 있다는 걸 영화를 통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사진=싱글리스트DB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