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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송영민, 유아인·박정민 ‘피아노 대역’에서 ‘멀티플레이어’로

단호함과 유연함, 진지함과 엉뚱함을 품은 이와 마주하는 건 무더운 온도를 ‘급’ 청량하게 만들어버린다. 피아니스트 송영민(33)이 딱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29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제80회 정기연주회 협연자로 나서는 그를 방배동 골목길의 한 여행사 카페에서 만났다. 수려한 베이비페이스와 다소 불협화음인 중후한 바리톤 목소리가 실내를 가득 메웠다.

히트 드라마 ‘밀회’와 흥행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천재 피아니스트 역 유아인 박정민의 실제 연주자다.

“서른 즈음 군대 가기 전에 ‘밀회’를 찍었어요. 오디션을 봤는데 1차는 사진과 영상, 프로필 테스트였죠. 무엇보다 유아인씨 손과 몸이랑 비슷해야 했어요. 최종 7명 가운데 선발된 거죠. 방송에서 유아인씨가 연주할 때 목 아래가 저였어요. 6개월 동안 유아인씨에게 레슨을 했는데 대단한 배우란 생각이 들었죠. 제 연주 영상을 찍어서 저와 똑같이 하려 노력했다고 했어요. ‘춤추는 거라 여기고 리듬에 맞춰서 연주한다고 상상했다’고 하더라고요.”

군 제대 무렵, ‘그것만이 내 세상’ 제작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의 연주에 박정민이 핸드싱크를 하게 됐다. 영화에서 쇼팽 ‘즉흥 환상곡’와 ‘야상곡’, 피아노협주곡 1번 3악장. 드뷔시 ‘아라베스크’. 보로딘의 ‘젓가락행진곡’을 연주했다. 한지민 용으로는 브람스 ‘헝가리 무곡’ 5번을 타건했다.

“두 배우는 엄청난 노력파더라고요. 특히 박정민씨가 영화 후반부에서 쇼팽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할 때 건반의 정확한 음을 집어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100프로 노력인 거죠. 무척이나 재미난 작업이었어요.”

클래식 음악계에서 다소 생경한 인물은 어디에 있다가 쑥 튀어나왔을까. 부산 태생인 그는 인문계 중학교에 다니던 13세에 훌쩍 피아노 유학을 떠났다. 그때까지 동네 피아노학원만 다니던 차였다. 유년기부터 어머니가 성악, 바이올린, 기타, 플루트, 수영, 태권도 등 사교육을 많이 시켰다. 유일하게 지루하지 않았던 종목이 피아노였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러시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부모님 잔소리에서 해방돼 내 마음대로 살 수 있겠다 싶어서였죠. 어마무시한 사교육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했고요. 2000년 시베리아 한복판에 있는 완전 시골 마그니토고르스크에 정착했어요. 아버지가 아시던 선교사님이 계셨던 곳이에요. 그곳 예중(음악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하다가 예카테니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죠. 러시아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어요. 너무 춥고, 환경은 낙후됐기 때문이죠. 그래서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대로 다시 유학을 가서 졸업하고 라이프치히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 과정을 마쳤어요.”

클래식 음악의 중심지라서 피아노를 빼어나게 연주하는 학생들이 너무 많았다. 러시아에서와는 다르게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방법 역시 쉽사리 적응하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버겁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유학생활 막바지에 국제 콩쿠르 입상, 유서 깊은 게반트하우스 데뷔 무대가 착착 이뤄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2000년 시작한 해외 생활은 2012년 9월 귀국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귀국 후 군 복무까지 마치고 나서야 날개를 달았다. 연주뿐만 아니라 ‘최인아 책방콘서트’ 음악감독 겸 진행자, 성남 티에라이 아트센터 실내악축제 프로그램&캐스팅 디렉터(부감독). nwa 영피아니스트 콘서트 시리즈 예술감독으로 맹활약 중이다. 이번 서울시 최초 기초자치단체 소속 교향악단인 강남심포니와는 드보르작 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한다. 클래식 애호가들도 교향곡이나 바이올린·첼로 협주곡으로 익숙한 작곡가다.

“드보르작 피아노협주곡이 40분에 이르는 대곡인데다 워낙 난해해 거의 연주되지를 않아요. 사람들이 있는지도 잘 모르죠. 성기선 지휘자님과 프로그램 관련 대화를 나누다가 연주자들이 잘 연주하지 않는 이 곡을 제안했더니 바로 수락해주셨어요. 드보르작이 체코 출신이라 슬라브 특유의 리듬과 멜로디가 매력적이에요. 3악장은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반복돼 후크송 느낌이 나죠. 들어보면 아주 좋은 곡이죠. 특히 2011년 게반트하우스에서 이 곡으로 데뷔해 제게는 각별한 프로그램이에요. 암보와 체력을 많이 요구해 열심히 준비 중이에요.”

어릴 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얘기하는 걸 좋아했던 그는 ‘적성’을 살려 책방콘서트를 맡으면서 진행을 처음 시작했다. 능숙한 진행 실력 덕에 이후 의뢰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지금은 ‘바쁜 몸’이 됐다.

“듣는 사람이 없으면 연습실에서 버려지는 게 음악이에요. 음악의 완성은 청중이라 그들을 설득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좋은 클래식 프로듀서가 되고 싶어요. 모든 음악의 뿌리는 클래식이고, 음악을 통해 할 수 있는 게 되게 많거든요. 음대를 졸업한 후배들이 전문 연주자로 각광받지 못하면 레슨 밖에 할 일이 없는 현실이 아니라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어요.”

연주자로서 큰 도전인 쇼팽 전곡 녹음을 시작한 그는 다음달 녹턴, 마주르카, 판타지를 수록한 첫 음반(야기 스튜디오)을 발매한다. 송영민이 가장 어려워하는 작곡가가 쇼팽이다. 작곡가이기 전에 훌륭한 피아니스트인 쇼팽은 피아노란 악기를 너무 잘 알기에 가혹할 정도로 연주하기 힘들게 작품을 만들어놓은 인물이다. 초절기교를 요구하는 리스트 곡이 오히려 쇼팽보다 훨씬 치기 쉽단다. 그런 쇼팽을 기가 막히게 소화하는 연주자로 선뜻 조성진을 꼽는다.

“쇼팽 콩쿠르 1차 예선을 인터넷으로 봤는데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음악적인 건 둘째치고 피아노 플레이에 있어서 완벽했어요. 저희는 프로 연주자라 쇼팽 곡을 컨트롤해서 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니까 너무 깜짝 놀랐죠.”

올 여름과 가을, 더욱 바빠질 전망이다. 8월부터 스톰프뮤직의 ‘쇼핑으로 만나는 지브리’ 전국투어에 나선다. 일본 애니메이션 명가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을 쇼팽 풍으로 편곡한 작품과 쇼팽 원곡을 들려주는 연주회다. 9월에는 처음 막을 올리는 창작뮤지컬의 클래식 편곡 및 음악감독을 맡았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과 같이 어려운 곡을 극에 녹아들도록 만들고 있는데 이 프로젝트가 잘 되면 클래식을 전공한 동료나 후배들이 좋은 자극을 얻지 않을까 기대에 부풀어 있다.

에필로그. 미혼인 그는 현재로선 비혼주의자다. 결혼 생각이 없다고 부모님께도 말씀 드렸다. 그가 하는 일에 늘 동의하시는 편이라 가타부타 말씀이 없으시다. 왜 결혼에 관심이 없느냐고 묻자 “하는 일이 너무 많고 특히 기획 일에 관심이 많다. 그것만으로도 충만하다”는 심플한 대답이 돌아왔다.

사진=한제훈(라운드테이블)

에디터 용원중  goolis@slist.kr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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