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마을' 비에이 by Gary

 

 

두툼한 흰색 주단이 삿포로 시에 깔린 12월의 이른 아침

눈덩이 바퀴의 특급열차 슈퍼카무이에 몸을 실었다

 

 

일본 열도 최북단 섬 홋카이도(北海島) 중앙에 자리한

아사히카와 역까지 1시간30분 남짓 줄달음질

흩뿌리던 진눈깨비가 순간 눈보라로 돌변하고

사방은 눈 천지

 

가와바다 야스나리 소설 ‘설국’의 문장들이 차창 밖으로 휙휙

긴장이 들어찼던 머리는 새하애진다

 

아사히카와역 도착, 두 량짜리 열차로 갈아탄 뒤 다시 30분

동화 속 마을 비에이(美瑛)에 미끄러지듯 들어서자

일본의 아름다운 기차역 100선에 들었다는 역사가

소박한 자태로 여행객을 맞는다

 

다이세쓰산에 기댄 그림 같은 마을이자 예술가들이 사랑한 땅, 비에이

정감 넘치는 종탑 광장을 지나

소박한 식당에서 라멘으로 허기를 달래고

나선 2시간의 택시투어

 

 

3가지 코스 중 패치워크 로드워크 선택

CF의 배경이 되면서 스타가 된 나무들을 찾아다니는 여정이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낮고 너른 언덕 위로 나무들이

듬성듬성 자태를 드러낸다

 

 

켄과 메리의 나무, 이 고독한 포퓰러 나무는

전 세계 포토그래퍼들의 연인이 됐다

 

 

곧게 치솟은 나무 옆 구부정한 ‘철학의 표지판’은

굽이굽이 이어지는 인생을 말하는 듯하다

 

 

  븐 스타 나무, 뒤로 뻗은 자작나무길

 

 

세 그루가 서로를 품듯 서 있는 가족나무

 

 

마일드 세븐 언덕에선 담배를 입에 문 채

소리 한 점 없는 한갓진 풍경에 발자국을 새긴다

 

 

여름엔 라벤더, 가을엔 사루비아와 해바라기

수십 종의 꽃이 이곳을 메우다 겨울이 되면

너른 대지를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감싼다

 

 

은은한 감동을 뒤로 하고 다시 시내로...

유럽풍 마을 곳곳에 들어선 갤러리와 앙증맞은 가게들

파스텔 톤 건물엔 건축 연도가 지붕 아래 새겨져 있다

세월의 더께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주인 아주머니처럼 정갈한 카페에서

홈메이드 케이크 한 조각과 잘 내린 커피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낸다

창 밖 처마 밑 긴 고드름이 겨울왕국의 향취를 배가한다

 

 

작은 마을을 감싼 적막

설원 나무가 이고 진 고독

이 풍경에 동화된 순간

비에이는 ‘내 인생의 여행지’ 한 칸을 메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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