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정상화는 물 건너가게 됐다는 말이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64회 현충일 추념사에서 ‘김원봉 언급’을 한 게 기폭제 역할을 했다. 차명진 자유한국당 전 의원은 “빨갱이”라며 원색 공세를 펴고, 전희경 대변인은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청와대와 집권세력이야말로 우리 사회 가장 극단에 치우친 세력”이라고 논평했다.
이만희 원내대변인은 “보수와 진보를 나누지 말자는 대통령의 언급이 김원봉 등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까지 서훈하기 위한 이 정권의 분위기 조성용 발언은 아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겉으로는 통합을 내걸지만 실제론 균열을 바라고, 대화를 이야기하지만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이라고 언급했다.
경향신문은 7일 한국당이 과거 약산 김원봉을 추켜세운 ‘과거’를 들췄다. 새누리당 시절인 2015년 김무성 대표와 김을동 당시 최고의원이 주축이 돼 영화 ‘암살’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특별상영했다. 영화에는 약산 김원봉이 의열단 단장으로 등장하고, 배우 조승우가 특별출연해 연기했다. 당시 김무성 대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군과 임시정부 대원들의 친일파 암살 작전을 그린 영화를 국회에서 상영함으로써 역사 인식을 확산하고 나라를 위해 희생한 이들을 기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상영회에 앞서 동료 의원·관객들과 함께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한국당의 대표적 텃밭인 경남 밀양에는 지난해 3월 의열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새누리당과 한국당 공천으로 당선된 박일호 밀양시장이 “밀양을 독립운동 성지로 만들겠다”며 적극 추진한 사업이다. 밀양시가 약산 김원봉의 생가터를 매입해 건립한 의열기념관에서는 항일 의열투쟁에 대한 소개와 김원봉 연설장면 동영상 등을 볼 수 있다.
6일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임시정부는 1941년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광복군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정파와 이념을 뛰어넘어 통합으로 가자는 취지를 강조하기 위한 언급으로 보여진다.
약산 김원봉을 입에 올리자마자 ‘빨갱이’부터 ‘극단세력’ ‘갈등유발러’에 이르기까지 십자포화를 퍼붓는 자유한국당 전현직 의원들을 향해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7일 "자신들과 다른 이념이라면 분기탱천하는 자유한국당이 남로당 군사총책 활동으로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았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국부 수준으로 숭앙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라고 돌려까기를 시도했다.
역사관이 상대와 상황에 따라 그때 그때 달라지는 것인지,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인지 의아함이 솟구친다.
현재는 과거가 남긴 발자국이고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다. 2004년 전라남도 곡성에서 열린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나경원 김무성 심재철 주호영 이혜훈 주성영 정두언 정병국 박순자 의원 등 10여 명이 출연한 ‘환생경제’라는 연극이 올려졌다. 그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빗대 ‘노가리’라 부르는가 하면 ‘육XX놈’ ‘죽일X’ ‘불X값’ ‘개잡X’ 등 현직 대통령을 욕설과 비속어로 저주하고 조롱했다. 연극을 관람한 박근혜 당시 대표는 손뼉을 치며 웃음을 쏟아냈다. 이후 논란이 일자 이들은 “연극은 연극일뿐”이라며 “뭐가 문제냐”고 '퉁'쳤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향해 ‘이놈 저놈’ 호칭에 ‘김정은 수석대변인’ ‘빨갱이’라고 언급하는 이들에게 국민 따윈 보이지도 않을 듯싶다. 미러링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한가지 궁금한 건, 당 대표는 타도의 대상인 이런 상대를 향해 왜 그토록 집요하게 일대일 영수회담을 요구하는지 불가해하다. 아무튼 금도를 자유롭게 건너뛰는 구강 화력, 막장을 불사하는 전투력은 집권여당 세력에겐 '넘사벽'으로 보인다. 요즘 화제의 영화 ‘기생충’ 속 명대사가 생각난다. “리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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